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화제작이 등장하면 누가 신날까. 관객? 극장? 어쩌면 이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블록버스터의 짝퉁, 이른바 '목버스터'를 만드는 어사일럼이다. <트랜스모퍼>, <타이타닉 2> 등 목버스터계의 걸작(?)을 남긴 어사일럼은 <Z 네이션>, <블랙 썸머> 같은 드라마로 오리지널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고도 한쪽에선 여전히 목버스터를 만들고 있다. 최근 화제작을 타깃으로 한 어사일럼의 목버스터는 무엇이 있었는지 정리했다. 목버스터라는 용어가 처음이라면 아래 포스트에서 그 의미를 만나보자.


문 크래쉬(Moon Crash) ≒ 문폴

<문 크래쉬>(왼쪽), <문폴>

지구와 지나치게 가까워 보이는 달, 그리고 지구에서 무언가 잔뜩 쏘아 올린 모습. <문 크래쉬>는 제목부터 포스터까지 2022년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문폴>이 원전임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폴>은 재난 블록버스터의 대가 롤랜드 에머리히의 신작으로 궤도를 이탈한 달이 지구로 떨어진다는 내용. <문 크래쉬>는 달에서 광석을 채취하던 중 사고로 달의 파편이 지구로 떨어진다는 스토리를 취한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달이 지구에 가까워지는 포스터부터 거짓말인 건데, 정작 영화 속 해결 방법은 <문폴>과 유사해서 신기할 정도.


아포칼립스 오브 아이스(Apocalypse of Ice) ≒ 투모로우

<아포칼립스 오브 아이스>(왼쪽), <투모로우>

롤랜드 에머리히가 획기적인 재난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인지, 그의 영화는 지금도 어사일럼의 원전이 되곤 한다. 2020년 공개한 <아포칼립스 오브 아이스>는 포스터에서부터 2004년 영화 <투모로우>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오래된 작품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참신한 설정을 더했는데, 바이러스가 창궐해 이미 인류를 휩쓴 세상에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것. 그래서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가진 학자가 바이러스 치료제를 가지고 안전지대로 대피한다는 내용이다. 나름 코로나 팬데믹을 엮어본 듯한데, 예고편만 봐도 중구난방인 느낌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어사일럼 영화가 그렇지만) 2004년 영화보다도 CG가 빈약하다보니 빙하기라는 설정이 잘 안 산다. 


플래닛 듄(Planet Dune) ≒ 

<플래닛 듄>(왼쪽), <듄> O.S.T. 표지

코로나 팬데믹이 조금이나마 완화되던 2021년 말, 할리우드 대작들이 하나둘씩 개봉했다. 그런 화제작 중에서도 유독 많은 팬을 양성한 영화를 뽑자면 <듄>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도 '듄친자'라고 팬덤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어사일럼의 <플래닛 듄>은 포스터에서 샌드웜을 연상시키는 모래 괴물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영화도 <듄> 같은 정치 드라마나 대하극이 아니라 모래 행성에서 괴물의 습격을 받은 주인공 일행의 생존기가 주된 내용이다. '듄'이나 '샌드웜' 모두 일반 명사로도 쓸 수 있으니, 어사일럼 입장에선 저작권 걱정 없이 맘 편히(?)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플래닛 듄>을 그저 웃어넘길 수 없게 하는 의외의 캐스팅이 있는데, 바로 <블레이드 러너>로 유명한 숀 영이 출연했다는 것.

<플래닛 듄> 촬영장의 숀 영(오른쪽)

정글 런(Jungle Run)  정글 크루즈

<정글 런>(왼쪽), <정글 크루즈>

저작권 얘기를 하긴 했지만, 어사일럼이 저작권 소송을 무서워했으면 이런 목버스터를 안 만들긴 했을 것이다. <정글 런>을 보면 그렇다. <정글 런>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정글 크루즈>를 모티브로 한 목버스터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정글 크루즈>는 알다시피 저작권계의 괴물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작품이다. 저작권이 무서웠다면 안 건드렸을 영화인데…. 한편으론 그게 무서워서 다른 영화들과 달리 포스터부터 무척 '그것과는 다르다'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드벤처 영화답게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정글 크루즈>와 달리 <정글 런>은 싸구려 괴수영화임을 자랑(?)하고 있으니까. 시기상으론 노렸는데 영화를 보면 정작 안 노린 것 같은, 목버스터인 듯 목버스터 아닌 듯 목버스터인 영화.

