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자 캐릭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수식들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모습은 지적인 매력을 넘어 경외심까지 갖게 만드니까. 이러한 매력 때문에 영화에선 천재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다루지만, 그들에 대해 떠올렸을 때의 모습은 어쩐지 획일화돼 있다. 방에 틀어박혀 칠판에 수식을 마구 나열하며 중얼거리는 모습, 외관은 꾀죄죄하고, 눈 밑에 다크서클은 잔뜩 내려와 있다. 친구도 없고 사회성이랄 게 있을지 의문스러운 방구석 폐인의 모습.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터. 그래서 영화 속 천재 수학자들을 종류별로 나눠봤다. 다양한 유형의 천재 수학자들을 보며 가장 매력적이었던 영화 속 천재 수학자들을 댓글로 알려주시길!


<히든 피겨스>
흑인 여성 수학 천재 삼인방
<히든 피겨스>(2017)

천재성에 인종과 성별은 관계없다는 건 이제는 너무나 당연시되는 이야기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는 두 개 사이 상관관계가 분명했다.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초 미국의 첫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인 ‘머큐리 계획’에 엄청난 기여를 했으나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성 3인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학자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컴퓨터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엔지니어 메리 잭슨(자넬 모네) 세 사람은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 핸디캡을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겨냈다. 인종과 성별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천재성을 끊임없이 의심받아야만 했고, 그들은 의심의 순간마다 압도적인 천재성을 통해 입증해 보였다.

1960년대 NASA는 분명한 백인 남성 중심의 조직이었다. 회의 참여는커녕, 흑인 여성 화장실은 존재하지 않아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고, 공용 커피포트조차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여건 속에서 그들은 서로 연대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굴복하기보다 맞서길 택했다. 이는 그전까지 묘사했던 천재 수학자가 지니고 있는 많은 클리셰들, 방구석 폐인, 남성, 백인 등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한 캐릭터들로 그들은 일상을 파티처럼 즐길 줄 아는 이들이었으며 누구보다 긴밀하게 연대할 줄 아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성공은 곧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에서의 해방으로 이어졌고, 개인의 성취를 넘어 인식의 혁신으로 연결됐다. “요즘 NASA도 여성을 고용하나요?”라는 질문에 캐서린은 “NASA가 제게 일을 맡긴 이유는 우리가 치마를 입어서가 아니라 안경을 썼기 때문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히든 피겨스

감독 데오도르 멜피

출연 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자넬 모네

개봉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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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천재 수학자가 사랑하는 방식
<용의자 X의 헌신>(2009)

일본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 드라마 <갈릴레오>의 연장선상에 놓인 영화다. 드라마 <갈릴레오>는 소설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역대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에서 2007년 4분기에 제55회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평균 시청률 21.9%를 기록할 만큼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았던 작품. 영화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됐는데, 원작이 된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작품으로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탐정 갈릴레오라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테츠야(츠츠미 신이치)가 벌이는 두뇌 싸움을 다루고 있는데, 잘 벼려진 칼 위의 심장처럼 ‘사랑’과 ‘헌신’이 두뇌싸움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유가와 마나부와 이시가미 테츠야는 천재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캐릭터다. 철저하게 과학중심적인 지론을 믿는 유가와, 수학을 맹목적인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시가미. 두 사람이 천재성을 활용하는 방식은 영화의 또 다른 재미. 여담이지만, 소설 속 이시가미의 외관 묘사는 굉장히 비호감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일본의 인기 배우 츠츠미 신이치를 캐스팅해 매력적인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천재 수학자의 뒤틀린 낭만(!)을 잘 보여주었지만, 희끗한 머리와 어눌한 말투, 번들거리는 눈빛은 다소 전형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용의자 X의 헌신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츠츠미 신이치, 시바사키 코우

개봉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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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가르침은 수학을 넘어 인생으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

최근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은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과 명문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한 수포자 한지우(김동휘)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이학성은 북한의 천재 수학자였으나 수학이 군과 당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싫어 학문의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그러나 군과 당이 아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남한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보다 조용히 학교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한지우는 학생은 물론 교사까지 사교육을 당연시 여기는 자사고에서 수학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일반고에 가기엔 홀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는 상황.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학성을 찾아가게 된다.

