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지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은 <장르만 로맨스>는 배우 오나라의 첫 영화 주연작이기도 하다. 스크린 데뷔작 <김종욱 찾기>(2010)부터 지난 10여년 간 오나라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두루 모았다.

김종욱 찾기

1997년 뮤지컬 <심청>으로 데뷔한 오나라는 2006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주인공 나라(배우의 실명을 쓴다) 역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2008년 TV 드라마에 얼굴을 비춘 오나라의 스크린 첫 작품 역시 영화판 <김종욱 찾기>(2010)다. 오만석, 엄기준, 신성록, 원기준, 김무열 등 뮤지컬의 주역들이 대거 특별출연한 가운데, 오나라는 기준(공유)을 창업 컨설팅 구실삼아 등처먹으려는 대학동창 효정 역을 맡았다. 이 문제 때문에 경찰서에 조사 받고 있는 사람이 수십 명이 될 정도로 퀸카였다는 설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시나리오가 전국학력평가 지문으로 나와 학생들의 눈물을 자아내 화제가 됐던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 암 선고를 받은 중년의 주부 인희(배종옥)와 그의 가족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돈벌기는커녕 푼돈만 생기면 도박에 탕진하는 인희의 동생 근식(유준상)이 자주 가는 술집 주인 역으로 오나라가 짧게 얼굴을 비춘다.

댄싱 퀸

왕년에 ‘신촌 마돈나’라 불리던 정화(엄정화)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지만, 남편 정민(황정민)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나라는 정화가 속한 성인돌그룹 댄싱퀸즈의 멤버를 연기했다. 이름은 날라리에서 날만 뺀 라리. 콜로라도 출신이라고 했지만 영어는 세 단어 이상 말하지 못한다. 라리는 사실 전라남도 목포 출신. 소속사 실장 역의 이한위가 전‘라도’에 맞춰 콜로‘라도’로 바꿔보자 제안했다고.

내 아내의 모든 것

<김종욱 찾기>의 제작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도 오나라를 작은 역에 캐스팅 했다. 극중 이름은 장성기 스토커. 아침부터 짙은 화장을 한 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이미 이사간 장성기(류승룡)의 집 문을 두드리다가 출근하려는 두현(이선균)을 만난다. 오나라와 류승룡은 <내 아내의 모든 것> 8년 후 <장르만 로맨스>에서 전(前) 부부로 만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는 차태현을 비롯한 수많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빛나는 사극 코미디다. 서빙고 작전을 수행하는 무리 가운데 변장, 사기, 소매치기에 능한 김재준(송종호)은 좌의정의 첩 혜정(오나라)에게 접근해 적진에 침투한다. 혜정은 열녀도 유혹하는 바람둥이 재준을 열렬히(!) 사랑한다.

간첩

<간첩>(2012)의 주인공 김 과장(김명민)은 남파된 지 22년 된 간첩이다. 북과의 연락은 이미 끊긴 지 오래고, 지금은 아내 아들과 함께 가정을 꾸려 중국산 비아그라를 밀수해 팔면서 북한의 가족까지 먹여살린다. 오나라는 김 과장의 평범한 생활을 보여주는 아내 은혜 역을 맡았다. “화장실 청소부터 하라”는 명령에 남편이 툴툴대니 곧바로 제압한다.

천국의 아이들

기간제 교사가 문제학생들과 함께 방과후 동아리활동을 운영하라는 지시를 받고 뮤지컬 공연 연습을 하며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그린 <천국의 아이들>(2012). 오나라는 주인공 유진(유다인)의 친한 언니 하나 역으로 특별출연 했다. 오나라의 첫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를 연출한 박흥식 감독과의 인연인 듯. 유진 대신 노래와 춤을 가르치러 왔다가 정훈(박지민)에게 쌍욕까지 듣지만, 노래방에서 함께 놀면서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연다.

