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한 배우들의 맨얼굴을 알아보긴 쉽지 않다. 여기, 연기만으로 분장의 힘을 낸 배우들이 있다. 캐릭터에 완벽 이입해 본인의 맨얼굴을 숨긴 배우들. 자신을 비워내고 캐릭터만 남겨 호평을 얻은 호러 영화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나릴야 군몽콘켓
<랑종> 밍 역

나홍진 감독이 제작한 <랑종>은 올해 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영화다. 태국의 이산 지역, 대대로 신을 모시는 무당 집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담는다. 극의 중심에 선 캐릭터는 무당 님의 첫째 조카 밍이다. 악령에게 쓰인 밍이 폭주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수위의 장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밍을 연기한 나릴야 쿤몽콘켓은 <랑종>을 통해 스크린 데뷔를 치른 신예. 악령에 쓰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한 달간 10kg을 감량한 그녀는 기괴한 몸동작과 표정을 통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연기를 펼치며 많은 이들을 잠 못 이루게(!) 만들었다. 

꿈에서라도 밍을 만날까 두려운 이들이라면 나릴야 쿤몽콘켓의 SNS 계정을 살펴보자. 밍은 그저 나릴야 쿤몽콘켓의 열연이 만든 캐릭터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그의 발랄한 본체를 확인할 수 있다. 배우이기 전 모델로 활동한 경험이 반영된 다양한 포즈가 인상적. <랑종>의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맞이해 한국어로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최근 다양한 장르의 명작이 쏟아내고 있는 태국에서 그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해보자.

랑종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출연 나릴야 군몽콘켓, 싸와니 우툼마, 씨라니 얀키띠칸, 야사카 차이쏜

개봉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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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타 뇽
<어스> 애들레이드 윌슨/레드 역

루피타 뇽은 <어스> 이전 <노예 12년> <블랙 팬서>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 익숙한 얼굴의 배우였을지라도 관객에게 충격을 전한 파격적인 캐릭터가 있었으니, 호러 영화 <어스> 속 레드다. <겟 아웃>을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어스>는 휴가지에서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불청객들을 만나 목숨을 위협당하는 한 가족의 끔찍한 하룻밤을 담는다. 

루피타 뇽은 이 작품에서 과거에 트라우마를 지닌 엄마 애들레이드 윌슨, 그리고 그와 똑 닮은 불청객 레드까지 1인 2역을 소화했다. 눈썹 염색에 핼쑥해 보이는 피부 분장만 더했을 뿐인데 본체와 180도 다른 그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작품. 성대를 잔뜩 긁어낸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 연기가 캐릭터에 개성을 더했다. 루피타 뇽은 이 작품으로 2019년 뉴욕 비평가 협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의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어스

감독 조던 필

출연 엘리자베스 모스, 루피타 뇽,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애나 디옵, 윈스턴 듀크, 팀 헤이덱커

개봉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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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샤피로
<유전> 찰리 역

<유전>은 가족을 둘러싼 저주에 맞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애니(토니 콜렛)의 사투를 담는다. 이 작품에선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은 21세기 최고의 호러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으니. 집안 대대로 이어진 저주를 그대로 물려받아 기이한 행동을 일삼던 막내딸 찰리다. 혀를 굴리며 낸 똑, 똑 거리는 소리만으로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던 캐릭터. 무력한 얼굴만으로도 공포감을 전하던 밀리 샤피로는 이 작품을 통해 평단이 가장 기대하는 아역 배우로 떠올랐다. 

문제가 있었다면 무례한 관객도 있었다는 것. <유전> 개봉 이후 밀리 샤피로는 외모와 관련한 악플에 시달렸다. 밀리 샤피로는 영화와 캐릭터를 위해 최악으로 분장하고, 이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보는 것이란 캡션을 남기며, 외모에 대한 폄하가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힘들었다는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이후 밀리 샤피로는 배우 활동과 함께 밴드 활동을 겸하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선 애프터엑스클래스(afterxclass)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맡아 활약 중인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렌스 마릴러
<로우> 쥐스틴 역

<티탄>을 통해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 <패왕별희>와 공동 수상한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 이후 두 번째, 단독으론 첫 번째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여성 감독이란 역사를 쓰며 화제를 모았다. <티탄>을 포함해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에 꾸준히 출연하는 그의 페르소나가 있으니, 프랑스 배우 가렌스 마릴러.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영화 <로우>의 주인공으로 나선 그는 이 영화에서 식인에 눈 뜬 소녀 쥐스틴을 연기하며 평단에 얼굴을 알렸다. 

채식주의자였던 소녀가 제 안에 숨겨진 본능을 일깨우며 쾌락을 향해 폭주하는 과정. 극과 극으로 치닫는 캐릭터의 서사를 빈틈없이 담아낸 가렌스 마릴러의 연기를 보고 나면 배우 본체에 대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어쩐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지닌 배우일 거란 첫인상은 접어두시길. 올해로 23살을 맞이한 가렌스 마릴러의 SNS에선 또래 청춘의 발랄함이 느껴지는 그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다. <티탄> 이후 공개될 차기작만 네 편인 프랑스의 재능 있는 신예. 국내에서도  그의 다양한 신작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보자.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