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클래식카 구경할 수 있는 2000년 이후 영화들

클래식, 딱 들었을 때 어떤가. 누군가는 벌써 졸음이 쏟아지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는데, 이 클래식 세 글자 뒤에 '카'를 붙이는 순간 눈이 번쩍 떠질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클래식카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매력을 여전히 뽐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영화에서도 현대적인 휘황찬란 차량 대신 묵직한 매력을 가진 클래식카들을 활용하곤 한다. 클래식카를 중요한 요소로 사용한 2000년 이후 영화들을 지금부터 만나보시라.

드라이브 마이 카
1987년식 사브 900

요즘 영덕들에게 최고의 클래식카는 사브 900일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포스터부터 영화 깊숙한 곳까지 사브 900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차량이다. 그 새빨간 색감하며 뒷좌석 문이 없어서 오로지 앞좌석 문으로 탑승해야 하는 독특한 공간, 그곳에서 흐르는 가후쿠(니시지마 호데토시)의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의 목소리까지. 영화는 오토의 죽음 이후 연극제 작품을 준비하는 배우 겸 연출가 가후쿠와 전속 드라이버로 고용된 미사키(미우라 토코)의 이야기를 사브 900를 관통해 풀어낸다. 차체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가후쿠와 미사키의 정서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요즘 차량의 유려한 외형과 다른) 사브 900의 투박한 듯 세련된 디자인은 차알못 필자조차 클래식카 애호가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개봉 2021.12.23.

텔라데가 나이트 : 리키 바비의 발라드
1969년식 쉐보레 쉐빌

요즘 윌 스미스-크리스 락 사건의 동서양 반응을 보면 새삼 문화에 따라 코미디 감각이 다른 걸 실감한다. 그래서인지 국내와 해외, 인지도가 판이하게 다른 코미디 배우들이 종종 있는데 윌 페렐도 그중 한 명이다.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길 정도로 든든한 배우인데, 국내에선 그중 하나 극장에서 보는 게 힘들 정도로 온도차가 크다. <텔라데가 나이트: 리키 바비의 발라드>는 거기에 (한국에선 비주류 스포츠인) 자동차 경주 '나스카'를 그리기 때문에 한국엔 상륙하지 못했다. 이 영화감독이 아담 맥케이임에도 말이다. 이 영화는 나스카 경기 도중 부상을 입고, 심적 부담감을 덜어놓으려는 카레이서 리키 바비(윌 페렐)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서 등장하는 1969년식 쉐보레 쉐빌은 릭키의 아빠 리즈 바비(게리 콜)의 차인데, 리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태어난 차량에서 상처를 딛고 새로 태어난다는 은유가 참 의미심장하다. 쉐보레 쉐빌은 지금도 인기가 많아 여러 매체에서 만날 수 있지만 영화 속 '13'이 새겨진 쉐보레 쉐빌은 이 영화만을 위해 커스텀한 것으로 딱 두 대뿐이라고 한다.

텔라데가 나이트 : 리키 바비의 발라드

감독 아담 맥케이

출연 윌 페렐, 존 C. 라일리, 사샤 바론 코헨, 게리 콜, 마이클 클락 던칸, 레슬리 빕, 제인 린치, 에이미 아담스

개봉 미개봉

스텔라
1987년식 현대 스텔라

빚돈 대신 차량을 압류하는 박영배(손호준)는 서사장의 슈퍼카를 압류한다. 그런데 하필 이 슈퍼카를 평생 친구라고 믿었던 동식(이규형)이 들고 날아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 서사장(허성태)은 슈퍼카의 도난을 영배의 책임으로 몰아세우고, 영배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 구형 스텔라 한 대로 어떻게든 슈퍼카를 찾아야 한다. 올드카, 클래식카가 로망처럼 그려진 여타 영화와 달리 <스텔라>는 이 구식 차량으로 코미디를 유발한다. 사실 당연히 오래되고 낡은, 그것도 제대로 손질도 안된 차량이 어떻게 멋들어지게 나오겠는가. 추적과 추격 속에서 덜덜 떨리는 스텔라의 차체는 관객들을 키득거리게 만든다. 원래 남의 난처함을 지켜보는 코미디가 제일 재밌으니까. 한때 현대자동차의 대표 모델이었으니, 옛날엔 이랬지 하고 모처럼 추억에 빠지는 차주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스텔라

감독 권수경

출연 손호준, 이규형, 허성태

개봉 2022.04.06.