결혼전야

<결혼전야>(2013)는 네 커플이 결혼을 앞두고 각자의 문제로 헤어질 뻔하다가 결국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어우러졌다. 이들은 각자 느슨하게 이어져 있는데, 오나라가 연기한 여성지 기자 고선옥은 야구 코치 태규(김강우)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소미(이연희)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한 언니 그리고 대복(이희준)의 누나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연결한다. 세 사람을 대하는 각자 다른 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유나의 거리

오랫동안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온 여자 유나(김옥빈)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낸 드라마 <유나의 거리>(2014). 오나라는 의자매 같은 유나와 함께 소매치기를 하다가 경찰 출신의 달호(안내상)와 결혼해 그를 휘어잡고 사는 양순을 연기했다. 남편이 노래방을 운영한다는 설정과 맞물려, 양순은 종종 빼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워킹걸

조여정의 출중한 코미디 연기를 만날 수 있는 <워킹걸>(2015)에서도 오나라가 얼굴을 비췄다. 주인공 보희(조여정)의 남편 강성(김태우)과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수범(배성우)의 아내 역. 허구헌 날 밤 관계를 원해서 수범이 러시아 교환교수 자리를 알아보게 만들 정도로 사랑에 열정적이다. 수범의 푸념으로만 언급되다가 보희가 야심차게 준비한 기업박람회 현장에서 처음 얼굴을 비춘다.

여교사

오나라는 김하늘 주연의 <여교사>(2015)에 우정출연으로 참여했다.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는 사실상 짝사랑 하는 무용특기생 재하(이원근)를 위해 친구(오나라)에게 개인레슨을 맡긴다. “얼마나 아끼는 제자길래 니가 이렇게까지 해?”라 묻자 효주는 당당하게 “제자 아니야”라고 대답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2017)의 주인공 이형(차태현)은 고백하러 가는 날 교통사고를 당해, 사랑에 서툰 사람들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박 형사(성동일)도 그중 하나. 바쁜 업무 때문에 가정에 소홀한 나머지 아내(오나라)와도 문자메시지로만 대화 한다. 내일 법원에 갈 엄마아빠가 다시 가까워졌으면 하는 마음에 아들이 둘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렇게 묶인 채 거리를 다니다가 맨홀에 빠진다.

나의 아저씨

<나의 아저씨>(2018) 속 정희(오나라)는 동훈(이선균) 삼형제가 아지트처럼 드나드는 술집 정희네를 운영한다. 하루는 기분좋게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리다가도 다른 날은 추레한 행색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릴 만큼 감정 기복이 큰 인물. 그 이유는 정희가 상원(박해준)을 스무살 무렵부터 좋아했는데 그가 출가해 겸덕 스님이 된 후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염소 새끼도 사랑하고 풀떼기도 사랑하면서 나는 왜 안 사랑해”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정희. 발랄하고 유쾌한 ‘텐션’으로 가득한 오나라의 캐릭터를 따라온 이들에겐 많이 낯선, 하지만 그만큼 가슴 깊게 남는 캐릭터다.

SKY 캐슬

<SKY 캐슬>(2018)의 ‘찐찐’ 진진희는 분명 오나라라는 배우를 가장 폭넓게 대중들에게 알린 캐릭터다. 우양우(조재윤)의 아내이자 우수한(이유진)의 엄마인 그녀는 대부분 구김살 없이 쾌활한 태도로 스카이캐슬 사람들을 대하는 편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타입이지만, 저마다 비밀을 품고 사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훨씬 속편히 산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성격에, 상류층 특유의 화려한 스타일링도 능히 소화해 큰 사랑을 받았다.

라켓소년단

해남 땅끝마을을 배경으로 중학생 배드민턴 선수들의 성장을 그린 <라켓소년단>(2021)은 과도한 설정에 기대지 않은 담백한 이야기로  ‘무공해 청정 드라마’라 불렸다. 라영자(오나라) 코치는 현역 시절 세계 1위 선수였으나 돌연 은퇴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같은 코치인 남편 현종(김상경)과는 달리 차분하고 똑부러지지만, 아들 해강(탕준상)을 키우는 데엔 유독 서툰 면모를 보여준다.

장르만 로맨스

<장르만 로맨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혹은 덜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들을 풀어낸다. 상대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계속 사랑을 이어가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의 곁에 머무르는 이들의 마음이 꾹꾹 담겨 있다. 미애(오나라)는 10년 전에 헤어진 남편 현(류승룡)의 오랜 친구 순모(김희원)와 사귀면서도 머릿속엔 현의 연애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질 않는다. <장르만 로맨스>에서 사랑하고 사랑 받는 걸 동시에 하는 유일한 인물로 보면 더 흥미로운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