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과 확장판이 뭔가요?
내가 본 영화랑 네가 본 영화가 왜 달라?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와 분명 제목이 같은 동일한 영화인데 제목 뒤에 무슨 무슨 감독판, 어쩌고 저쩌고 확장판이라는 이름이 붙은 채로 굿다운로드나 IPTV를 통해 서비스되는 영화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를테면 최근에 다운로드 서비스로 공개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경우, 극장 상영판보다 30분 이상의 장면이 추가된 확장판인 것 처럼요. 그런데 극장판이니 확장판이니 감독판이니 뭐가 뭔지 너무 헷갈리죠? 먼저 깔끔하게 용어 정리부터 하고 가겠습니다.

감독판(Director's cut)이란?

영화나 TV드라마, 뮤직 비디오 등등의 영상 가운데 연출을 맡은 감독의 온전한 의도 아래 편집된 영상을 감독판(Director's cut)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모든 영화는 극장에 걸리는 상영본이 곧 감독판입니다만, 감독의 의도가 상업적이지 못하다거나 혹은 여러 다른 이유로 감독보다는 제작자의 의도에 더 가깝게 편집되는 영화도 있죠. 그럴 경우에 감독 입장에서는 '이건 내 영화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감독들은 영화 개봉 이후 공개되는 DVD나 블루레이에 자신의 연출 의도를 담은 '감독판'을 따로 발표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감독판으로는 최근에 타계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천국의 문>이 있죠.

천국의 문

감독 마이클 치미노

출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자벨 위페르, 크리스토퍼 월켄

개봉 1980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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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감독판이 생겨난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었습니다.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감독판의 경우에는 217분이나 됐는데요, 상영시간이 길면 극장에 걸렸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없으니까 스튜디오에서 감독의 동의 없이 제멋대로 재편집을 해서 148분 짜리로 만들어 개봉을 시켰죠. 스튜디오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회사의 명운을 걸었을 정도로 대규모 제자비를 투입했는데 망하면 안 되잖아요. 결국은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훗날 217분 짜리 감독판의 경우에는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확장판(Extended cut)은 뭔가요?

쉽게 말해서 '감독판'이란 용어를 싫어하는 감독들 때문에 생겨난 용어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임스 카메론과 피터 잭슨 감독인데요. 이 두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편집에 직접 관여한 '극장판이 곧 감독판'인데 왜 두 가지 감독판을 또 만드느냐, 뭘 더 만들고 싶다면 확장판이나 스페셜 에디션이란 이름으로 팬 서비스하면 된다.'는 의견을 종종 밝히곤 했죠. 이 감독들은 극장에 상영됐던 극장판 이후 DVD나 블루레이를 통해서 공개된 영상에 특수효과나 음악을 보완하고 제한된 상영시간을 맞추느라 미처 삽입하지 못하고 삭제됐던 영상을 덧붙여서 확장판, 혹은 스페셜 에디션, 얼티밋 에디션이란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대표적인 확장판으로는 바로,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호빗> 시리즈가 있죠.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감독 피터 잭슨

출연 일라이저 우드, 이안 맥켈런, 리브 타일러, 비고 모텐슨, 숀 애스틴, 케이트 블란쳇, 존 라이스 데이비스, 빌리 보이드, 도미닉 모나한, 올랜도 블룸, 크리스토퍼 리, 휴고 위빙

개봉 2001 뉴질랜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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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 감독은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된 시리즈의 확장판에서 추가 액션 장면과 캐릭터의 부가 설명을 도와주는 장면을 덧붙였습니다. 특히 대규모 전투 장면이 집중되어 있는 각 시리즈의 3편,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과 <호빗-다섯군대전투>의 경우에는 극장판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CG가 투입된 전투 장면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어쨌든 감독판, 확장판, 스페셜 에디션, 얼티밋 에디션 등등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한 편의 영화가 여러가지 판본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극장 상영이라는 제약 때문에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리고 관객들은 그런 영상을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확장판에는 무슨 장면이
추가됐나?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30분 분량의 장면이 추가

개봉 당시에 전세계적으로 악평을 들었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경우에는 무려 30분 분량의 추가 장면을 덧붙여 3시간 짜리 확장판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표현 수위도 달라서 관람 등급도 다시 받았죠. 추가된 장면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보완해주는 기능을 합니다. 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사건의 전후 사정을 설명하는 장면이 추가된 것인데요. 예를 들면 영화 초반 테러리스트에게 붙잡힌 기자(이자 슈퍼맨의 애인인) 로이스 레인을 구출하는 슈퍼맨의 사정이 추가됐습니다다. 슈퍼맨의 존재를 반대하는 여론이 있고, 이를 이용해서 슈퍼맨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려는 렉스코프 사장 렉스 루터의 음모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아예 통째로 삭제됐던 거짓 증언 여인의 범정 장면도 있어요. 극장에서 영화 중반까지 이야기 진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던 관객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영화가 됐달까요. 그러니까 영화 러닝타임은 자연스레 길어지겠죠.  
 

