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의 최고 화제 인물은 단연 윌 스미스다. 지난주 한국에도 개봉한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 후보에 오른 그는 장편 다큐멘터리상 시상을 하려던 크리스 록이 아내 제이다 핑켓의 짧은 머리에 대한 농을 던지자 무대 위로 올라가 록의 뺨을 치고 그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스미스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자신이 연기한 실존인물 리차드 윌리엄스를 향해 존경을 바친 그는 좀전의 해프닝에게 사과하며 장광설을 이어갔다. 윌 스미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그가 지나온 길을 정리했다. 

킹 리차드

감독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

출연 윌 스미스, 언자누 엘리스, 사니야 시드니, 데미 싱글턴

개봉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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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로 데뷔 하다
1980년대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쉬 프린스

웨스트 필라델피아에서 나고 자란 윌 스미스는 어릴 적부터 남들 앞에서 랩하는 걸 좋아했다. 17살 되던 해인 1985, 동네 하우스 파티에서 DJ 제프 타운즈가 백업 래퍼 없이 공연하는 걸 본 스미스는 그 자리를 대신했고 둘 모두 서로의 합이 대단하다는 걸 직감하고 머잖아 팀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쉬 프린스를 결성했다. 198611월 첫 싱글 ‘걸스 앤트 낫싱 벗 트러블’(Girls Ain't Nothing but Trouble)이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한 레이블 워드 업에서 발매돼 스미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히트 쳤고, 그 이듬해 발표한 데뷔 앨범 <록 더 하우스>(Rock The House)를 통해 대형 레코드사 자이브와 계약해 폭력과 섹스가 없는 음악을 지향해 ‘페어런츠 저스트 돈트 언더스탠드’(Parents Just Don't Understand), ‘써머타임’(Summertime) 같은 히트곡들을 배출했다.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쉬 프린스는 2019년까지도 간간이 다시 뭉쳐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근래 DJ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쉬 프린스

첫 연기
<더 프레쉬 프린스 오브 벨 에어>

윌 스미스는 1990년 가을 방송을 시작한 NBC 시트콤 <더 프레쉬 프린스 오브 벨 에어>의 주연을 맡아 연기 재능까지 뽐냈다.  (실제 윌 스미스처럼) 필라델피아 서부에 살던 주인공 윌 스미스가 동네 갱들한테 쫓겨 LA 부촌 벨에어에 사는 이모 집에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작품. 자유분방하고 넉살 좋은 (노동자 계급의) 윌이 상류층이 사는 보수적인 동네 벨에어에서 생활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여전히 9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드라마로 손꼽히고 있다. 1992<흔들리는 영웅>으로 영화계에 입성한 스미스는 이듬해 <5번가의 폴 포이티어>로 처음 영화 주연을 맡았다.


무비 스타
<나쁜 녀석들>

윌 스미스가 영화계 슈퍼스타로 도약하게 된 건 1995년 작 <나쁜 녀석들>부터였다. 80년대를 평정한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하고 스타 CF/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마이클 베이가 영화감독 신고식을 치른 <나쁜 녀석들>,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를 흑인 형사 콤비 플레이와 화려한 액션에 힘입어 제작비 대비 8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외계인 침공을 소재로 한 SF 액션 <인디펜던스 데이>1996년 독립기념일 시즌에 개봉해 <트위스터> <스크림> <스페이스 잼> <미션 임파서블> 등을 제치고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고, 중년의 백인 배우 토미 리 존스와 짝을 이뤄 코미디 감각을 뽐낸 <맨 인 블랙>1997년 흥행 3위를 기록하며 윌 스미스의 몸값을 제대로 높혔다. <맨 인 블랙>의 주제가 ‘맨 인 블랙’(Men in Black)으로 솔로 뮤지션의 커리어를 시작한 윌 스미스는 그해가 가기 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빅 윌리 스타일>(Big Willie Style)를 발표해 9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맨 인 블랙>

연기력과 스타성을 고루 갖춘 배우
(왼쪽부터) <와일드 아일드 웨스트>, <알리>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윌 스미스의 경력은 기복이 뚜렷했다. 대부 진 해크만과 함께 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둔 반면, <매트릭스>(1999)의 네오 역을 거절하고 선택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는 배리 소넨펠트 감독과의 전작 <맨 인 블랙>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라스트 모히칸> <히트>를 연출한 마이클 만 감독이 무하마드 알리의 삶을 영화화 한 <알리>(2001)에 캐스팅 돼 복싱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에 관한 공부까지 1년간 매진하며 준비한 무하마드 알리 연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아이 로봇>

스미스가 다시 흥행 배우의 저력을 보여준 건 90년대 두 히트작의 속편 <맨 인 블랙 2>(2002)<나쁜 녀석들 2>(2003)를 통해서다. 같은 감독이 연출을 맡은 두 작품은 모두 비평 면에선 악평이 잇따랐지만 시장에선 좋은 반응을 얻었다. SF 액션 <아이 로봇>(2004), 목소리 연기를 소화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샤크>(2004), 로맨틱 코미디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2005), 아들 제이든과 함께한 가족 영화 <행복을 찾아서>(2006), 오랜만에 액션 히어로의 매력을 발산한 좀비 영화 <나는 전설이다>(2007), 액션과 코미디 재능을 두루 보여준 <핸콕>(2008)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작품 모두가 미국 내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흥행력을 자랑했다. 8개 영화가 연달아 이만한 성적을 기록한 사례는 윌 스미스가 유일하다.