이학성은 한지우에게 공식을 외우기보다 숫자와 함께 뒹굴며 수학과 사랑에 빠지라고 말한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학이 아닌, 진정한 학문으로서 수학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한지우에게 ‘수학적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전한다. 수학적 용기, 그건 “문제가 안 풀릴 때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대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도전하는 여유”다.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하는 자사고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건 사실 ‘수학적 지식’이 아니다. ‘수학적 용기’였던 셈이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한 번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로 귀결되는 듯 아이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어른들은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영화는 따뜻한 어조지만 뼈아프게 묻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감독 박동훈

출연 최민식, 김동휘

개봉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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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대를 본 남자>
천재 수학자들의 우정(feat. 브로맨스?)
<무한대를 본 남자>(2016)

<무한대를 본 남자>는 인도 빈민가의 수학 천재 라마누잔(데브 파텔)이 영국 왕립학회의 괴짜 수학자 하디 교수(제레미 아이언스)를 만나는 이야기다. 성격과 집안 사정은 물론, 가치관과 종교마저 다른 두 사람이지만 오로지 수학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영화는 실존인물인 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과 그의 후원자이자 영국의 수학자 G.H, 하디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다루고 있는데, 1910년대 인도와 영국의 관계를 떠올려 보았을 때 두 사람의 우정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인종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제국주의 시대 속에서, 식민지인이었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 세계적인 수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천재성과, 이를 순수하게 학문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하디 교수의 태도 덕분이었다.

굉장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라마누잔은 어렸을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천재성을 보였으나 수학 이외의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는 바람에 쿰바코남 대학교에서 중퇴하게 됐다. 그는 본격적으로 수학 공부를 하기 위해 여러 수학자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수학 정리들을 적어 후원자가 되어 달라 했지만, 제대로 된 수식도 아닌 대강 노트에 정리된 것을 진지하게 읽어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발견, 그를 영국으로 초청했다.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 좌절될 뻔했으나 그는 결국엔 영국으로 건너가 하디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그는 원주율을 비롯한 수학 상수, 소수, 분할 함수 등을 응용한 합 공식을 발견했는데, 후에 하디는 자신의 최대 수학 업적이 라마누잔을 발굴한 것이라 말할 정도.

무한대를 본 남자

감독 맷 브라운

출연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

개봉 20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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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
영화 속 천재 수학자계의 최고봉
<뷰티풀 마인드>(2002)

수많은 천재 수학자 영화가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뷰티풀 마인드>를 최고의 영화로 꼽는 이들이 많다. <뷰티풀 마인드>는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조연상, 각색상을 모조리 수상하며 영화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영화로, 미국의 천재 수학자 존 내시(러셀 크로우)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존 내시는 수학에 관심 없는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임 이론’의 초안을 구상한 인물로 1994년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그야말로 천재 수학자다. 그의 석사과정 지도교수는 프린스턴대학교 박사학위 추천서로 “이 사람은 천재입니다” 단 한 줄만 쓰기도 했다.

<뷰티풀 마인드>는 ‘비극적인 천재'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보아도 좋은 작품으로, 영화는 리만 가설을 풀다 조현병을 앓게 된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적 오만이 강했던 그는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뛰어들길 좋아할 만큼 학구열과 도전의식이 강했지만 그만큼 자신만의 세계가 견고한 사람이기도 했다. 복도를 서성거리거나 끊임없이 휘파람을 불거나 칠판에 알 수 없는 수식을 쓰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곤 했는데, 결국은 1959년 병원에서 망상성 조현병 판정을 받게 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현병 판정을 받았을 즈음에 그는 리만 가설을 집요히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광기 어린 집착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존재한다.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존 내시는 천재의 독창적인 사고와 기이한 행동으로 천재성을 표현했다. 평소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지만 수학 앞에서는 무서우리만큼 몰입하는,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를 두고 “천재성과 광기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드라마”라고 평했다. 반전 영화로도 유명한 만큼, 캐릭터는 물론 탄탄한 플롯과 연출의 3박자가 완벽한 작품.

뷰티풀 마인드

감독 론 하워드

출연 러셀 크로우, 에드 해리스, 제니퍼 코넬리, 폴 베타니, 아담 골드버그, 주드 허쉬, 조쉬 루카스, 안소니 랩, 크리스토퍼 플러머

개봉 200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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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