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스승의 날이 언제인지 기억하는지. 5월 15일이다. 과거엔 스승의 날 역시 어린이날, 어버이날 못지 않게 큰 행사였다. 고사리 손으로 카네이션을 만들고, 반 대표가 앞에 조회대 앞에 나가 담임 선생님 가슴팍에 꽃을 달아주던 행사가 있었다. 영 손재주가 없던 터라 괜히 선생님께 삐딱하게 굴어버렸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여기 한 번은 봐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까지도.
이제는 스승의 날을 기억하는 이도 드물 만큼 선생님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학교를 처음 다닌 학생들에겐 더더욱 선생님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에 선생님은 존재한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길거리, 모임, 직장 등 어디에서 자신의 인생 멘토를 만난다. 누구는 영화 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나의 등불이 되어주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모습이든 스승이기에, 오늘은 영화 속 스승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감독 피터 위어
출연 로빈 윌리엄스
"그 시절, 우리의 영원한 선생님"
정보전달이 선생님 역할의 전부였다면, 학교는 진작 의미를 잃고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입시에 최적화 되어있는 스타 학원 강사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지금 시대에 스승의 의미는 무엇인가. 강사와 스승의 차이는 무엇인가. 네이버 어학사전에 따르면 강사는 ‘모임에서 강의를 맡은 사람.’을 뜻한다. 즉, 지식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람이다. 반면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다. 결국 아이들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 하는 게 스승의 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은 그시절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일 테다.
창립 100주년을 훌쩍 넘긴 모교 월튼 아카데미로 부임한 키팅(로빈 윌리엄스) 선생은 첫 수업부터 이론 부분을 찢어버린다.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를 외치며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게끔 노력한다. 보수적인 학교는 그를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고, 퇴출시켜버리지만 그를 이미 ‘캡틴’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던 아이들은 그를 위해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친다.

- 죽은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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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터 위어
출연 로빈 윌리엄스
개봉 1990.05.19. 2021.04.01. 재개봉
<라자르 선생님>
감독 필리프 팔라도
출연 모하메드 펠라그, 소피 넬리스, 에밀리언 네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연대,
그 속에서 스승이란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다면 미래에 아이들은 이 영화를 볼 듯” 영화 <라자르 선생님>의 네이버 한줄평이다. 영화는 캐나다 퀘벡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자살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새로 부임하게 된 바시르 라자르(모하메드 펠라그)는 알제리 출신의 남자로 정치적 테러로 인해 아내와 두 아이를 한꺼번에 잃고 캐나다에 망명을 신청했다.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과 가족을 잃은 선생님. 그들은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었지만 이를 드러낼 수 없었다. 교장은 아이들의 정신적인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선 전 담임의 물건들을 치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우리 때문인걸까’ 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의 상처는 감춰진 것뿐이었다. 라자르 역시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낯선 캐나다에 적응해야 했다.
결국 <라자르 선생님>은 상처 받아도 드러내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영화다.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행동은 드러내기다. ‘자살’과 ‘테러’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시작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가는 데에 집중하며 소재의 자극성보다는 주제의 깊이에 집중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전개에서 천천히 쌓이는 감동은 사제의 애정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대를 보여준다.

