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운명인 걸까? 한때 '닮은꼴 스타'로 꼽히던 김수현과 이제훈이 6월 28일 <리얼>과 <박열>로 극장가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극장가가 가장 붐비는 여름 시즌을 여는 두 한국영화, 분명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영화인데도 누가 우위에 설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각자의 강점을 살펴보면서 6월 28일 개봉하는 두 영화를 먼저 만나보자.

두 배우가 펼칠 연기 '1인 2역' vs '일본어'
<리얼> / <박열> 스틸컷

먼저 두 영화의 상영시간은 각각 137분, 129분이다. 둘 다 다소 긴 편인데, 이 중 <리얼>은 "전체 촬영 분량의 90%에 김수현이 출연"해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임을 암시했다. 반면 <박열>은 포스터에서와 달리 최희서의 비중이 이제훈 못지않다. 이제훈 팬이라면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박열을 연기한 이제훈은 다른 배우들과의 능숙한 앙상블로 존재감을 남긴다.

장태영과 투자자 1인 2역에 도전하는 김수현.

<리얼>에서 김수현은 1인 2역을 맡았다. 카지노를 관리하는 조직의 보스인 장태영과 그와 똑같이 생긴 의문의 투자자 장태영을 연기한다. 1인 2역은 배우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설정이면서 동시에 그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다혈질이고 남을 내려다보는 듯한 장태영과 마스크 뒤로 사연이 있어 보이는 투자자를 김수현은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며 영화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제훈은 <박열>에서 일본어 연기를 선보인다. 그냥 흉내를 내는 수준으로 간소하게 하겠지, 라는 추측을 박살낼 정도로 많은 양의 일본어 대사를 소화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당당하다 못해 뻔뻔해 보이는 박열, 이제훈은 그런 그를 완전히 체화해 박열의 남다른 내공을 스크린에 온전히 표현한다. 특유의 연기 스타일을 깨기 위한 시도가 돋보이지만 몇몇 부분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게 아쉽다.

이제훈은 박열을 연기하고자 일본어를 공부했다.

# 출연진 대결은 '대세 배우' vs '숨겨진 보석'

<리얼>은 김수현을 비롯해 화려한 출연진을 앞세운다. 김수현과 대립하는 성동일은 이번에 악역다운 카리스마를 과시해 묵직한 존재감을 영화에 남기고, 정신과 의사 최진기를 연기한 이성민은 예고편에서처럼 핵심을 꿰뚫어보는 예리함으로 두 김수현의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성동일, 이성민, 이경영, 최진리, 조우진

그리고 <내부자들>과 드라마 <도깨비>로 또 하나의 흥행 아이콘이 된 조우진은 변호사 사도진으로 출연한다. 그 특유의 연기력은 <리얼>에서도 여전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오랜 휴식기를 가졌던 최진리(설리)가 <리얼>에서 상반신 노출을 포함, 보다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그 외에도 이경영, 김홍파, 정인겸 등의 베테랑 배우들이 영화를 뒷받침한다.


반면 <박열>은 이제훈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새로운 얼굴이 많다. 이석 기자 역의 권율과 박열의 동지 홍진유 역의 민진웅 정도가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도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어 무정부주의 단체 '불령사'의 호흡만큼은 여느 영화의 에너지보다 더 인상적이다.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민진웅, 김인우, 이제훈과 최희서, 최희서, 권율

특히 후미코 역의 최희서와 내무장관 미즈노 역의 김인우는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연기를 펼친다. 능숙한 일본어와 어눌한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오간 최희서는 이제훈과 함께 영화 중후반을 완전히 장악하고, 김인우는 많지 않은 분량에도 당시 일본 사회가 품었던 선민의식을 정확히 드러내 악역다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박열> '불령사' 포스터

장르적 특색 '무국적 공간의 누아르' vs '역사 속 숨겨진 영웅'

<리얼>은 누아르를 표방한다. 카지노를 둘러싼 조직들 간의 아귀다툼, 의문의 투자자와 카지노 보스가 벌이는 심리 싸움을 메인 스토리로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타격감을 부각시킨 액션 장면을 가미해 스펙타클을 더한다.

