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나의 긍지, 나의 뿌리
★★★★
격동의 북아일랜드라는 시대 배경의 무게는 충분히 전하면서도 그 세계를 9살 소년의 눈으로 우회했기에 가질 수 있는 천진한 태도가 묻어난다. 혼란한 시대 풍경 안에서도 사랑과 일상을 지켜나가는 가족의 순간들은, 늘 혼란스럽고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세계 안에서 인류가 그나마 덜 엉망으로 존속해온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자기 자신으로서의 긍지와 나의 뿌리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전체를 따뜻하게 관통하고 있다. 영화가 삶에 줄 수 있는 낭만을 예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좋은 영화는 여전히 인간을 꿈꾸게 한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고향을 품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해
★★★☆
모두가 모두를 알고, 서로가 서로의 아이를 돌보던 시절. 웃음소리와 온기가 골목 어귀마다 자리 잡은 마을. 9살 버디(주드 힐)에게 벨파스트는 그런 곳이지만 문제는 그 시절이 1969년이란 점. 영화 <벨파스트>는 개신교와 천주교 간 갈등의 중심지였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가 무대다. 험악해진 어른의 세계와 달리 버디의 일상은 축구선수를 꿈꾸고 좋아하는 친구 옆에 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날이지만 곧 마을을 떠나야 한다. 벨파스트에서 자란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버디를 통해 고향을 떠난 이와 머문 이 모두가 그리워하는 시절의 공기를 선명하게 환기시킨다. 마치 흑백 화면에 컬러가 번지는 마법 같은 순간처럼.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우리 각자의 벨파스트’를 꺼내 보는 시간
★★★★
1969년, 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9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적인 이야기. 적어도 <벨파스트>를 만드는 순간만큼은 케네스 브래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감독이지 않을까란 상상을 했다. 자신의 뿌리를 그리는 연출자는 많지만, 그 과정에서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까지 획득하는 연출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벨파스트>는 이 모든 걸 이룬 영화다. 단순히 시대를 재현한 게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 낸 사람들의 삶 전체를 존중하고 있는 듯한 창작자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보편의 기억을 건드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삶이 바뀌고 있음을 <벨파스트>는 기록하고 증명해낸다. 짐작건대, 영화 끝에서 당신은 ‘당신만의 벨파스트’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현실을 향한 노스탤지어
★★★★
영화라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감독들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반영한 자전적 영화를 만들곤 한다. 감독은 수십 년 전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내고 관객은 한 예술가의 근원과 만나는 진귀한 경험을 한다. 이 시도가 성공할 경우에 굉장한 역작이 탄생하곤 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로 시작해 40년이 넘도록 배우, 연출가 등 여러 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케네스 브래너도 고향행을 택했다. 감독은 종교 갈등과 혐오, 분쟁이 일었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소환해 지금 전 세계가 처한 현실과 맞닿는 메시지를 대중적 화법으로 전한다. 가족, 성장 영화라는 평범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기능과 가치 측면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최고치 수준을 체감하게 만든다. 영화관 관람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이유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최고작이자 영화에 대한 애정과 헌사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21세기 <시네마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