히트 앤 런
1967년식 링컨 컨티넨탈

1967년식 링컨 컨티넨탈

2006년식 폰티악 솔스티스

보통은 신제품이 좋다. 앤틱, 레트로, 클래식 등등 오래된 뭔가는 지금 사용하기에 불편한 구석이 있는데, 그럼에도 그런 제품들을 사랑하고 사용하는 건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낭만'. 이처럼 클래식카의 낭만을 작품에 꽉 채운 영화가 있다. 여자친구 애니(크리스틴 벨)의 교수 면접을 위해 증인 보호 프로그램까지 포기한 찰리(댁스 셰파드), 두 사람의 도주전(?) <히트 앤 런>은 여기에 수많은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수많은 클래식카들이 등장한다. 그중 찰리와 애니의 1967년식 링컨 컨티넨탈와 두 사람을 추적하는 2006년식 폰티악 솔스티스의, 고전적인 세단과 현대적인 스포츠카의 대비가 영화 전반에 눈에 띈다. 왜 이 영화가 '낭만'이냐고 하면, 댁스 셰파드가 영화에 자신의 삶을 녹였기 때문. 당시 실제 연인이었던 크리스틴 벨과 커플로 출연했고(이제는 결혼에 골인한 부부) 자신의 차량 컬렉션을 영화 촬영에 동원해 화면을 채웠다. 영화 한 편에 자신의 인생과 취미를 녹여낸 일종의 '플렉스'라니, 할리우드 스타들이란.

히트 앤 런

감독 데이빗 팰머, 댁스 셰파드

출연 브래들리 쿠퍼, 크리스틴 벨, 크리스틴 체노웨스, 댁스 셰파드

개봉 미개봉

그랜 토리노
1972년식 포드 그랜 토리노

이 영화 개봉했을 때 항간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랜 토리노 타고 범죄 소탕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고. 그처럼 그랜 토리노는 마초 캐릭터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참 잘 어울리는 차량인데, 의외로 이 영화는 휴머니즘을 표현하고자 그랜 토리노를 사용한다. <그랜 토리노>는 다소 괴팍한 노인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차량을 훔치려 했던 몽족 소년 타오(비 방)와 친해지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월트와 그간 '상남자'스러운 이미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두 모습이 겹쳐지며 영화 안팎으로 여운을 남긴다. 월터의 차 그랜 토리노는 단지 멋있는 소품을 넘어 선한 사람들이 지켜온 '미국적 가치'를 간결하게 비춘다.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클래식카들이 대체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가볍고 낮은 차체인 것에 비해 그랜 토리노의 두텁고 묵직한 차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전통, 가치의 무게감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랜 토리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크리스토퍼 칼리, 비 방, 어니 허

개봉 2009.03.19.

식스티 세컨즈
1967년식 포드 머스탱 셸비 GT500

요즘 자동차 액션 하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진짜 '액션'이 돼버리면서 과거 자동차 액션의 스피디함을 그리워하는 관객들도 있다. <식스티 세컨즈>는 그런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데, 랜들 레인즈(니콜라스 케이지)가 동료들을 모아 수많은 차량을 훔친다는 간결한 내용이 영화의 속도감을 더한다. 진짜 많은 차량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키포인트는 레인즈가 '엘리노어'라고 부르며 늘 손에 넣고 싶어 했던 1967년식 포드 머스탱 셸비 GT500. 이 차량을 훔치는 순간부터 영화는 레인즈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달린다. 이 <식스티 세컨즈>는 1974년 동명의 원작이 있는데 당시 영화에선 1960~70년대 '최신 차량'들이 등장했는데, 리메이크 작품에선 그것들이 클래식카로 상당히 귀한 것이 된 것도 둘 다 챙겨본 차덕들에겐 재밌는 포인트일 것이다. 이 영화 개봉 후 중고 시장에서 희귀품이 됐다 하니 영화에서 셸비 GT500이 얼마나 멋있게 그려졌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