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홍콩 영화와 비디오를 접하며 자란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2021년 2월 말, 간암 투병 중이라고 밝힌 홍콩 영화배우 오맹달이 투병 소식을 전한 후 팬들이 안타까워할 새도 없이 27일 세상을 떠났다. 생전 10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홍콩 영화의 한 축을 맡았던 오맹달. 그의 작품 중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모아봤다. 그의 많은 출연작 중 한국 관객들에게도 가장 익숙할 법한 작품 위주로 골랐으니, 또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면 댓글로 함께 공유해주길 바란다.
영웅본색 2 & 도신
대부분 오맹달 하면 주성치 영화 속 모습을 떠올린다. 그 작품들이 홍콩 영화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유행한 시기에 나왔기 때문인데, 더 올라가면 절친으로 유명한 주윤발과 함께한 <영웅본색 2>, <도신>에서의 그를 찾아볼 수 있다. <영웅본색 2>, <도신> 모두 돈을 굴리는 사채업자로 등장한다. <도신>에선 도자이(유덕화)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채업자 '성 형님' 역. 의리고 뭐고 얄짤없이 돈만 챙기는 업자답게 그럴싸하게 빼입고도 매번 껄렁한 자세와 행동들을 일삼는다. 그러다 기억을 잃은 고진(주윤발)에게 탈탈 털릴 때 급격히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천연덕스러운 리액션이 영락없이 어울린다.

- 도신 - 정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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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왕정
출연 주윤발, 유덕화, 장민, 왕조현
개봉 1989.12.23.
도성
주성치 첫 주연 영화이자 두 사람이 영혼의 파트너가 돼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첫 장. 오맹달은 투시 능력을 가진 아성(주성치)의 삼촌 자달로 나온다. 처음 아성을 보고는 치를 떨다가 그에게 초능력이 있단 걸 알고는 바로 태도를 바꿔 도박판의 큰손으로 만들려고 한다. 조카 이용해 먹는 마냥 나쁜 삼촌 같지만, 아성에게 여러 도박 기술을 알려주고 멘탈을 잡아주는 나름 정신적 지주. 경마 장면에서 9를 6으로 보고 베팅했다가 절망하는 장면이나 이몽을 그리워하는 아성을 설득하는 장면은 오맹달의 뻔뻔한 연기가 돋보인다.

-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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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원규, 유진위
출연 주성치, 장민
개봉 1990.11.17.
천장지구
꽤 유명한 영화이면서 오맹달과 주윤발의 일화로 유명한 <천장지구>. 오맹달은 이 영화에서 아화(유덕화)의 친한 형이자 길거리 주차장을 전전하는 포숙 역을 맡았다. 아예 범죄에 발 담그고 사는 아화와 달리 굽힐 때는 굽히고 때로는 어린 양아치들에게 치이는 신세. 극중 아화의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앞서 말한 주윤발과의 일화는 오맹달이 도박으로 큰 빚을 졌을 때, 주윤발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절친 주윤발의 거절에 오맹달은 마음을 잡고 <천장지구>에서 명연기를 펼쳐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이후 알고 보니 주윤발이 오맹달 모르게 이 영화를 연출한 진목승에게 그를 추천했던 것. 오맹달은 이 사실을 알고 주윤발에게 용서를 구했으며 주윤발 또한 오맹달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 천장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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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진목승
출연 유덕화, 오천련
개봉 1990.10.13.
도학위룡
오맹달이 주성치와 여러 작품을 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기다렸던 건 그들의 관계가 늘 고정돼있지 않기 때문. 나이상으론 당연히 부자 관계나 삼촌-조카 관계가 어울릴 법하지만 주성치와 오맹달은 캐릭터들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했다. 그중 하나가 <도학위룡>의 주상성(주성치)과 조달숙(오맹달). 나이는 조달숙이 위지만 계급은 주상성이 높은 묘한 상하관계에서 두 캐릭터의 케미는 한층 빛났다. 특히 달숙이 '아빠'로서 상성을 혼내야 할 때 보여주는 장면(위)은 하극상 개그의 끝을 보여준다.

- 도학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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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진가상
출연 주성치, 장민
개봉 1991.12.00.
서유기
주성치-오맹달 콤비의 영화 중 무엇 하나 딱 고르기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호불호 없이 호평받은 영화는 <서유기> 2부작일 것이다. 특히 1편 <서유기-월광보합>에서 지존보(주성치)의 사타구니에 불이 붙자 두 사람이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은 전후 관계 상관없이 표정과 시선 처리만으로 코믹한 기운을 한껏 전한다. 눈빛과 고갯짓만, 그리고 두 사람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만으로도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느낌을 줘, 지금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만나는 장면. 이 뒤에 이어지는 비극(?)은 남성 관객들에게 여전히 고통스럽게 기억되고 있다.

- 서유기 - 월광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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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유진위
출연 주성치, 오맹달
개봉 1995.09.16. 2010.06.01. 재개봉

- 서유기 2 - 선리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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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유진위
출연 주성치, 주인
개봉 2010.06.01.
파괴지왕
무협지의 전형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주성치의 영화 중 하나인 <파괴지왕>. 이 작품에서 오맹달은 매점 주인이자 자칭 고권법의 계승자 귀왕달 역으로 주성치와 호흡을 맞춘다. 실의에 빠진 하금은(주성치)을 꼬드겨 무술 수업료를 뜯어내는데, 진짜 계승자인가 아니면 허풍선인가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 극중 중력을 이용해 계단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적풍화륜'을 가르치는 장면이 유명하지만, 코미디로 보기엔 좀 많이 아픈 감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패러디 장면과 두 사람의 만담(?) 장면도 인상적이다.

- 주성치의 파괴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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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력지
출연 주성치
개봉 미개봉
소림축구
주성치 작품 중 글로벌한 디딤돌을 마련한 <소림축구>. 이 작품이 주성치-오맹달 콤비의 마지막 작품이다. <소림축구>로 입문한 자와 <소림축구>로 희망을 놨다는 자가 있을 정도로 기존의 주성치 영화와 다른데, 오맹달이 연기한 명봉 역도 다르다. 기존 역할들이 오지랖, 혹은 바보 같은 캐릭터로 주성치와 함께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다면 명봉은 과거의 실수로 평생 고통받는 선수의 페이소스를 담아야 했다. 즉 전면에서 코믹한 연기를 펼치기보다 정극처럼 감정적인 연기를 하되 다른 캐릭터들의 괴짜 같은 행동을 받아주는 쪽에 가깝다. 실제로 작품을 여러 차례 보면 문득 그의 진지한 연기가 뭉클하는 순간들이 많다.

- 소림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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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주성치
출연 주성치, 자오웨이, 오맹달
개봉 2002.05.17.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