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라면 대사 전달력을 위해 응당 발음이 좋아야겠지만, 그중에서도 남다른 딕션으로 시청자들 귀를 때리는 이들이 있다. 왕년에 아나운서로 보도국을 누비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넘어온 이들이 여기 속한 경우가 꽤 많은데, 실제로 백지연부터 최은경, 김경화, 오상진 등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이 꾸준히 늘어가며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중 아나운서 경력을 뒤로하고 배우로 전업한, 그래서 아나운서보다 연기자의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이들을 모아봤다.


김혜은
1997년 아나운서 데뷔
2007년 연기자 데뷔
(오른쪽) <아현동 마님>
(왼쪽부터) <범죄와의 전쟁>, <스물다섯 스물하나>

배우 김혜은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태양 고등학교 펜싱부 코치 양찬미를 연기하며 참스승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찰진 부산 사투리로 주옥같은 명대사를 읊으며 희도와 시청자들을 위로해온 그녀는 이 작품으로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그녀의 입을 거친 대사들이 유독 시청자들의 귀에 잘 들어왔던 이유가 있다. 바로 아나운서 출신 배우이기 때문이다. 김혜은은 1997년 MBC 아나운서로 데뷔해, 청주 MBC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서울 MBC에서 7년간 뉴스데스크 메인 기상 캐스터로 근무했다. 기상캐스터 7년 차 즈음 그녀에게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 출연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는 극중 신영(명세빈)의 친구 역할로 특별 출연을 하며 연기자로서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이후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성악과 출신의 전형적인 맏며느리 숙영을 연기한다. 실제로 김혜은은 서울대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극 중,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직접 선곡한 노래를 부르며 실력을 발휘하기도.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녀는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전향한다. 이후 줄곧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온 그녀가 눈도장을 찍은 작품은 바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다. 극중 나이트 여사장을 연기하며 그간 볼 수 없었던 거칠고 드센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이 작품으로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이후 그녀는 드라마 <밀회>, <미스터 션샤인>, <이태원 클라쓰>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온전히 소화해 내며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아현동 마님

연출 손문권

출연 김민성, 왕희지, 강세정, 김병기, 김형자, 남일우, 이보희, 최선자, 이휘향

방송 2007,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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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감독 윤종빈

출연 최민식, 하정우

개봉 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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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실
1987년 아나운서 데뷔
2008년 연기자 데뷔
(왼쪽부터) <아내의 유혹>, <사랑의 꽈배기>

필자 개인적으로 오영실의 얼굴이 가장 깊게 각인된 작품은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다. 그녀가 연기한 정하늘은 10살 아이의 정신연령을 가진 인물로, 너무도 완벽하게 캐릭터를 소화해낸 탓에 이 작품을 보면 그녀가 전직 아나운서였다는 것이 쉬이 믿기지 않는다. 오영실은 1987년 KBS 공채 아나운서 15기에 합격하며 방송 생활을 시작한다. 10여 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9시 뉴스 주말 앵커까지 맡았던 그녀는 1997년 퇴사 후 프리랜서 선언을 했고, 당시 진행자로서의 무대 매너와 호흡을 다듬기 위해 중대 연영과에 청강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고. 이후 2008년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전향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정하늘 역할을 연기하며 큰 호평을 얻으며 배우 인생을 시작한다. 

다만 오영실은 영화 출연은 거의 전무하고, 대부분 드라마에만 출연해왔다. 그녀는 <아내의 유혹> 이후 <천사의 유혹> 특별출연을 비롯하여 <학교 2013> <남자가 사랑할 때> <감자별 2013QR3> <너희들은 포위됐다> <호구의 사랑> <어머님은 내 며느리> <쌈, 마이웨이> 등 드라마와 시트콤 등 다양한 작품들에 크고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서는 병원장의 부인이자 경석(김영준)의 모친으로 특별출연했고,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사랑의 꽈배기>에서는 황미자로 분해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내의 유혹

연출 오세강

출연 장서희, 변우민, 이재황, 김서형, 정애리, 금보라, 김용건, 윤미라, 오영실

방송 2008,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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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꽈배기

연출 김원용

출연 함은정, 김진엽, 손성윤, 장세현, 황신혜, 윤다훈, 심혜진, 유태웅

방송 2021,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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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민
1991년 탤런트 데뷔
1994년 아나운서 데뷔
(오른쪽)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왼쪽부터) <내 사랑 내 곁에>, <가족을 지켜라>

엄밀히 말하면 임성민은 아나운서 출신 연기자가 아닌 배우로 시작해 아나운서가 된 케이스다. 그녀는 1991년 KBS 공채 14기 탤런트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로 연기자 생활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중단한다. 그리고 3년이 지나 1994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에 합격해 그녀는 방송국에 다시 입성한다. 아나운서로서 <KBS 뉴스라인> <연예가중계> <TV는 사랑을 싣고>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그녀는 2001년 KBS를 퇴사하고 연기자로 전업한다. 드라마 <여고시절>과 <눈사람>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던 그녀는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주인공 은비(예지원)의 친구이자 아나운서를 꿈꾸는 세영을 연기하며 스크린 데뷔를 한다. 이후로도 그녀는 영화 <투사부일체> 우정출연과 함께 드라마 <내 사랑 달자씨> <외과의사 봉달희> <사랑에 미치다> <강남 엄마 따라잡기> <애자언니 민자> 등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그녀는 아나운서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연기 활동을 이어가던 중이었고, 그즈음 출연한 작품이 바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이다. 그녀는 극중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춘자를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배우 임성민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영화 속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은 다소 놀랍기까지 한데,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식물인간인 만큼 몹시 짧은 머리에 표정 변화가 전혀 없고 대사도 한마디 없기 때문. 삭발까지 감행하며 진정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후로도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온 그녀는 최근 몇 년 간 연기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시사 프로그램 MC로 발탁되어 당분간은 진행자 임성민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감독 송경식

출연 예지원

개봉 200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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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감독 박진표

출연 하지원, 김명민

개봉 200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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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현
2006년 아나운서 데뷔
2008년 연기자 데뷔
(왼쪽부터) <인사동 스캔들>, <영건 탐정사무소>

최송현은 아나운서로 데뷔했을 당시 눈에 띄는 외모로 화제였다.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 32기로 데뷔한 그녀는 2008년 <일요뉴스타임>을 진행하고, 이후로는 <상상플러스>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활약하며 대중들 사이에서 얼짱 아나운서로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나운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나운서의 이름을 단 지 약 2년 만인 2008년 돌연 사표를 내버린 것. 이후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아나운서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아직 젊고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행복한 삶을 찾아 떠나려 한다”고 밝혔다. 

그녀가 말한 ‘행복한 삶’은 배우의 삶에 있었을까. 2008년 아나운서를 그만둔 그녀는 바로 배우로 전향했다.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은 단연 그녀의 데뷔작인 <인사동 스캔들>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사기극을 위해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팜므파탈 공수정을 연기했는데,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전에 본 적 없던 최송현의 얼굴을 마음껏 드러냈다. 데뷔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는 이후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 <로맨스가 필요해> <감자별 2013QR3> <빅이슈> 등 다수의 작품들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고 있다. 

인사동 스캔들

감독 박희곤

출연 김래원, 엄정화

개봉 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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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건 탐정사무소

감독 오영두

출연 홍서백, 최송현, 하은정, 배용근

개봉 20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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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무비 에디터 박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