2020년이 저물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2020년 한국영화계도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영화계를 7개의 키워드를 통해 결산해본다.
오스카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등 4개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은 쾌거였다. <기생충>의 오스카 석권은 수많은 기록들을 만들었다. 예술영화 중심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상업영화 중심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1956년 <마티> 이후 처음이었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한 작품으로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한 것도 처음이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등극은 한국영화계 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도 남을 기록이다.

-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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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개봉 2019.05.30.
넷플릭스
개봉 대신 공개의 시대가 시작됐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영화들이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사냥의 시간>이 시작이었다. 2월 개봉 예정이던 <사냥의 시간>은 4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그밖에 넷플릭스를 통한 개봉이 아닌 공개를 택한 영화는 <콜>, <승리호> 등이 있다. 특히 <승리호>는 제작비가 200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개봉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택한 이유는 <킹덤> 시리즈 등으로 위상이 높아진 한국 컨텐츠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촐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걸로 보인다. 올해 <킹덤> 이외에도 극장 개봉 이후 넷플릭스에 공개된 <#살아있다>가 이른바 K-좀비 신드롬의 영향으로 여러 국가에서 많이 본 컨텐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12월에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도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리지널 컨텐츠를 기반으로 성장한 넷플릭스는 2020년 코로나19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됐다.

- 사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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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
개봉 2020.04.23.
영화 관람료 인상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시장이 급속하게 커졌고 극장 산업은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몇몇 극장의 영업 중단이 이뤄졌고 이후 극장은 사람들의 기피 공간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위기에 빠진 극장업계를 위해 6월과 10월에 6000원의 영화 할인 쿠폰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극장에 불어닥친 거센 찬바람은 계속 됐다.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올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 6000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지난 9년 연속 2억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약 70%의 관객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유래 없는 침체기에 극장업계는 영화 관람료 인상이라는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CGV를 시작으로 11월 메가박스, 12월 롯데시네마까지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체인이 영화 관람료를 올렸다
재개봉
그래도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개봉 영화가 부족하면 재개봉 영화를 틀면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개봉 영화 감소는 재개봉 영화 증가와 맥을 같이 한다. 올해 재개봉은 특별한 경향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10월에 4DX로 재개봉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같은 블록버스터부터 11월에 재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같은 독립영화까지. 지금 스크린에 상영할 수 있다면 뭐든지 재개봉을 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를 테면 12월 24일 재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4K리마스터링 버전이라는 명목이 있다. 이에 반해 12월 31일 네 번째 재개봉한 <라라랜드>의 경우는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사실 지금은 재개봉의 이유가 있든 상관없는 시대다.

-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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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왕가위
출연 장만옥, 양조위
개봉 2000.10.21. 2020.12.24. 재개봉
블록버스터
블록버스터의 종말이 다가온 것일까. 올해 보지 못한 대작 영화들이 많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지막으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대표적인 영화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같은 영화도 이에 해당한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을 뚫고 개봉한 블록버스터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다. <테넷>의 개봉과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결과 워너브러더스의 수뇌부는 극장 개봉보다 자사의 OTT 서비스인 HBO 맥스에 더 집중하려는 전략을 수립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12월, 워너브더러스는 국내에는 개봉한 <원더 우먼 1984>를 미국에서 HBO 맥스를 통해 공개했으며 이후 2021년 개봉하는 17편의 영화를 극장 개봉과 동시에 HBO 맥스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영화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고질라 VS. 콩>, <듄>, <매트릭스 4> 등의 블록버스터도 포함된다. 코로나19 종식 이후의 시대,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에 여름, 연말, 명절 대목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의 영화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 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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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로버트 패틴슨, 엘리자베스 데비키, 존 데이비드 워싱턴
개봉 2020.08.26.
독립영화
블록버스터의 반대쪽에 위치한 독립영화 진영은 계속 진화 중이다. 특히 국내 여성 감독들의 도약이 눈부시다. 지난해 8월에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있었다면 올해 8월에는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각각 그해의 대단한 성취 혹은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는 <벌새>와 <남매의 여름밤>은 올해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재개봉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들이 포함된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독립영화와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좀더 집중해보면 임선애 감독, 예수정 주연의 <69세>, 김초희 감독, 강말금 주연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태원> 등도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 남매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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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단비
출연 최정운, 양흥주, 박현영, 박승준
개봉 2020.08.20.
MCU
지난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는 마블 영화가 없는 한 해를 보냈다. 2020년 5월과 11월에 각각 개봉을 예정했던 <블랙 위도우> <이터널스>를 보지 못했다. 국내에는 서비스를 하지 않지만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하기로 예정됐던 TV시리즈 <팔콘 앤 원터 솔져>, <로키>, <완다비전>마저 2021년으로 연기됐다. 그렇게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의 페이즈4는 제대로 출발을 하지 못했다. 현재 2021년 개봉이 예정된 영화들은 <블랙 위도우>, <샹치 앤 레전드 오브 텐 링스>, <이터널스>, <스파이더맨 3> 등이다. 2020년은 마치 타노스(조슈 브롤린)의 핑거스냅으로 사라진 시간처럼 느껴진다.

- 블랙 위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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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이트 쇼트랜드
출연 스칼릿 조핸슨, 데이빗 하버, 플로렌스 퓨
개봉 2020.00.00.
2020년의 마지막날 한해를 돌아보며 코로나19가 만든 영화업계와 관련된 새로운 풍경들을 돌아봤다. 아울러 2021년 신축년 새해에 코로나19가 종식되길 기대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제발.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