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이면 소니의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개봉한다. 스파이더맨은 설정상 15세 소년이지만, 가히 마블의 No.1 대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인급 존재감을 과시한다. 때문에 마블 스튜디오에 있어서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아이언맨>(2008)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일 것이다.
이렇게 어깨가 무거운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이 상대하게 될 적수는? 예상한 대로 이번 영화의 메인 빌런은 원작 만화의 팬이라면 익숙할 스파이더맨의 숙적, 대머리 독수리 아저씨 '벌쳐'다.
예고편에서 벌쳐는 상당히 정교해 보이는 엑소스켈레턴 형태의 슈트를 입고 나온다. 비주얼만 놓고 보면 아이언맨과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로 보이지만, 1963년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벌쳐는 말 그대로 '대머리 독수리'를 닮은 노인 악당이었다. 원작에서는 팔에다 날개만 붙인 악당 벌쳐가 어떻게 비행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스스로 "내가 어떻게 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고만 일축하고 넘어간다. 비행 능력 외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지만, (스파이더맨의 적수들끼리 꾸린 팀인) '시니스터 식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등 상당히 등장 빈도가 높은 스파이더맨의 숙적으로 자리매김했다.
벌쳐가 코믹스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초록 색깔의 쫄쫄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좀 더 기계적인 슈트를 입은 적도 있지만 기본적인 능력이나 외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쫄쫄이를 입은, 현실감 떨어지는 빌런을 등장시키기는 곤란했던 모양인지 벌쳐를 하이 테크 빌런으로 변모시켰다. 재미있는 건, 오래전 제작이 취소된 <스파이더맨 4>(가제)에 벌쳐가 메인 빌런으로 내정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니 내부의 이런저런 이유도 있었고) 샘 레이미가 연출한 <스파이더맨 3>(2007)의 미적지근한 반응 때문에 시리즈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으로 리부트되는 바람에 스크린 데뷔가 늦어지긴 했지만, <스파이더맨 4>에 등장하기로 했던 벌쳐는 기본적인 디자인과 스토리보드까지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는 벌쳐가 <어벤져스>(2012)에 등장한 외계 기술의 잔해를 이용해서 비행용 슈트를 제작한다는 설정인데, 이 슈트를 만들어주는 조력자로 '팅커러'가 등장한다. '테러블 팅커러' 또는 '매드 팅커러'라고도 불리우는 이 과학자·기술자의 등장 자체가 원작에 대한 기발한 오마주로 보인다.
1960년대 초 마블 코믹스에서 발간한 32페이지 정도 분량의 간행물들은 여러 부(part)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는 1930~40년대에 코믹스 한 호를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하던 시절의 유물과 같은 과도기적 형태다. 벌쳐가 처음 등장한 시리즈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호에서 1부엔 벌쳐가 등장하고, 2부엔 팅커러가 등장한다. 같은 호에 등장했을 뿐 스토리 자체는 서로 개연성이 없는 별개의 작품이었다. (아마도 의도적이었겠지만) 마블 스튜디오는 이 두 스토리를 교묘하게 하나로 융합한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소니가 이번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통해 마블 유니버스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데미지 컨트롤'을 소개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데미지 컨트롤'은 슈퍼히어로와 빌런들의 전투가 벌어진 폐허 현장을 수습, 복구하는 정부 소속 부서이다. 예전부터 TV 시리즈로 별도 제작하니 마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추측컨대 에이드리언 툼스(벌쳐의 인간일 때의 이름)가 데미지 컨트롤 소속 직원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한다. 폐허 복구 현장에서 주요 외계 기술들을 개인적 사용 목적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벌쳐는 특별한 캐릭터다. 필자가 처음으로 구입한 미국 만화책의 표지에 등장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1994년 봄, 친구 어머니가 가판대에서 사주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387호의 표지에는 젊고 모발도 풍성한 벌쳐가 노인이 된 스파이더맨의 멱살을 움켜쥐고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시 가판대에 있던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들 사이에서 필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궁금증을 유발한 책이었다. 벌쳐가 스파이더맨의 숙적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대머리 노인인 벌쳐가 스파이더맨의 젊음을 흡수하는 그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벌쳐를 연기하는 배우 마이클 키튼은 "예전에 배트맨을 연기해 본 경험이 있기에 슈퍼히어로 영화에 거부감이 없어서" 벌쳐 역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몇 년 전의 <버드맨>(2014)까지 치면 벌써 날아다니는 히어로·빌런을 세 번째나 연기한 '비행 히어로·빌런' 전문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이언맨>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복잡한 슈트의 기계적 구조와 움직임이 주는 즐거움이었는데, 제작진은 벌쳐를 "아이언맨의 빌런 버전으로 상상하고 만들었다"고도 했으니 기대해 볼 법하다.
최원서 그래픽노블 번역가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