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온전히 타인이 되어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은 캐릭터와의 완벽한 동화로 극강의 몰입감을 끌어내며 작품에 큰 기여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한 명인데도 N인분 삶을 연기해낸 배우들이 있다? 오늘은 한 몸에 둘 이상 인격이 존재하는 '다중인격' 캐릭터를 통해 경이로운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들을 소개한다.
 
*스포일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소재인 만큼 <프라이멀 피어>, <보이스 4>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프라이멀 피어>
<프라이멀 피어>

<프라이멀 피어> 에드워드 노튼│총 2개(애런 스탬플러, 로이)
 
존경받는 대주교 러쉬맨이 피살되고, 현장에서 도망치다 붙잡힌 19세 소년 애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가 용의자로 붙잡힌다. 그런 애런을 찾아가 무보수로 변호할 것을 제안한 마틴(리차드 기어)은 애런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렇다 할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던 중 마틴은 살해당한 대주교가 애런과 그의 여자친구 린다, 남자친구 알렉스 등 세명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며 찍은 포르노 비디오를 발견한다. 명백한 살인 동기를 찾은 그는 애런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게 되고, 결국 애런에게서 또 다른 자아 '로이'가 등장한다.

<프라이멀 피어>

영화 <프라이멀 피어>는 대주교 살해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려는 범죄물이자 법정물로, 극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에드워드 노튼의 세밀한 이중자아 연기가 탁월한 작품이다. 놀라운 사실은 <프리이멀 피어>가 에드워드 노튼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라는 것. 2100: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그는 두 가지 인격을 자유자재로 오고 가며 신인답지 않은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였다. 애런의 소심한 성격을 반영한 말더듬이 연기는 그가 실제로 오디션 장에서 보였던 아이디어로, 배역을 따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영화가 공개됨과 동시에 평단의 극찬을 받은 에드워드 노튼은 27살의 나이로 1997년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프라이멀 피어

감독 그레고리 호블릿

출연 리차드 기어

개봉 199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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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짐 캐리 │총 2개(찰리 베일리게이츠, 행크 에반스)
 

어떤 영화들은 연출이나 스토리보다 배우의 연기가 더 큰 주목을 받기도 한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이 그렇다. 영화의 전반을 독무대로 삼은 짐 캐리는 스탠디업 코미디언 출신답게 코미디에 다중인격 소재를 얹어 원맨쇼를 끌어나간다. ‘찰리(짐 캐리)’는 경찰 경력만 17년인 베테랑이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동네 아이들마저 부모님이 무시해도 된다고 했어요라는 말로 찰리를 비하하고 할퀸다.

그렇게 된 배경엔 찰리의 아픈 과거사가 있다. 매일 참고 살아가던 찰리는 어느 날 돌발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복수를 빙자한 피해를 입히기 시작한다. 무례함이 디폴트가 된 그는 사실 찰리가 아닌 행크 에반스, 찰리의 제2의 인격이 생겨나게 된 것.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그에게 아이린(르네 젤위거)이라는 여자를 호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그는 동네를 벗어나 아이린과 함께 길을 떠난다. <트루먼 쇼>, <맨 온 더 문>으로 2년 연속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배우로서 인정받게 된 그의 차기작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짐 캐리의 필모 중 크게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이중인격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코미디 영화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짐 캐리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감독 바비 패럴리, 피터 패럴리

출연 짐 캐리, 르네 젤위거

개봉 200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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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나이트>
<문나이트> 캐릭터 포스터

<문나이트> 오스카 아이작│총 2~4개(스티븐 그랜트, 마크 스펙터, 문나이트, 미스터 나이트)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MCU의 새로운 히어로 캐릭터 문나이트’. 이집트 신 콘슈 힘을 얻어 수트를 소환, 막강한 힘을 지니게 되는 히어로다. 평범한 인간일 때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본체는 무자비한 용병 출신인 마크 스펙터/소심한 이집트 박물관 기프트샵 직원 스티븐 그랜트로 나뉘며, 인격마다 소환하는 수트의 외향도 다르다. 따지고 보면 총 네 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셈.

