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연애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주인공이 상대를 향해 뱉는 날 선 대사가 어쩐지 익숙하고, 난장판으로 치닫는 주인공들의 상황을 보며 나도 모르게 지난 기억을 뒤적일 때. 그런 영화들은 픽션에서 현실이 된다. 전종서, 손석구 주연의 <연애 빠진 로맨스>가 바로 그런 유형의 영화다.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대사엔 내숭이 하나도 없고, 친구들과 이성 관계를 논하며 팝콘처럼 거침없는 대사를 팡팡 쏟아내는 인물들을 보며 데자뷔 효과를 느낀 관객이 한둘은 아닐 거다. 통통 튀는 발칙함으로 관객에게 색다른 자극을 전한 <연애 빠진 로맨스>처럼 저만의 ‘매운맛’ 포인트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던 연애 영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연애 빠진 로맨스

감독 정가영

출연 전종서, 손석구

개봉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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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러브
엄청난 강박 증세의 소유자 이건은 우연히 만난 레나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얼얼한 사랑에 빠진다. 문제가 있다면 레나를 만나기 전 폰 섹스를 하며 악덕 업체 일당과 엮였고, 그들이 레나와 이건의 사랑을 방해한다는 것. 그들에게서 벗어나랴, 사랑을 지키랴 정신없는 이건은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펀치 드렁크 러브>의 주인공들은 눈에 띄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완벽한 사랑을 펼쳐내는 과정은 보는 이마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제목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사랑에 흠뻑 빠진 이들의 감정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독특한 연출을 통해 시각화되어 나열된다. “당신의 얼굴을 꼭꼭 씹은 후 눈알을 파내서 먹고 싶어요”라는 엽기적인 고백 멘트만으로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충분하다.

펀치 드렁크 러브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아담 샌들러, 에밀리 왓슨

개봉 200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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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크레이지
<라이크 크레이지>는 이별의 과정을 섬세히 묘사한다. LA에서 대학을 다니는 제이콥과 안나.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교환학생인 안나의 학생 비자가 만료되며 두 사람은 헤어질 위기에 놓인다. 순간의 감정을 못 이긴 이들은 실수를 하고 마는데, 안나가 불법 체류의 길을 선택한 것. 결국 그녀는 미국에서 추방되고, 두 사람은 타국에서 긴 시간 서로의 공백을 견뎌낸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오래된 연인 사이 식어버린 연애를 목격한 적 있는 이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다. 모든 로맨스는 환상에서 시작해 현실로 끝난다. 끝난 걸 알면서도 끝낼 수 없는 씁쓸한 사랑의 단면을 조명하는 <라이크 크레이지>의 강점은 배우들의 연기. 당시 신인이었던 펠리시티 존스,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안톤 옐친의 명연기를 만날 수 있다. 수많은 감정을 단번에 담아낸 배우들의 눈빛은 대사보다 더 많은 말을 전해 관객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라이크 크레이지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출연 안톤 옐친, 펠리시티 존스

개봉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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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스포일러 주의
영화로 만든 연애 교본이 있다면 바로 <500일의 썸머>일 터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과 사랑 자체를 믿지 않는 썸머가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썸머와 이별 후 지질한 궁상이란 궁상은 다 떠는 톰은 지난 연애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 삼아 또 다른 연애관을 빚어내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캐릭터 위로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릴 수 있을, 가장 보편적인 연애 영화. <500일의 썸머>가 만인의 인생 로맨스로 손꼽히는 이유다. 볼 때마다 다른 디테일이 눈에 띄는 영화가 있고, <500일의 썸머> 역시 그 축에 속한다. 어떤 연애에선 톰의 입장에, 어떤 연애에선 썸머에 입장에 서 있었을 지난 연애사를 회상해 보며 주인공들처럼 관객 역시 한층 성장할 수 있다. 현실과 맞붙어있는 데다 교훈까지(?) 전하는 연애 영화.  

500일의 썸머

감독 마크 웹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개봉 2010.01.21. / 2021.05.26.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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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온도
<500일의 썸머>가 연애의 숲을 본 영화라면, <연애의 온도>는 연애의 나무를 본 영화다. 3년 동안 사내연애를 유지하다 헤어진 동희와 영. 어쩐지 헤어지자고 이야기한 순간부터 서로를 향한 눈빛이 더 뜨거워진다. 물론, 애정이 아닌 애증으로 달궈진 눈빛이다. “내 눈에 띄지 마라.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는 살벌한 대사를 “이런 개 같은 XX가” 라는 대사로 받아치는 연인의 종말을 관전하며 맘 편히 웃을 수 없었던 건, 날 선 말 포장지 속에서 너무나도 격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서로에 대한 미련이 선명하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분노가 남아있다면 헤어졌다 해도 헤어진 게 아님을. 0도부터 100도까지 롤러코스터처럼 예측할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연애의 온도를 조명하며, 지극히 사실적인 상황을 나열해 뼈 때리는 공감을 선사한 이 작품은 한국 멜로 영화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작으로 남았다.  

연애의 온도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개봉 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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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
의대생 신디는 다정한 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신디는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는 두 사람의 사랑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걸 품어주는 딘과 결혼에 골인한 신디. 행복한 날은 잠시, 신디는 점점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간다. 딘은 사랑을 되찾을 방법을 고민하지만, 신디에겐 사랑만 주는 딘과의 생활이 버거울 뿐이다. <블루 발렌타인>의 엔딩 크레딧은 아름답다. 이들의 찬란한 시절 위로 폭죽이 터진다. 만개한 폭죽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지만, 찰나의 순간 뒤에 남은 건 매캐한 연기뿐이다. 이들에게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건만, 순간의 감정은 이렇게 힘이 없다. 사랑이 빛을 잃어가고 팍팍한 현실만 남게 되는 과정을 직설적으로 담아낸 <블루 발렌타인>은 ‘가장 비관적인 멜로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블루 발렌타인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출연 라이언 고슬링, 미셸 윌리엄스

개봉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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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가 매운맛?’이라며 물음표를 띄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동화 같은 색감으로 현명하고 배려심 깊은 젊은 연인의 씩씩한 초상을 담아낸 <라라랜드>. 되짚어보면 개봉 당시 관객 사이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선명히 갈렸던 작품이었다. 환상에 가까운 연애담을 펼치던 <라라랜드>는 결말에 돌연 현실을 들이밀며 꿈만 같던 로맨스에 젖어있던 관객을 단숨에 현실로 낙하시킨다. 이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과거의 연인을 만나, 그와 펼칠 수도 있었던 만약의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일. 연주가 끝나면 아스라이 사라져버릴 이 덧없는 꿈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짓궂은 잔인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개봉 2016.12.07. / 2020.12.31.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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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