<핸콕>


가족
윌 스미스 가족. (왼쪽부터) 트레이시, 윌로우, 제이든, 제이다 핑켓, 윌 스미스.

가족은 윌 스미스의 커리어를 살피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3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헤어진 셰리 잠피노 사이에서 낳은 트레이를 ‘저스트 더 투 오브 어스’(Just the Two of Us) 뮤직비디오에 출연시켰던 스미스는, <프레쉬 프린스 오브 벨에어> 오디션에서 만난 제이다 핑켓과 1997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 제이든과 딸 윌로우를 두고 있다. 아내 제이다와 제작사 오버룩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스미스는 오버룩이 제작에 관여한 <행복을 찾아서>에서 제이든과 아버지-아들로 호흡을 맞췄고, 성룡과 제이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무술 영화 <베스트 키드>(2010)를 제작했다. 한편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을 기용해, 직접 각본까지 써서 제이든과 부자로 활약한 SF <애프터 어스>(2013)도 제작했는데, 스미스가 직접 연출에까지 관여했다고 알려진 <애프터 어스>는 점점 내리막을 걷던 샤말란의 커리어를 바닥까지 처박은 작품으로 회자된다. 한편 윌로우는 <나는 전설이다>의 스미스가 연기한 주인공 말리의 딸로 얼굴을 비추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제이든 스미스와 윌로우 스미스 모두 배우보다는 뮤지션으로서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행복을 찾아서>
<나는 전설이다>

윌 스미스가 놓친 작품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시나리오에 흥미를 못 느껴 고사한 <매트릭스> 외에도 스미스가 거절했거나 물망에 올랐던 영화가 성공을 거둔 경우도 꽤나 많다. 더 이상 경찰 버디 무비는 출연하지 않겠다면서 거절한 <러시 아워>(1998), 윌 스미스와 웨슬리 스나입스가 거절하고 고령의 새뮤얼 L. 잭슨이 캐스팅 된 (전설적인 흑인 액션영화 <샤프트>를 리메이크한) <샤프트>(2000), 영화 속 빌런의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해 장고 끝에 거절한 <폰부스>(2002), 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커플링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더그 라이먼 감독이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고집한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윌 스미스와 덴젤 워싱턴 등이 거론되다가 결국 제작자와 감독이 제이미 폭스를 선택한 <드림걸스>(2006),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장고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 거절하고 또 한번 제이미 폭스에게 돌아간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자신을 무비 스타로 만들었지만 속편 출연에 염증을 느껴 결국 외면한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2016) 등이 있다.


여전히 흥행 배우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0년대에 들어선 후에도 윌 스미스의 필모그래피는 부지런히 업데이트 되고 있다. 마고 로비와 호흡을 맞춘 <포커스>(2015), 실존인물 베넷 오말루를 연기한 <게임 체인저>(2015), DC 유니버스에 입성한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브라이트>(2017) 등 흥행과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두루 챙긴다는 인상.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실사판의 지니 역에 캐스팅 돼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받았지만 능수능란한 코미디 연기로 원작 속 로빈 윌리엄스의 빈자리를 제대로 채워, <알라딘>(2019)은 스미스 출연작 중 최초로 수익 10억 달러를 넘은 작품이 됐다. 2편에 이어 17년 만에 제작된 <나쁜 녀석들> 세 번째 시리즈 <나쁜 녀석들: 포에버>(2020)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영화계가 커다란 위기를 맞은 2020년의 최고 흥행작 자리를 차지하는 등 윌 스미스의 흥행 파워는 여전히 건재하다.

<알라딘>

오스카를 거머쥐다
<알리>
<행복을 찾아서>

앞서 언급한 대로 윌 스미스는 무하마드 알리를 연기한 <알리>로 처음 2002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미스와 함께 흑인 배우를 대표하는 덴젤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로 트로피를 가져갔지만, 당시 스미스는 처음 그래미와 오스카 모두 노미네이트 된 배우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가 다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행복을 찾아서>를 통해서다. 한물간 의료기기를 판매하다 거리로 나앉게 신세가 된 남자가 하나뿐인 아들과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과정을 그려 전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공교롭게도 2007년 남우주연상 역시 흑인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의 차지가 됐다. 

<킹 리차드>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2년, 윌 스미스는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 비너스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를 연기한 가족 영화 <킹 리차드>로 다시 한번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직접 제작까지 맡은 <킹 리차드>를 통해 이미 지난 1월 골든 글로브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던 그는 오스카까지 거머쥐게 됐다. 리차드 윌리엄스처럼 자식들을 적극 서포트 하는 모습을 보여준 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한 윌 스미스라 더욱 특별한 수상.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