무엇보다 <문나이트>의 매력은 오스카 아이작의 여러 자아를 가진 히어로 연기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후 <엑스맨>, <스타워즈> 시퀄 등 대형 프랜차이즈 작품들에 조연으로 출연해왔던 그는 <문나이트>로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오스카 아이작은 영국인 스티븐 그랜트와 미국 시카고 출신인 마크 스펙터의 특징을 반영해 극 중에서 미국, 영국 억양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오스카 아이삭은 미국인이며, 작품을 위해 영국 억양을 배웠다) 짧은 찰나에 눈빛만으로 인격을 구별 짓는 등 소름 돋는 연기력으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문나이트>

<보이스4> 이규형│총 5개(동방민, 서커스맨, 마스터, 센터장, 소년 동방민)
 
매 시즌 강렬한 빌런의 존재로 극에 긴장감을 유발했던 드라마 <보이스>. 지난여름 네 번째 시리즈로 돌아온 <보이스4>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드라마를 빛낸 건 동방민 연기한 이규형이었다. 동방민은 다중인격을 앓고 있는 연쇄살인마로, 이규형은 동방민을 비롯해 서커스맨’,마스터’, ‘센터장’, ‘소년 동방민 총 다섯 개의 인격을 연기했다. 그는 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목소리 톤부터 표정, 눈빛, 걸음걸이까지 변주를 주며 압도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통제권을 잃어가며 각각의 인격들이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 시작, 그들의 갈등과 혼란스러움을 빠르게 전환해가며 연기해낸 장면이 방영 직후 극찬을 받기도. 연출은 맡은 신용휘 감독은 "(동방민은) 다중인격 설정으로 연기력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고민이 많았는데 이규형 배우가 행운처럼 합류해 고민을 덜 수 있었다", "(이규형은) 내면의 인격이 변할 때 그 순간의 미세하고 미묘한 표정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상처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매시간 고민하고 해석하는 배우"라며 이규형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이스 시즌4

연출 신용휘

출연 송승헌, 이하나, 손은서, 강승윤, 한담희, 이얼, 백성현, 손경원, 우미화, 이규형, 길해연, 이이담

방송 2021,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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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힐미지성│총 7개(차도현, 신세기, 안요섭, 안요나 등)
 
국내 드라마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MBC 드라마 <킬미힐미>. 평이했던 시청률과 달리 매회 엄청난 화제성을 기록했던 이유는 주요 소재와 주연 배우의 공이 컸다. 지성은 일곱 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 3세 엄친아 차도현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국내 대중들에게 다중인격 캐릭터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극 중에서 차도현을 시작으로 마초남 신세기’, 쌍둥이 남매 안요섭&안요나’, 여수 사나이 페리박’, 7세 여아 나나’, 의문의 존재 미스터X’ 총 일곱 명의 인물을 연기했다. 특히, 유치한 대사로 큰 재미를 선사했던 신세기와 세침한 여고생 안요나가 인기의 팔 할을 차지했다. 지성은 각 인물 별 특징을 살린 행동과 섬세한 감정 연기로 인물 간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 2015MBC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대상 부문에서 수상을 거두며 연기자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연기 대상의 경우 데뷔 16년 만의 결실이었다고.

<킬미힐미> 신세기 vs 안요나

<23 아이덴티티>
<23 아이덴티티>

<23 아이덴티티> 제임스 맥어보이│총 23개(데니스, 패트리샤, 케빈, 헤드윅, 비스트 등)
 
다중인격 연기의 끝판왕. ‘M. 나이트 샤말란 유니버스그 두 번째 작품 <23 아이덴티티>는 제목에서부터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총 23개의 인격을 지닌 한 남자가 등장한다(원제는 스플릿 Split’으로 인격이 분열됐음을 뜻한다). 러닝타임 내 10개 이상 인격들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 그는 본래의 인격인 케빈을 시작으로, 스마트하지만 강박증을 지닌 행동대장 데니스’, 리더 격인 여성 인격 패트리샤’, 순수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9살 소년 헤드윅’, 10대 소녀 제이드’, 24번째 인격 비스트등 분 단위로 바뀌는 다양한 인물들을 완벽히 소화해 내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23 아이덴티티>를 비롯해 후속작 <글래스>까지 영화는 완성도 측면에서 꽤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제임스 맥어보이의 호연에는 이견 없이 찬사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23 아이덴티티>, <글래스>
23 아이덴티티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안야 테일러 조이

개봉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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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