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고양이와 음악이다.”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한 말이다. 삶이 비참해지는 순간이 있다. 동창회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을 때,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할 때, ‘오늘 행복하면 됐지’ 라는 말이 위안이 아닌 자기변명처럼 들릴 때, 월급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절망과 비참을 만나게 되고, 조금씩 HP가 깎여 나간다. 이때는 고양이라는 처방전이 필요하다. 내 옆에 가만히 앉아 부드러운 털을 부비며 사랑을 표하는 고양이와 함께 있는 이 자그만 시간들이 모여 결국 살아갈 힘을 준다. ‘오늘도 우리 고양이 밥값 벌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절망을 이겨내며 출근한 당신을 위해, 고양이 영화들을 소개한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이치카와 미카코, 쿠사무라 레이코, 미츠이시 켄
고양이 영화계의 바이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외로운 인생에 고양이가 스며들었을 때, 인생은 얼마나 포근해지는가를 다루고 있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의 주인공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의 목표는 결혼, “얼굴은 보지 말자!”라며 굳게 결심까지 했건만 따르는 건 고양이 뿐이다. 사요코는 어려서부터 유독 고양이들이 잘 따랐는데, 내친김에 자신의 특기를 살려 고양이를 활용한 사업을 시작한다. 바로, 고양이들을 외로운 사람에게 빌려주는 고양이 렌트 사업이다.
리어카에 고양이 여섯 마리를 싣고 확성기에다가 “고양이 렌트합니다~” 라고 외치고 다닌다. “계란이 왔어요~”를 꼭 닮은 그 모습에 관객은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영화는 이렇게 천연덕스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영화에서도 이런 사요코의 모습이 통한 걸까, 사요코의 고양이를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죽음을 앞두고 홀로 사는 할머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중년 남성, 직장에 치
여 사는 직원.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지 못한 채 외로움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한 구석이 비어있는 마음에 사요코는 고양이를 빌려주어 그들의 공허함을 채워준다. 부드럽지만 야무지고, 제멋대로지만 사랑스러운 존재. ‘존재’에 들어갈 말로는 고양이도, 사요코도,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도 된다. 우리가 고양이를, 그리고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이치카와 미카코, 쿠사무라 레이코, 미츠이시 켄
개봉 2012.12.13.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출연 루크 트레더웨이
‘진짜’가 주는 감동이 있다. 우리가 드라마 장르 영화를 보고, ‘그래서 이 영화 실화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노숙자가 길고양이를 만나 완전히 달라진,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된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버스킹 뮤지션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상처 입은 고양이 밥을 발견하고 생활비를 모두 쏟아 부어 밥을 치료해준다. 약간의 비일상 뒤에 찾아온 여느 날과 같은 일상, 그는 언제나처럼 버스킹을 하지만 이전과 다른 따뜻한 환호를 느끼게 된다. 바로 고양이 밥이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환호했던 것.
영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11세에 가출하고 헤로인에 빠져 재활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마약 중독자와 버려진 길고양이는 사회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신세다. 그리고 이 동질감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걸로 나아간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내가 그들을 기른 만큼, 그들도 나를 길렀다는 생각이 든다. 준 것 이상의 사랑을 그들에게서 받을 때면,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기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감각, 때로는 ‘기르는 행위’ 그 자체가 구원이기도 하다.

-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출연 루크 트레더웨이
개봉 2017.01.04.
<고양이와 할아버지>
감독 이와고 미츠아키
출연 타테카와 시노스케
고양이를 주제로 한 만화를 만드는 네코마키의 『고양이와 할아버지』. 특유의 포근하고 말랑한 그림체를 고스란히 담아 영화로 만들어졌다. 일본의 한 섬마을에 사는 여섯 살 고양이 타마와 다이키치 할아버지(다테카와 시노스케)가 이웃과 함께 하는 일상을 보통의 따뜻한 일상을 담아낸 작품으로, 정유미 평론가는 별점 6점과 함께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서정적이지만 잔잔한 유머 포인트도 있어 힐링이 필요한 순간에 제격인 영화.
연출은 일본의 동물 사진작가 이와고 미츠아키가 맡았는데, 일본인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를 두 차례나 장식한 인물이다. 동물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걸로 유명한 아티스트인 만큼, <고양이와 할아버지>에서도 그 실력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역동적으로 고양이를 표현해 내는 게 일품이다.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최고 재미 포인트.

- 고양이와 할아버지
-
감독 이와고 미츠아키
출연 타테카와 시노스케
개봉 2020.04.23.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감독 조은성
출연 김하연, 박선미, 장혁진, 이용한, 박용준, 장쓰웨이, 양밍위에, 천시촨, 지엔 페이 링, 장찡메이, 쵸웨이, 쿠도 쿠미코, 우에하라 고지, 토미모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아니다. 조은성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로, 한국과 대만, 일본 속 길고양이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얼핏, 귀엽게만 보이는 설명이지만 다큐멘터리는 ‘나는 고양이다. 아직 이름이 없다’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길고양이 사진작가’ 김하연이 길에서 혀를 길게 뺀 채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묻어주는 장면과 함께 시작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고양이 화보집’이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큐멘터리는 고양이 학대를 증언하기도 하며, 길고양이의 현 상황을 말하는 데 더욱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원래는 야구 전문 피디를 꿈꿨다는 조은성 감독은 길고양이를 만난 후 카메라를 고양이에게로 돌렸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다양한 사건을 접했는데, 길고양이들이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꼈다”며 “고양이가 죽어나가고 학대 당하는 곳에서 아이들, 사람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고양이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 아이노시마, 에노시마 그리고 고양이 마을로 불리는 대만의 허우통을 보여주며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 가능한 삶’을 관객들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과 대조해, 혹독한 삶을 버텨내고 있는 서울의 고양이들을 보여주며 우리 역시 그들과 공존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다큐멘터리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감독 조은성
출연 김하연, 박선미, 장혁진, 이용한, 박용준, 장쓰웨이, 양밍위에, 천시촨, 지엔 페이 링, 장찡메이, 쵸웨이, 쿠도 쿠미코, 우에하라 고지, 토미모토
개봉 2017.06.08.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감독 윌 샤프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클레어 포이
혹시 이 그림을 본 적 있는지. 고양이 화가로도 유명한 영국의 화가 루이스 웨인의 이야기가 이번에 영화로 나왔다. 루이스 웨인이 활동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고양이가 부정적인 동물로 여겨졌다. 그런 시대에 그는 의인화된 고양이 그림을 공개해 결과적으로 유럽 전역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바 있다. 탁월하면서도 독창적인 그림 실력을 가졌던 그는 1886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자신의 고양이 그림들을 실을 수 있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그는 생전에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권 향상을 위해 앞장 선것으로도 유명한데 여러 동물보호단체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1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다고.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는 그가 고양이 화가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배경, 연인 ‘에밀리’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자신처럼 어딘지 독특하지만 세상을 사랑을 담아 바라볼 줄 아는 여인, 에밀리(클레어 포이)를 만나게 된다. 그림 말고는 모든 게 서툴렀던 루이스(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그와 결혼하게 된다. 영화는 루이스, 에밀리, 그리고 고양이 피터까지 함께 하는 사랑스러운 일상을 담고 있다. 햇살 좋은 4월,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따뜻한 영화가 필요하다면 추천.

-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
감독 윌 샤프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클레어 포이
개봉 2022.04.06.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