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고전이자 지금도 자주 거론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4월 28일 재개봉했다. 국내에는 1957년 첫 선을 보인 후 1972년, 1995년 재개봉으로 관객을 만났으니 이번 재개봉은 26년만. 230분의 대장정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색 바래지 않고 관객들을 감탄케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부모님을 모시고 봤다고 할 만한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 어쩌면 젊은 관객들에겐 이 작품이 그저 이름만 많이 들어본 영화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유명한 걸까 궁금한 요즘 영화 관객들을 위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오랫동안 사랑 받은 이유를 정리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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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빅터 플레밍
출연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 레슬리 하워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개봉 1957.03.25. 2021.04.28. 재개봉
역대급 흥행 1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는 현재 <아바타>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2019년 1위 자리를 빼앗았지만, <아바타>가 중국에서 재개봉하면서 다시 1위를 탈환했다. 그런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역대급 1위라니. 이유는 이렇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1939년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근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영화보다도 흥행 수익이 높다는 것. 이게 단번에 피부에 와닿기가 어려운데, 수치로만 보면 <아바타>가 28억 달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4억 달러를 기록했다(두 영화 모두 재개봉 포함). <아바타>가 압도적인 것 같으나,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아바타>의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수치상 고작 4억 달러로 엄청 낮아 보여도,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 없는 것. 그 외에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65년 <사운드 오브 뮤직> 개봉 전까지 26년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그것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사랑했으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스타 클라크 게이블과 신성 비비안 리의 만남
지금이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면 자연스럽게 비비안 리를 떠올리지만, 당시엔 클라크 게이블이 훨씬 유명한 스타였다. 비비안 리는 영국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주연작을 하나 둘 찍고 있던 상황. 슈퍼스타급 남성 배우와 신성 여성 배우의 만남, 그것만으로도 주목받기 충분한데 심지어 비비안 리는 영화 전체를 리드하는 스칼렛 오하라의 진취적인 면과 심리적 변화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존재감을 짙게 남겼다. 슈퍼스타이자 명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자연스럽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관심이 집중됐다.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의 비주얼이 정말 잘 어울릴뿐더러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의 관계도 단순한 연인 이상의 복잡한 매력이 있어 고전 영화하면 떠오르는 제1의 조합이기도.
격정적 사랑과 근현대사의 만남
(feat. 미국인들의 역사 사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간단히 로맨스 영화라고 칭한다면, 반만 맞는 정답일 것이다. 이 영화는 스칼렛 오하라와 그에게 반한 레트 및 주변 인물의 여정이자, 동시에 남북전쟁을 지나온 인물들의 역경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860년대 남북전쟁 전후를 포괄적으로 그린다. 이 남북전쟁이란 소재는 미국 현지 관객들과 세계 관객들을 모두 사로잡은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영화와 전쟁 하면 관객들이 기대할 스펙터클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충족시켜준다. 또한 미국 관객들은 일반적으로 역사가 짧은 국가의 구성원으로 미국의 역사를 그린 작품을 선호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스펙터클 사극 시대가 도래한 것도 이런 이유. 한마디로 남북전쟁이란 소재가 사극에 대한 갈망과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감을, 현지 관객들과 세계 관객들의 입맛을 모두 충족시켜준 것.
진취적인 주인공과 개성 있는 앙상블
국내에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영화로서만 언급되는 경우가 많으나, 원작 소설부터 출시 후 곧바로 명작 반열에 오른 케이스다. 1936년 출판 후 1937년 퓰리처상까지 받고 당시 필독서 취급을 받았으니까. 이런 탄탄한 원작 덕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방대한 스토리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을 영화에 풀어놓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핵심이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만 보더라도 자신의 인기를 과시하는 모습 뒤로 사실은 애슐리만을 바라보는 순정적인 면이 있고, 전쟁을 겪으면서 가장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무쌍한 성격 덕분에 스칼렛은 여성들을 평면적으로 그렸던 할리우드에서 상징적인 아이콘이 됐다. 레트 버틀러도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은근히 우직한 성격에 클라크 게이블 특유의 매력이 더해져 영화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부하게 했다. 모범적이면서 우유부단한 애슐리, 이상적인 인간상에 가까운 멜라니는 에너지 넘치는 스칼렛-레트 커플에 휘둘리지 않게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스칼렛의 곁을 지키는 유모 마미는 억척스러운 잔소리꾼이지만 그의 가문에 누구 못지않은 자부심으로 스칼렛 오하라와 티격태격하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이런 식으로 각각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더라도 매번 다른 캐릭터들을 살펴볼 수 있게 만들고, 영화가 만든 세계를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줬다.
1860년대를 위한 수많은 세트와 의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사극영화다. 그러니 이 영화가 제공하는 오락 중 하나는 얼마나 1860년대 남북전쟁 시기를 정확하고 황홀하게 묘사하는가였다. 이 부분은 그동안 영화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약 50여 명의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 중 스칼렛 오하라나 레트 버틀러 같은 주연급은 30벌이 넘는 의상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위해 의상만 5000벌가량이 제작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할리우드의 테크니컬러 카메라 7대가 있었는데,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장에 동원됐다고. 전쟁 이후 수많은 사상자를 표현하기 위해 엑스트라만 8000명이 동원됐다. 이런 수치만 보더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역대 최고의 스펙터클로 홍보해 관객들을 대거 모집할 수 있었다.
영원히 마음에 남을 이미지
전술한 내용으로 오래 사랑 받은 이유를 알기 어렵다면, 백문이 불여일견.영화를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보여주는 시각적 이미지는 언어로 전하기 어려우니까. 특히 영화에서 원경 속 인물을 비추는 장면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석양이 지는 타라 농장을 바라보는 스칼렛 오하라의 실루엣. 한사코 키스를 거부하는 스칼렛에게 키스하며 입대를 다짐하는 레트. 그 많은 부상자를 헤치며 의사를 찾는 스칼렛. 영화를 안 본 관객도 이미지로는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비록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관념들을 담고 있긴 하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빚은 순간들은 지금까지도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게 관객들을 오랫동안 타라에 붙들어둔 힘이 아닐까.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