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여성 배우들이 단체로 활약하는 액션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흔하게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배우 한 명이 원톱으로 나서거나 두 명이 콤비로 출연하는 작품 정도는 더러 개봉했지만, 이마저도 가뭄에 콩 나듯 했던 것이 사실. 이 때문에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잔뜩 모인 액션 영화 <355>의 개봉 소식이 더욱 반갑다. <355> 개봉을 맞아 여배우들의 화려한 멀티캐스팅이 돋보였던 할리우드 액션 영화 5편을 모아봤다.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 2000
<미녀 삼총사>
<미녀 삼총사>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에서 방영된 TV 시리즈 <찰리스 엔젤스>(Charlie's Angels)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맥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00년 개봉했다. 영화는 TV판과 마찬가지로 베일에 싸인 인물 찰스 타운젠드가 설립한 사설 첩보기관인 타운젠드 탐정 사무소에 소속된 세 명의 스파이들(aka. 찰리의 천사들)이 첩보 활동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먼저 팀의 리더인 나탈리(카메론 디아즈)는 화려한 카레이싱 솜씨와 변장술을 자랑하고, 반항기 가득한 딜런(드류 베리모어)은 격투에 강하며, 알렉스(루시 리우)는 해킹 등 첨단 기술에 능한 인물이다. <미녀 삼총사>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녹스 테크놀로지의 설립자인 부호 에릭 녹스(샘 록웰)가 납치를 당하고, 미녀 삼총사가 그의 행방을 쫓으며 그 뒤에 숨은 사건의 내막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왼쪽부터) <미녀 삼총사2-맥시멈 스피드>, <미녀 삼총사3>
나탈리, 딜런, 알렉스는 체력, 무술 실력, 폭파술 및 각종 첩보 능력을 소유한 실력 있는 스파이들인데, 영화 속에서는 그녀들의 신체적 능력보다는 미인계나 몸매 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와 별개로 영화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고, 3년 뒤 맥지 감독은 후속편 <미녀 삼총사2-맥시멈 스피드>를 들고 온다. 나탈리와 딜런, 알렉스를 연기했던 배우들도 그대로 출연했고, 새로운 적수로 데미 무어도 출연했다. 전작보다 흥행 면에서는 조금 더 앞섰고, 이후 한참 뒤인 2019년 배우진이 모두 교체된 <미녀 삼총사3>가 개봉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나오미 스콧, 엘라 발린스카가 찰리의 새로운 천사들이 되어 관객들을 찾았으나, 흥행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1984년 첫 개봉한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의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 배우들이었다.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해롤드 래미스, 릭 모라니스까지 영화의 엄청난 흥행과 인기에 힘입어 배우들은 모두 스타덤에 올랐고, 1989년 개봉한 속편 또한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속편 제작에 대한 이야기는 감감무소식이었는데, 2016년 무려 27년 만에 리부트 작품이 개봉했다. 그것이 바로 <고스트버스터즈>. 본편 속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을 모두 여성으로 바꾸었고,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답게 네 명의 주인공 중 레슬리 존스를 제외한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이 모두 코미디언 출신 배우이다. 덧붙여, 주요 출연진 중 유일한 남자배우인 크리스 헴스워스가 금발 섹시 비서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의 내용은 본편 시리즈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한다. 초자연 현상 전문가 애비(멜리사 맥카시), 물리학 박사 에린(크리스틴 위그), 무기 개발자 홀츠먼(케이트 맥키넌)이 유령 퇴치 전문 회사 고스트버스터즈를 설립하고, 패티(레슬리 존스)와 케빈(크리스 헴스워스)을 채용하며 유령 사냥을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듯 기존 시리즈에서 남자들이 연기했던 역할에 여배우들이 기용되고, 청일점인 남자 배우의 역할은 많은 영화들에서 여자 비서의 이미지로 소비되던 금발과 섹시 컨셉을 그대로 가져오며,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깬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반면 과도한 젠더 이슈로 영화 자체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며 아쉬운 점을 남기기도.
