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로비는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2016년 온 세상에서 가장 많이 미디어에 노출된 여성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할리퀸으로 분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전세계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는 떨떠름한 반응을 얻은 한편, 마고 '할리퀸' 로비에게 쏟아진 극찬은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이번 영화人에서는, 우리가 마고 로비의 할리퀸으로 세상을 휩쓸 때까지, 지난 4년간 그녀가 할리우드에 흩뿌린 고귀한 흔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맞다. 이건 기사를 가장한 러브레터다.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
<어바웃 타임>의 샬럿
호주에서 크고 작은 작품들에 출연해온 마고 로비는 로맨틱코미디 명가 워킹타이틀의 <어바웃 타임>(2013)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신고식을 마쳤다. 조연이지만 영화를 본 많은 남자들은 메리(레이첼 맥아담스)보다 더 확연히 기억하는 역할, 팀(돔놀 글리슨)의 첫사랑 샬럿을 연기했다.
샬럿은 미처 인사도 나누기 전에 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팀은 그녀가 "등에 오일 좀 발라줄래?" 부탁하면 제정신으로 "잠시만, 이 책 마저 보고" 라고 대답할 수 없다. 공은 안 보이고 펄쩍 뛰어오르는 그녀만 보이니, 아무리 함께 테니스를 쳐도 이길 수가 없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시간여행 장농이 있더라도 쑥맥인 팀이 샬럿의 남자친구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바웃 타임>이 판타지인 이유는, 시간을 넘나든다는 설정보다, 나이를 먹은 팀이 샬럿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바웃 타임> 바로 보기
애인, 아내, 그리고 어머니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나오미
앞서 <어바웃 타임>이 공개됐지만, 전 지구에 마고 로비의 존재를 각인시킨 건 분명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미녀다. 대저택에서 온갖 친구들을 불러모아 흥청망청 마시고 노는 파티에서 조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처음 본 나오미(마고 로비)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나오미는 기다리는 여자가 아니다. 자기한테 애가 달아 있는 조단을 집에 초대하고, 곧 누드로 나타난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조단이 누리는 수많은 호사 중에서 가장 부러운 순간이다) 그리고 조단의 안주인 자리를 꿰찬다. 하지만 평화로운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조단의 난잡한 성생활은 누그러지지 않고, 약물 중독은 심해지고, 사업은 점점 기울어져 간다. 나오미는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오래오래 참다가, 조단이 완전히 끝장났을 때 그의 곁을 떠난다. 그 사이, 마고 로비는 연인에서 아내를 지나 엄마를 연기한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바로 보기
최후의 여자
<Z 포 자카리아>의 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이후 마고 로비가 선택한 작품은 SF영화 <Z 포 자카리아>(2014)다. 이렇다 할 CG조차 볼 수 없는 이 기묘한 SF에서 그녀는 핵전쟁 이후 시골 마을에 혼자 남아 외로이 살아가는 앤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전작에서 보여준 핀업걸적인 이미지는 끼어들 틈이 없다. 영화 내내 화장기 없는 메마른 얼굴로 종말론의 히로인을 구현할 따름이다.
<Z 포 자카리아>는 제목과 설정 모두 성경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앤은 곧 이브이고, 그녀의 삶에 등장하는 존(치웨텔 에지오포)은 아담, 케일럽(크리스 파인)은 뱀을 은유한다. 앤과 존이 연대를 넘어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사이 등장하는 케일럽의 존재는 두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흥미로운 것은 앤이 단한시도 유혹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더라도, 앤은 존의 이성을 옭아맨다는 점이다. 비단 두 사람이 아담과 이브이기 때문일까? 투박한 행색에도 펄떡이는 마고 로비의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아마 성립되지 않았을 설정이다.
사기꾼의 연애
<포커스>의 제스
마고 로비는 <어바웃 타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Z 포 자카리아>에서 모두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사로잡았지만, 통상적인 연인의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다. 윌 스미스와 함께 한 <포커스>(2015)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정통 로맨스를 선보인다. 그것도 아주 달달하게. 실제로 촬영 당시 마고 로비는 윌 스미스와 염문설을 뿌린 바 있다.
니키(윌 스미스)와 제스(마고 로비) 모두 사기꾼인 만큼, <포커스>는 마고 로비가 선사하는 팜므 파탈을 원없이 즐길 수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포커스>의 연애는 가볍지 않다. 사랑이 두려운 니키가 떠나고 3년이 지난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애는 예상 외로 꽤나 진중하게 흘러간다. 사기를 소재로 한 여느 영화들처럼 쉬운 관계를 유쾌하게 풀어내기보다, 사기의 서사를 중간에 멈추더라도 연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제스는 '사랑하기 때문에' 웃고, 불안해 하며, 눈물을 흘린다. ▷<포커스> 바로 보기
단도직입의 일장일단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의 타냐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2016)은 <포커스>의 감독 글렌 피카라, 존 레쿼 콤비의 신작이다. <포커스>가 로맨스와 스릴러의 느슨한 만남이었다면,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은 코미디와 사회 드라마의 조합이 눈에 띈다. 주연배우 티나 페이의 대표작 <30 락>의 각본을 쓴 로버트 칼록이 각색한 이야기는, 초장의 정신 없는 유머 후에 점점 퍼지는 '전쟁의 허무함'의 메시지를 퍼트리면서 매력을 더한다.
종군기자 타냐는 에두르는 법이 없다. 새롭게 현장에 온 주인공 킴(티나 페이)을 반갑게 맞아주다가도 대뜸 "당신의 보안 담당자들과 자고 싶다"고 말한다. 쭈뼛쭈뼛 작업을 걸어오는 남자에겐 곧장 "꺼져!"라고 답하는 건 물론이다. 타냐 덕에 킴은 무사히 혹은 즐겁게 아프가니스탄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다만, 거칠 것 없이 직설적인 면모가 늘 유쾌함만을 향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잘 적응하더라고 전장은 전장인지라 동료들이 다치거나 죽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때 타냐는 그들의 죽음을 이용해 출세할 궁리까지 거리낌 없이 전한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각박한 공기를 더하면서,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의 톤을 한껏 어둡게 만든다.
전혀 새로운 제인
<레전드 오브 타잔>의 제인
고전 애니메이션이 속속 현란한 CG와 함께 실사영화로 재탄생하는 요즘. <레전드 오브 타잔>(2016) 역시 그런 트렌드 아래서 제작됐다. 하지만 차별점은 확실하다. 대개 원작을 얼마나 더 화려하게 보여주느냐에 방점을 찍지만 <레전드 오브 타잔>은 기존의 연약하기만 한 제인을 강인한 여성으로 탈바꿈해 타잔만큼이나 확실히 영화를 장악하게 한다.
<레전드 오브 타잔>의 제인은 자신을 구해달라며 타잔의 이름을 부르짖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레온 롬의 일당에게 한시도 위축되는 법이 없고, "어서 비명이나 질러봐"라고 도발하는 레온 롬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린다. 타잔에 대한 찬사가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근육에만 쏟아진 한편, 마고 로비의 제인은 여성 캐릭터가 품을 수 있는 모든 매력을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매력 쏠림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불과 한 달 전 <레전드 오브 타잔>의 제인을 이미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레전드 오브 타잔> 바로 보기
무능력한 선생님
<빅쇼트>의 마고 로비
<빅쇼트>(2016)에서 마고 로비는 카메오다. 그녀 자신으로 등장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경제 용어들을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 용어들은 마고 로비가 몸을 담그고 있는 저 거품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남는 건 그녀의 섹시한 자태뿐. ▷<빅쇼트> 바로 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