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하고도 반년, 드디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우리에게 새로운 히어로를 선보였다. 그것도 MCU 사상 첫 동양인 히어로 샹치였다. 9월 1일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제작 착수와 캐스팅 발표, 예고편 공개까지 정보가 하나하나 알려질 때마다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역시 마블 스튜디오였던가. 관객들 앞에서 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동양 문화를 세계관에 적절하게 어레인지하고, 호쾌한 액션으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이번 영화는 다양한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보는 재미를 안겼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혹은 영화 속 장면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영감을 준 영화들을 정리한다.

-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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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스틴 크리튼
출연 아콰피나, 시무 리우, 양조위, 진법랍, 플로리안 문테아누, 양자경, 장멍, 로니 쳉
개봉 2021.09.01.
캘리포니아 버스 액션 & 마카오 대나무 액션
= <폴리스 스토리> & <러시 아워 2>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반가우면서도 한편 놀랐을 장면은 초반부의 액션 장면이다. 텐 링즈의 부하들이 버스에 탄 샹치(시무 리우)와 케이티(아콰피나)를 공격하는 버스 액션 시퀀스는 과거 홍콩 액션 영화를 좀 보셨다 하는 이라면 바로 연상 될만한 영화가 있다. 바로 성룡이 출연한 영화 <폴리스 스토리>다. 극 중 성룡이 연기한 진 형사가 악역 주도를 잡기 위해 버스를 추격하는 시퀀스는 그의 긴 액션 연기 인생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버스 시퀀스는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긴 했지만, 버스 밖에 매달려서 이동하는 장면은 딱 봐도 성룡의 향기가 느껴진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이후 샹치와 텐 링즈의 부하가 맞붙는 마카오 시퀀스 또한 성룡의 작품에서 그 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성룡과 크리스 터커의 버디 무비 <러시 아워 2> 초반부, 리 형사(성룡)가 후 리(장쯔이) 일당을 쫓아 대나무를 타고 오르는 장면이 있다. 건물과 대나무 틀 틈새에서 상대를 제압하면서 벌어지는 액션과 누군가 대나무를 잡고 매달리는 순간 등 두 장면의 풍경이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실제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연출한 데스틴 크리튼 감독은 성룡의 모든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 폴리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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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성룡
출연 성룡
개봉 1988.07.23. 2015.03.19. 재개봉

- 러시 아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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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렛 래트너
출연 크리스 터커, 성룡
개봉 2001.09.21.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잔소리 가족
= <페어웰>
이 버스 시퀀스 직전, 샹치가 케이티의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분위기는 완전 다르지만 올해 초 개봉한 <페어웰>이란 작품이 사뭇 생각난다. <페어웰>은 미국에 사는 빌리가 외할머니를 위해 중국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난다는 내용인데, 하필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도 아콰피나가 연기했다. 제작진이 노렸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잔소리를 듣는 아콰피나의 모습과 손녀의 결혼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페어웰>의 새로운 버전을 보는 듯하다.

- 페어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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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룰루 왕
출연 아콰피나
개봉 2021.02.04.
우리가 모르는 태초의 자연?
= <고질라 VS. 콩>
갑자기 웬 괴수 영화? 싶을 수 있지만, 올해 개봉한 <고질라 VS. 콩>을 본 관객이라면 샹치 일행이 탈로에 처음 들어설 때의 경외감에서 <고질라 VS. 콩>에서 주인공 일행이 할로우 어스에 도착했을 때의 감정선을 연상했을 것이다. 탈로와 할로우 어스 모두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태초의 자연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 그리고 실존하지 않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세계라는 것 때문에 유독 더 닮아 보이기도. 물론 할로우 어스에 비하면 탈로는 그래도 사람이 살만한 평화로운 지역이지만.

- 고질라 VS.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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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애덤 윈가드
출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밀리 바비 브라운
개봉 2021.03.25.
힘과 유려함이 맞붙은 대나무숲
= <와호장룡>
감독이 뽑은 '영향받은 영화' 중 하나는 <와호장룡>.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엔 검을 쓰는 무술이 나오지 않는데, <와호장룡>이라. 다소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이모 난(양자경)이 샹치를 일대일로 지도하는 장면에서 리무바이(주윤발)가 용(장쯔이)을 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제압하는 대나무 숲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다소 맹목적으로 힘에 의존하는 샹치와 용을 상대로 난과 리무바이는 그 외의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몸소 알려준다. 샹치와 용이 걷게 되는 길은 각자 다르지만, 이들을 둘러싼 대나무숲과 이들을 마주한 훌륭한 멘토의 존재는 두 영화가 닮아 보이게 한다. 8∼90년대 무협 영화 같다는 평이 많은 것도 이 대나무숲의 이미지 영향도 있을 것이다.

- 와호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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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안
출연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장첸
개봉 2000.08.19. 2001.03.03. 재개봉
능력을 감추고 있는 천재?
샹치 = 윌 헌팅
정말 뜬금없어 보이지만, <굿 윌 헌팅>은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언급한 영화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MIT 청소부 윌(멧 데이먼)이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을 만나 점차 마음의 문을 연다는 이 성장 영화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아마도 데스틴 크리튼 감독은 샹치가 발군의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과거에 상처 입고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살고 있는 모습에 윌 헌팅의 성장기를 녹인 듯하다. 천재성을 감추고 살다가 숀을 만나고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하기로 한 윌과 암살자로 길러진 과거를 숨기다가 케이티와 난을 만나 스스로의 과거를 받아들이기로 한 샹치.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누구도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 <굿 윌 헌팅>을 굳이 언급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 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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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맷 데이먼
개봉 1998.03.21. 2016.08.17. 재개봉
그리고... 쿵푸허슬
영화에서 웬우가 텐 링즈를 사용하는 방식... 왠지 익숙하다? 아마 <쿵푸허슬>의 옷가게 주인(조지릉)의 액션이 겹쳐져서 그런 것 아닐까. 이 인물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 달리 홍가권의 계승자로 원형 고리를 팔목에 껴 무기이자 방어구로 활용한다. 텐 링즈처럼 초월적인 무기는 아니지만 초고수가 보여주는 액션답게 호쾌한 타격감이 일품이다. 감독과 작가진은 텐 링즈의 형태를 <소림36방>에서 따왔다곤 하지만, 데스틴 크리튼 감독 개인적으로 <쿵푸허슬>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 샹치의 방에 <쿵푸허슬>의 포스터가 걸려있기도. 그 외에도 <쿵푸허슬>에서 양과를 연기한 원화가 광보 역으로 출연해 반가움을 안겨준다.

- 쿵푸 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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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주성치
출연 주성치
개봉 2005.01.14.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