- 라자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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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필리프 팔라도
출연 모하메드 펠라그, 소피 넬리스, 에밀리언 네론
개봉 2013.05.09.
<보이콰이어>
감독 프랑소와 지라르
출연 더스틴 호프만, 캐시 베이츠
정도(正道)를 걷다
관객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만족시키는 영화가 있다. 장르의 문법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어 기대를 충족시키는 그런 영화. <보이콰이어>가 그렇다. 재능은 충만하나 집안이 불우해 빛을 못 보는 아이. 그런 아이를 발굴해 보석으로 만드는 참된 스승. 익숙하다 못해 뻔할 정도지만, 그럼에도 자꾸 손이 가는 이유가 있다. <보이콰이어>의 주인공 스텟(가렛 워레잉)은 알코올 중독자인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을 일삼는 아이는 어느 날 교장 선생님 스틸(데브라 윙거)을 만나게 되면서 180도 뒤바뀐 삶을 살게 된다. 스텟에겐 음악적 재능이 충만했고 스틸은 이를 알아보았다. 반항심에 도망치기도 했지만, 결국 스틸의 인도는 스텟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국립소년합창단에서 겉돌던 그가 솔로파트를 얻게 되기까지의 여정에서 영화는 단순히 음악적 성취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음악으로 대변되는 스텟의 인생 변화에 조금 더 주목하고 있다.
줄거리만 보아도 대강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영화는 성장 영화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어정쩡한 비틀기보다 정공법으로 가길 택했다. 정공법이 통할 때, 감동은 묵직해진다. 더스틴 호프만, 캐시 베이츠, 데브라 윙거, 조지 루카스 등 명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한 마디로 성실하고, 착실하며, 튼튼한 영화다. 실패 없는 감동 영화를 보고 싶다면 추천.

- 보이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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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프랑소와 지라르
출연 캐시 베이츠, 더스틴 호프만
개봉 2020.05.14.
<굿 윌 헌팅>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맷 데이먼
닫혔던 인생을 열어주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스승.
사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넣었는데 <굿 윌 헌팅>까지 넣어야 할까 고민했다. 클래식으로 상찬되는 영화를 두 편이나 넣어야 할까? 모두가 아는 영화인데? 라는 고민이 있었으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It’s not your fault.’를 가슴 속에서 되뇌어봤을 테니까. 스크린 너머에서 마음 속 울림을 준 스승이라면 몇 번을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결국 리스트에 올리게 되었다.
<굿 윌 헌팅>은 세상으로부터 외면 당한 청년이 인생의 스승을 만나 자립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윌 헌팅(맷 데이먼)은 불우한 성장 환경과 어린 시절 학대로 마음의 문을 닫고 인생을 허비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에게 수학적 재능이 있음을 MIT 교수가 알게 되고, 수감되어 있는 그를 막대한 보석금을 내고 빼내주게 된다. 보석금의 대가는 성실하게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 정신학 교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와 윌 헌팅은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가시를 세워 말하던 윌 헌팅이었으나 숀의 지속적인 보살핌에 힘입어 그는 결국 자립에 성공한다. 영화는 ‘진정한 스승’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인생에서 스승은 왜 필요한지, 좋은 스승을 만났을 때 아이는, 청년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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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맷 데이먼
개봉 1998.03.21. 2016.08.17. 재개봉
<땐뽀걸즈>
감독 이승문
출연 이규호, 김현빈, 박혜영, 박시영, 심예진, 김효인, 이현희, 배은정
위엄을 내려놓고,
함께 가는 스승.
남들은 대학간다, 취업한다고 살벌하게 살고 있을 때, <땐뽀걸즈>의 아이들은 조금 다른 길을 간다.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의 댄스 스포츠 동아리 학생들과 그들을 이끄는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 그들만이 춤바람에 몸을 맡기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졸업하면 조선소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당연했던 아이들에게 댄스 스포츠를 알려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규호 선생님은 위엄과 무게를 내려놓고, 학생과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선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비를 챙겨주는가하면, 매직으로 까맣게 구두를 칠하기도 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기도 한다. “쌤이 볼 땐 대상감은 아니고”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결국엔 “입상 안해도 괜찮다.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다”라며 아이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인생 대부분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나. 수상하는 것도 좋지만 경험 그 자체가 인생을 만든다. 정해진 인생을 밟아가던 아이들에게 댄스 스포츠는 색다른 경험 그 이상일 것이다. 대회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그 과정이 치열하거나 하진 않다. 오히려 한적한 시골 풍경과 학생들의 높은 웃음소리가 영상 ASMR처럼 평화롭다. <땐뽀걸즈>를 본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힐링된다’고 말할 정도.

- 땐뽀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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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승문
출연 이규호, 김현빈, 박혜영, 박시영, 심예진, 김효인, 이현희, 배은정, 박지현
개봉 2017.09.27.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