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편의 흑백영화가 보여준 먹먹함을 기억하는가. 이준익 감독의 <동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혁명가 송몽규(박정민)의 삶을 그린 저예산 영화 <동주>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서점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과 평전이 팔렸다. 송몽규에 대한 재조명도 이뤄졌다.
올해 <동주>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가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박열>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과 역시 아나키스트인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1923년 6000여 명 조선인의 목숨을 앗아간 간토(關東, 관동)대학살의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일부러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릅쓴 재판을 받게 된다.
6월13일 오후 2시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박열>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 직후 언론이 내놓은 반응을 모아서 소개한다. <박열>은 6월 28일 개봉한다.
한 가지 밝혀둬야 할 점이 있다. <박열>은 일제강점기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고, 이준익 감독이 <동주> 이후 연출한 영화다. <동주>처럼 저예산으로 제작됐다. 이런 까닭에 <박열>이 마치 <동주>의 ‘후속작’처럼 느껴지지만 <동주>의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신연식 감독과의 접점은 없다. 박열이라는 인물은 이준익 감독이 <아나키스트>(2000)를 제작할 당시 시나리오 준비 과정에서 직접 발굴했다.
<동주>와는 다른 분위기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박열>은 <동주>와 다른 분위기의 영화다.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제훈의 말이 두 영화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이제훈은 <동주>와의 비교에 대해 “<동주>에서는 윤동주, 송몽규를 시를 통해 사상을 펼쳐 보였다면 <박열>은 그것과 더불어 급진적으로 행동주의자여서 뜨겁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과격한 모습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열>은 “나는 조선의 개XX로소이다”를 외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립운동가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뜻을 나눈 연인의 목숨을 건 투쟁이 담긴 작품이었다.
-스타뉴스 김현록 기자
<박열> 봤어요. <동주>와는 많이 달라요. 훨씬 시끄럽고 다혈질이죠. 민족주의적인 끈적거림도 많지 않은데, 주인공들이 그런 식으로 끈적거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영화와 비교하면 여전히 캐릭터들이 덜 끈적거리죠.
-듀나 영화평론가
대박 싱크로율, 치밀한 고증
<박열>은 진중한 시놉시스와 달리 의외로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는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이 이유를 ‘고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열이 실제 그 시대에 그랬기 때문이었다. 박열 특유의 해학과 익살만이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나온 인물들은 이름과 날짜 등 모든 것을 다 고증했다. 실제 대사와 (일본) 내각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도 ‘아사히 신문’을 통해 하나하나 고증했다.”
주인공인 박열은 세상을 바꾸길 원했던 인물로 불꽃 같고 유쾌했던 사람이다. 때문에 1923년 관동대지진을 틈타 무고한 조선인이 6천여 명 학살당했던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진중한 시대극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느낌의 시대극을 그려냈다.
-한국일보 이주희 기자
박열로 변신한 이제훈은 단식에 분장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생소한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 속 이제훈은 박열 그 자체였다.
-엑스포츠뉴스 김선우 기자
최희서의 재발견
최희서는 <동주>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쿠미를 연기했다. <박열>에서는 이제훈과 함께 주연이라 불러야 마땅한 카네코 후미코를 연기했다. 이는 마치 <동주>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송몽규라는 캐릭터가 영화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최희서의 후미코는 송몽규에 버금가는 캐릭터다. 물론 박정민의 연기에도 뒤지지 않는다.
<동주>에서 엔딩을 책임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의 재소환을 받아 업그레이드된 연기력과 매력을 뽐냈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최희서는 박열의 신념적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았다. 일본 권력에 당당히 침을 뱉고, 일본인이지만 조선의 독립에 앞장서는 강단있는 신여성이다. 완벽한 일본어는 물론, 일본인이 발음하는 한국어까지 그대로 소화해 감탄을 자아낸다.
-TV리포트 김수정 기자
그래서 <박열>은 어떤 영화?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저예산으로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 목표였다. 제작비를 많이 들여서 찍을 수도 있겠지만, <동주> 때와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들의 진심을 전달하는 데 화려한 볼거리나 과도한 제작비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박열>은 기본적으로는 진지한 영화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청춘들의 이야기다. 아나키스트였던 박열과 후미코는 제발로 찾아간 일본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널리 알렸다. 그런 의미에서 <박열>은 어떻게 보면 법정영화일 수도 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이 나오지는 않는다. 또 어떤 면에서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의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이었던,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 박열. 이준익 감독과 이제훈이 만든 또 하나의 미(美)친, 광(光)기의 수작이 탄생했다.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박열>. 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그것이 의지라고 말한다. 이들은 쉽게 획득할 수 없는 위엄으로 시종일관 형형하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지만 위엄은 아무나 갖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한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