<정글 런>

아쿠아리움 오브 더 데드(Aquarium of the Dead) ≒ 아미 오브 더 데드

<아쿠아리움 오브 더 데드>(왼쪽), <아미 오브 더 데드>

<아쿠아리움 오브 더 데드>는 <정글 런>처럼 애매모호, 아리까리한 영화다. 공개일은 5월 21일(북미 기준). 이날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좀비 영화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의 공개일과 일치한다. 제목이나 포스터로 보면 전혀 인연이 없는 영화가 우연히 같은 날 공개한 것 같지만, 어사일럼의 좀비 세계관을 활용한 스핀오프라지만, 목버스터계의 베테랑 어사일럼이니까 그냥 내놓았을 리는 없다. <아쿠아리움 오브 더 데드>는 <아미 오브 더 데드>처럼 좀비 영화이다. 다만 후자가 좀비가 사방에 깔린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면 전자는 갑자기 수중 동물들이 좀비가 나타난 아쿠아리움의 소동을 그릴 뿐. 아쿠아리움의 좀비라니, 다소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이지만 '아미'에 대응하는'A'로 시작하는 단어에서 아쿠아리움을 떠올렸다고 생각하면 그 참신함이 대단하게도 느껴진다. 요즘 웃음이 고픈 사람이라면 <아쿠아리움 오브 더 데드>의 예고편이라도 챙겨보자. 한동안 잊고 있던 폭소를 되찾게 될 것이다.

<아쿠아리움 오브 더 데드>

에이프 버서스 몬스터(Ape vs. Monster) ≒ 고질라 VS. 콩

<에이프 버서스 몬스터>(왼쪽), <고질라 VS. 콩>

캐릭터와 캐릭터의 만남, 세계관과 세계관의 조우, 크로스오버는 어떤 것이든 화제를 모을 수밖에 없다. 괴수 영화 팬들이 기다리고 고대한 <고질라 VS. 콩>이 팬데믹 와중 거둔 성과가 그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화제헌터 어사일럼 또한 이 유행에 편승했다. 제목은 <에이프 버서스 몬스터>. 고질라, 콩 같은 고유명사 대신 유인원(에이프), 괴물(몬스터)을 사용했을 뿐, 포스터만 봐도 딱 <고질라 VS. 콩>이다. 특이한 건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영화는 <고질라 VS. 콩>이 개봉하고 한 달 후에야 공개됐다. B급 괴수물은 굳이 흐름을 타지 않아도 잘 되는 편인가 싶은 부분. 참고로 이 영화에서 고질라에 해당하는 괴물은 길라(Gila), 콩에 해당하는 유인원 이름은 에이브라함이다.

<에이프 버서스 몬스터>의 에이브라함과
길라

불릿 트레인 다운(Bullet Train Down) ≒ 불릿 트레인

개봉 전부터 목버스터의 타깃이 된 <불릿 트레인>

목버스터의 핵심은 '스피드'다. 화제작이 나오기 전후에 발 빠르게 공개해야만 제목을 활용한 '낚시질'이 적절하게 먹혀들기 때문. 2022년에도 아직 공개하지도 않은 작품의 목버스터가 이미 후반 작업 중이다. <불릿 트레인 다운>은 제목에서 <불릿 트레인>의 목버스터임을 알 수 있다. 소설 「마리아 비틀」을 원작으로 한 <불릿 트레인>은 초고속 열차에서 벌어진 킬러들의 추격전을 그린다.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는 작품이라 제작 단계에서부터 기대작이었으니 어사일럼에서도 진작에 목버스터를 만들기로 한 모양이다. 아직 공개한 영상이 없는데, 어사일럼이 킬러들의 사생결단을 어떻게 재창조할지 궁금하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