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 도입 문제는 근래 한국 사회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다. 북핵의 위험을 방지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이 무기는, 미국 본토 방어에 실효가 있다는 사실, 외교적 불이익, 군민들의 꾸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난 4월 26일 경북 성주군에 기습 배치됐다. 이번 개봉한 <파란나비효과>는 사드 배치를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파란나비효과>는 사드가 무엇이고 이것이 어떤 실효성을 지니는지, 혹은 이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변화가 어떤지에 대해서 짚지 않는다. 마치 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평화롭게 기록할 것처럼, 앞으로 영화가 꾸준하게 따라갈 배미영, 이수미, 김정숙, 배정하, 배은하씨 등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그들이 어떻게 성주에 터를 잡게 되었는지,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소식을 접한 후 뭐가 달라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주에 처음 정착하며 느꼈던 평화로운 기분이 현재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금세 그들과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펑! 굉음을 울리며 사드가 미사일을 날리는 이미지와 그와 관련한 정보가 노출되지만 인서트 이상의 역할은 아니다. 관객은 어느새 군민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파란나비효과>는 사드라는 동시대와 밀접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제기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평화로이 살아가다 하루아침에 미사일의 공포에 떨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의 '변화'에 집중한다. 사드를 반대하는 농성을 오랫동안 이어가야 하기에 일상을 보내는 공간과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영화가 공들여 바라보는 변화는, 지금껏 살면서 단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국가를 향한 태도다. 잘 알려져 있듯, 경북 성주는 보수 정당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자랑하던 지역구였다. 세월호 참사와 사드 배치를 경험하고서도 지난 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56.2%에 달했을 정도다. 그런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나랏님'을 의심하고 자신의 뜻을 외치는 과정이 이어진다. "새누리당 안 찍을 거면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던, 여태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국군이 괴뢰군을 무찌른 사건이라고 믿어왔던 이들이 세상을 바로 보게 됐다고 고백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들이 성주 이곳저곳에서 "사드 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유해하기 때문이다. (화면에 거의 비치지 않는) 성주의 아빠들이 나라에서 알아서 잘해주겠거니 믿고 집 바깥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 엄마들은 한여름에도 구슬땀과 눈물을 흘리며 사드 배치를 철회해달라고 동분서주한다. 정치적인 신념 때문이라면 현실적인 조건에 쉽게 꺾였을지 모르나, 아이들과 살아가는 삶이 걸린 문제이기에 절대 물러서지 못한다. 젠더의 프레임을 내세워 영화를 끌어가는 건 아니지만, 관객은 생전 처음 사회에 반기를 내미는 그들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끝내 기억할 수밖에 없다.

군민과 군수. <파란나비효과>에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대립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민들의 설움을 들어주던 성주군수는 그들의 바람을 하나하나씩 배신하며 결국 정부가 원하는 방향의 결과만을 내놓는다. 점점 커지는 실망에 어떤 이는 군수를 두고 "가까이 대하면 참 좋은 분인데.." 하고 얼버무리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군수가 농성장에 있는 이들을 두고 "커피랑 술 파는 것들"이라고 망언을 뱉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군민들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군민과 군민 역시 대립한다. 기존에 배치될 거라던 곳이 아닌 타 지역에 사드가 배치될 거라는 보도가 나자마자 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은 등을 돌리고 농성장을 떠난다. 사드 배치 문제가 비단 성주만의 문제가 아님을 부르짖던 군민들은 그들의 변화에 또 다른 상처를 얹는다.

<파란나비효과>는 그동안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사드'와 '성주'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기록한 석 달 남짓한 시간, 성주군민들은 속시원히 이기지 못한다.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믿었던 이들은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 후, 러닝타임 90분간 함께했던 군민들을 떠올려보면 그 사투리 또렷한 목소리로 세상을 의심해보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그 마음으로 더욱 힘을 내서 연대를 호소하던 건강한 모습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들을 향한 지지의 첫걸음을 이 따뜻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P.S. <파란나비효과>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배미영씨의 사연을 담은 기사도 일독하길 권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