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할리우드 못지않은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은 칭찬 일색이다. 다만 스토리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좋든 싫든 <승리호>는 한국 최초의 우주 배경 SF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SF 장르, 특히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그간 한국영화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제작비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상업영화가 아닌 저예산 영화라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승리호> 이전에 제작된 SF 장르의 저예산 영화들, 단편영화들을 소개한다.


<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지켜라!>(2003)
<지구를 지켜라!>는 그야말로 전설이다. 2003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이가 거의 없어서 그렇다. 전설은 그 대상이 되는 사물 혹은 사건 등을 실제로 본 사람이 많이 없어야 만들어지는 법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대부분의 컬트 무비처럼 개봉 당시 빛을 보지 못하다가 DVD, 비디오테이프 혹은 불법 다운로드 등을 통해 유통되면서 일부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이후 입소문을 통해 점점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세상 대부분의 전설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다르다.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장르물의 법칙을 깨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SF영화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상상력이다. 저예산이든 고예산이든 상관없다. 그런 면에서 <지구를 지켜라!>는 앞으로도 전설로 남을 것이다. 참고로 <지구를 지켜라!>는 33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영화이며 저예산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승리호>의 제작비는 24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를 지켜라!

감독 장준환

출연 신하균, 백윤식

개봉 200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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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불청객>(2010)
<불청객>이야말로 진정한 저예산, B급 SF 장르물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다. 당시 언론은 <불청객>의 제작비가 500만 원(실제로는 2000만 원)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제작비 규모를 감안해보면 이응일 감독이 연출부터 연기, 편집, 촬영, 조명, 특수효과, 컴퓨터 그래픽 등 거의 모든 제작 과정을 혼자서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응일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 미디액트 등 저예산 독립영화의 지원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구비 서류 등 절차가 복잡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직접 만든 가내 수공 그린 매트 앞에서 파란 내복을 입고 이응일 감독은 외계인 포인트맨을 연기하고 431컷의 CG 작업까지 마쳤다. 10여 년 전 유행하던 말인 ‘잉여력’의 결정체인 <불청객>은 디씨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병맛’ 영화로 알려졌다. 이후 극장 개봉한 <불청객>에 대해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씨네21’ 20자평에서 “충무로 주류 SF가 겨울잠 자는 사이에 누군가의 골방에선!”라는 평가를 남겼다. 별점은 3.5개.

불청객

감독 이응일

출연 김진식, 원강영, 이응일

개봉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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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 Man>

<Cosmic Man>(2011)
<Cosmic Man>(코스믹 맨)은 8분 44초 러닝타임의 단편영화로 이한빛 감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이다. <승리호>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미국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의 우주왕복선 비슷하게 생긴 우주선이 등장한다. 우주선 안에는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이 있다. 그는 착륙정을 타고 한 행성에 착륙한다. 10년 전, 이 단편영화는 앞서 소개한 <불청객>과는 다른 지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대학 졸업작품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뛰어난 퀄리티 때문이다. 정교한 컴퓨터그래픽과 단순하지만 관객의 기대를 보기 좋게 날려버리는 결말의 시나리오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한빛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총 140만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말했다. 이한빛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우주 배경의 SF영화가 하나 더 있다. 제목은 <데브리스>(debris)다. 제9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출품됐다.

코즈믹맨

감독 이한빛

출연 김기주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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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웨이브>(2005)

<브레인웨이브>

<브레인웨이브>의 시놉시스를 보면 언뜻 슈퍼히어로 장르의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뇌파 조절능력을 얻은 신인류라는 설정 때문이다. 이 신인류는 실험실을 탈출해 연구원들과 맞서 싸운다. 다양한 영화가 떠오른다. 장르 마니아라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초기작 <스캐너스>를 떠올릴 수 있을 테고,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면 <아키라> 같은 작품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신태라 감독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받은 한 장의 전단지에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 전단지에는 자신이 실험을 당했고, 그 후 몸이 이상해지고 환청도 들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9시 뉴스에 불쑥 나타난 청년과 비슷한 사연이다. 신태라 감독은 <브레인웨이브>를 완성하기 위해 녹음, 현장편집 등의 스태프 일을 꾸준히 했다. 그렇게 모은 총제작비는 1000만 원이라고 한다.

브레인웨이브

감독 신태라

출연 김도윤, 장세윤

개봉 200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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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바다>(2014)

<고요의 바다>는 저예산으로도 우주 공간을 완성도 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다. 반짝이는 상상력. 그것만 있으면 된다. <고요의 바다>를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든 장치는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다. 조명과 클로즈업을 비롯한 다양한 촬영기법이 동원됐다. 거대한 세트나 방대한 양의 컴퓨터 그래픽이 없어도 관객을 미스터리한 달(고요의 바다) 기지로 안내할 수 있다. 꿈에 죽은 동생을 자꾸 보게 된 임상병리학자 정원(최희진)이 10년 만에 버려진 달의 기지에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고요의 바다>는 현재 진화 중이다. 배두나, 공유, 이준 등이 출연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다시 제작되기 때문이다. 단편에서 확장된 이야기를 한다고 전해진다. 정우성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연출은 원작 단편의 최항용 감독이 다시 맡았다. 각본은 <마더>의 박은교가 집필한다. 저예산 SF가 고예산 SF로 변화 중인 <고요의 바다>다.

고요의 바다

감독 최항용

출연 허정도, 최희진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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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