새로운 빌런 등장 장면 추가

그리고 영화 후반부의 액션 장면은 거의 동일합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모습이나 배트맨이 거칠게 액션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추가되긴 했지만 눈에 띄는 결정적 액션 장면이 삽입된 경우는 없습니다. 영화 후반 렉스 루터가 계속 종이 울린다, 종소리를 누가 들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혼잣말을 하는데 그에 대한 추가 설명 장면이 등장합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다음 편이 될 <저스티스 리그>에 이어서 등장할 빌런, 즉 악당 캐릭터가 미리 살짝 예고됐는데요. 원작 코믹스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뜬금없는 언급이 될 것 같아 극장판에서는 삭제한 듯 합니다. 아무튼 영화 후반 확장판에만 등장하는 캐릭터는 '스테픈울프'라는 캐릭터입니다. DC코믹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악당 캐릭터로 알려진 '다크사이드'의 수하라고 하죠. 참고로 다크사이드는 이렇게 생겼답니다.

무시무시한 DC코믹스 최강 빌런, 다크사이드
그 밖에 감독판, 확장판
영화들은 뭐가 있나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로버트 드 니로

개봉 198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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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보고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가 떠오른다고요? 아닙니다. 다른 영화에요. 웨스턴 무비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걸작이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총 3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139분 극장판과 229분, 269분 분량의 확장판이 그것이죠. 처음 편집본이 무려 10시간에 달해서 이를 줄이고 줄여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칸 영화제에 상영했습니다. 그 다음 극장 개봉 할 때는 긴 버전으로는 상업적 성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스튜디오의 판단 아래 139분 분량의 극장판이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는 가장 긴 버전의 감독 확장판이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되어 있죠.

킹덤 오브 헤븐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올랜도 블룸, 에바 그린, 리암 니슨, 제레미 아이언스

개봉 2005 미국, 스페인,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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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판과 확장판을 상습적으로(?) 만들어 공개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은 <킹덤 오브 헤븐> 역시 144분 버전의 극장판과 다른 192분 분량의 확장판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거의 48분이 늘어났으니 다른 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죠. 이 확장판은 극장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서 많은 비평가들이 아예 영화를 재평가했을 정도입니다. 확장판은 이야기 구성이 풍성해지고 설득력이 강해져 영화에 대한 몰입이 쉬워졌죠. 리들리 스콧 감독은 감독판 전문 감독이라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영화들을 감독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에이리언><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서 최근 만든 <카운슬러><마션>등의 영화도 모두 감독판 혹은 확장판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판본을 만들었습니다.

데어데블

감독 마크 스티븐 존슨

출연 벤 애플렉, 제니퍼 가너, 마이클 클락 던칸, 콜린 파렐

개봉 200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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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분 짜리 극장판과 133분 짜리 확장판이 있습니다. 확장판의 경우에는 새로운 액션 장면과 사운드트랙이 추가됐고 극장판보다 훨씬 코믹스의 분위기에 가깝게 만들어졌습니다. 등급이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표현 수위는 극장판과 비슷하고요. 조연으로 등장하는 존 파브로의 장면 분량이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고 있죠. 데어데블은 아주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캐릭터입니다.

지옥의 묵시록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듀발, 마틴 쉰

개봉 197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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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장작인 이 영화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공개됐죠. 다른 감독판 영화들이 그렇듯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역시 4시간 30분 짜리 오리지널 버전을 2시간 10분 분량으로 편집해서 개봉을 시켰었죠.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1988년 재개봉을 앞두고 1시간 9분을 추가한 리덕스 버전을 개봉시킵니다. 애초 감독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에 영화를 다시 만든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바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개봉 200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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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판이라는 말을 싫어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자신의 연출 의도를 조금 더 부각시켜 줄 수 있는 10분 분량의 장면을 추가해서 '스페셜 에디션'이란 이름으로 재개봉을 시켰습니다. 미지의 행성 판도라의 풍경과 나비족의 모습, 그리고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의 사연이 추가됐죠.

한국영화 감독판은?
황해

감독 나홍진

출연 하정우, 김윤석, 조성하

개봉 201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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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도 감독판이 존재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칸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서 극장 상영판과는 다른 버전의 감독판을 따로 제작했습니다. 감독 본인은 '감독판'이란 말을 너무 싫어해서 감독판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면서 감독판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3시간이 넘어가는 1차 편집본을 가지고 음향과 편집을 보다 매끄럽게 만져서 감독판을 재편집한 것인데요. 내용 구성이 달라지지는 않고 영화 초반 캐릭터 설정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외에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놀라운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다음, 감독판을 추가 개봉시킨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