<오션스8> 또한 <고스트버스터즈>와 비슷한 결의 작품이다. 남자 배우들로 멀티캐스팅이 됐던 시리즈를 여성 버전으로 가져왔기 때문. 먼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개봉한 <오션스> 3부작은 1960년에 개봉한 영화 <오션스 일레븐>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여러 명의 범죄자들이 팀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을 담는다. <오션스 8>은 출연진을 모두 여성으로 바꾼 스핀오프 작품이다. 앞서 개봉한 본 시리즈들에서는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돈 치들, 케이시 애플렉 등 주연 배우들이 모두 남자들로 구성됐다. 줄리아 로버츠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조연으로 출연하긴 했지만 큰 역할은 하지 못했다. <오션스 8>에는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민디 캘링, 사라 폴슨, 아콰피나, 리아나, 헬레나 본햄 카터 등 이름만 들어도 놀랄만한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한다.
내용은 <오션스> 3부작의 큰 줄거리와 비슷하고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본편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여동생인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이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그녀는 전 애인의 배신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5년 후 출소하고, 동료 루(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사람들을 모아 한탕 하기 위해 새로운 작전을 계획한다.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캐스팅이 무색하게 흥행에서는 실패했고, 평가 또한 그다지 좋지 못했다. 차라리 <오션스> 시리즈의 스핀오프작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많았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Gunpowder Milkshake, 2021
2021년 개봉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앞서 언급한 <고스트버스터즈>나 <오션스8>처럼 이미 한 번 흥행한 시리즈들을 여성 버전으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관으로 꾸린 작품이다. 영화는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의 피를 이어 받아 킬러가 된 딸 샘(카렌 길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조직의 명령을 따르며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던 스칼렛은 15년 전 돌연 사라졌고, 샘은 엄마의 뒤를 이어 조직의 킬러로 충실히 살아간다. 그러다 회사의 눈 밖에 나며 쫓기는 신세가 되고, 그 과정에서 엄마와 그녀의 동료들 애나(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렌(칼라 구기노)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가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액션 영화로서 완전히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굉장히 익숙하고 어쩌면 뻔하기까지 한 플롯과 전개에, 영화를 보면서도 <킬 빌>, <존 윅> 시리즈, <킹스맨> 시리즈, <올드보이> 등 타 액션 영화들이 몇 번씩 떠오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성들의 지분율이 적은 킬러 캐릭터를 단체로 앞세운 작품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작품이고, 이후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했으나 흥행하지는 못했다. 1편 개봉 전부터 속편 제작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과연 확장된 세계관의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볼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355 The 355, 2022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355>이다. 글로벌 범죄조직에 맞서기 위해 CIA 요원 메이스(제시카 차스테인)가 각국의 최정예 블랙 에이전트를 모아 팀을 결성하고,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비공식 합동작전에 돌입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 세계의 요원들을 모았다는 설정에 맞게 캐스팅 또한 다국적으로 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미국, 다이앤 크루거는 독일, 페넬로페 크루즈는 스페인, 루피타 뇽은 케나·멕시코, 판빙빙은 중국 등 국적도 인종도 제각각이다. 덕분에 독일 BNG 요원, 콜롬비아 심리학자, MI6 출신 IT 전문가, 중국 블랙요원 등 각국 블랙 에이전트들의 면면에 신뢰감이 더해졌다.
영화 <355>의 제작자로 참여한 제시카 차스테인은영화 구상 초기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스파이 영화를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시작으로 영화가 기획됐다고 알려졌다.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 스파이들을 모아 만든 팀의 이름인 ‘355’는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당시 활약을 펼친 최초의 여성 스파이를 지칭하던 코드네임에서 따온 것이라고. 이에 제시카 차스테인은 “이 작품의 ‘355’라는 제목이 비단 여성 에이전트들의 활약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내고 있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