<리얼> 스틸컷과 컨셉아트

최근 공개된 다른 누아르 영화와의 차별점도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한국보다는 근미래적인 분위기의 공간이 돋보인다. 사용되는 조명도 형형색색이라 현실적인 묘사를 강조했던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그런 무국적 분위기와 다채로운 비주얼이야말로 <리얼>이 내세울 만한 장점이다.


<박열>은 영화 시작 전 실제 있었던 사건임을 강조하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렇게 강조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박열이란 인물부터 그와 함께한 후미코, 그리고 이들이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인물들의 괄괄함과 분노할 만한 사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박열> 스틸컷

그리고 이 사건을 나름의 방식으로 타개하는 박열 역시 최고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소 불량한 외형과 행동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유도해가는 박열의 모습은 장기나 체스를 두는 책사를 보고 있는 듯하다. 또한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 하나로 인연을 맺게 되는 후미코 역시 주체적이고 확고한 성격으로 관객들을 흠뻑 빠지게 할 매력을 보여줄 것이다.


# 최고의 무기는 '김수현의 인기' vs '이준익 감독의 전작'

여러 차례 개봉 연기를 거듭했지만 <리얼>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네이버 영화 27일 현재 기준 <리얼>의 '보고 싶어요' 수치는 2만 5000개가량이다. 이는 <옥자>나 <스파이더맨: 홈커밍> 같은 화제작마저 두 배가량 뛰어넘는 수치다. 티저 예고편의 조회 수는 430만 건을 돌파했고, 메인 예고편의 조회 수도 340만 건을 가뿐히 넘었다. 개봉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공개가 늦었다는 걸 감안해도 그 인기는 뜨겁다.

<리얼>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는 상영회의 경우 예매 오픈 직후 전석 매진으로 이어진 것도 김수현의 인기를 방증한다. '기승전김수현'이란 말이 <리얼>의 최대 강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김수현이 출연했던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 <수상한 그녀>(특별출연) 모두 흥행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리얼> 역시 흥행에 자신감을 가질 법도 하다.


<박열>의 강점은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의 '이름값'이다. 이준익 감독은 2016년 2월, <동주>로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줬고, 영화 팬들의 입에 꾸준히 회자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존 인물을 다뤄 <동주>를 좋게 봤던 관객들이라면 <박열>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동주> 스틸컷 / 박정민, 강하늘, 이준익 감독

또 2016년 한 해 동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받았는데, 이 기운이 <박열>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2016년 <동주>, <귀향>, <아가씨>, <덕혜옹주>, <밀정>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그 첫 출발선을 끊었던 <동주>의 이준익 감독의 차기작이란 점은 다른 배우들의 이름 못지않게 주목받을 만한 지점이다.


# 흥행 가로막을 단점 '감독 데뷔작+청불' vs '애매한 정체성'

분명 매력적인 영화들이지만, 그렇다고 흥행을 확신할 순 없다. <리얼>을 연출한 이사랑 감독은 이전에 영화 연출이나 현장 경험이 전무한 인물이라 불안감을 더했는데, 그 결과물이 완성도 면에서 질타를 받고 있는 분위기다.

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흥행에 걸림돌이 생겼다. '청불'로도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최근 늘어가는 추세지만, <리얼>의 경우 보는 이에 따라 불쾌한 소재와 내용을 끊임없이 묘사해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입소문이 좋지 않다는 점도 악재다. 26일 열린 언론시사회 이후 평가는 영화 팬들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바닥을 쳤다. 지나치게 이미지를 중시하고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방식이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열>은 12세 관람가라는 우위성을 점했고 이제훈과 이준익 감독의 협업을 바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딱히 걸림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관객들 마음에 쏙 들만한 포인트도 없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이 장점인 동시에 거꾸로 피로도에 따른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뜨겁고 거친 분위기의 포스터나 예고편에 비해 영화가 의외로 삼삼한 분위기를 띄는 것에 대해 관객들이 실망할 수도 있다.


물론 뚜껑은 까봐야 아는 것이다. 2016년 여름 개봉했던 한국영화 대작들이 대체로 모두 흥행하며 '윈윈'했던 걸 생각하면 두 작품 모두 흥행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두 작품 모두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여운을 남기며 여름 극장가의 포문을 시원하게 열어주길 기대해본다.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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