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영화가 또 나왔다. 명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부터 스나이퍼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린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히틀러 암살 시도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룬 <작전명 발키리>, 2010년대의 수작 <덩케르크>까지. 제2차 세계대전 속 다양한 인간군상은 감독 입장에서 영화화하기 가장 좋은 소재가 아닐까.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평가되는 만큼, 많고 다양한 작전들이 펼쳐졌고 하나 하나 뜯어보면 사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될 만큼 극적이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민스미트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시칠리아 침공 도중 실행한 민스미트 작전을 다룬다. 5월 10일 기준, 로튼 토마토는 93퍼센트의 신선도를 유지했고, 팝콘 지수 역시 75퍼센트로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를 두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첩보전”이라 평했다.
여기서 ‘첩보전’이라는 말에 주목해주시길. <민스미트 작전>은 전쟁 영화 공식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그 흔한 총성은 거의 들리지 않고 오로지 두뇌로만 싸움을 벌인다. ‘전쟁 뒤 전쟁’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로, 전쟁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과 클리셰를 뒤집었다. 도대체 ‘민스미트 작전’이 뭐길래 전쟁 영화에서 총성이 들리지 않는 걸까. 영화의 모티브가 된 ‘민스미트 작전’을 소개해보려 한다.
민스미트, 즉 '다진고기 작전'은 1943년 연합군 수뇌부가 시칠리아 침공을 위장하기 위해 영국에서 벌인 기만 작전이다. 목적은 연합군이 상륙 작전을 펼치기에 앞서 독일군에게 상륙 위치를 착각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영국 정보원은 쥐약을 먹고 사망한 부랑자 글라인두르 마이클의 시신을 입수, 시신에게 왕립 해병대 장교 옷을 입히고 ‘윌리엄 마틴 소령’ 신분으로 위장했다. 소령이 1급기밀을 갖고 있다가 사망한 것처럼 위장한 것. 여기서 1급 기밀이란 연합군이 그리스와 사르데냐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시칠리아 침공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담긴 두 영국 장군 간의 서신이었다.
이외에도 연합군은 그를 마틴 소령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디테일을 잡아갔는데, 열쇠와 우표, 담배, 성냥, 메달, 극장 티켓, 새 셔츠 영수증, 아버지의 편지, 로이드 은행의 초과 인출 통지 등 일상생활에서 가방에 있을 법한 모든 것들을 위조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약혼녀 팸의 존재였다. 약혼녀까지 만든 후, 그 모든 것을 소중히 하겠다는 듯 시신은 가방을 끌어안은 것처럼 꾸며졌다.
시체는 스페인 남부 해안 가까이에 놓기로 했다. 영국 요원 두명은 시신을 드라이아이스로 보관, 스코틀랜드로 이동해 잠수함 HMS 세라프 호에 태웠다. 마틴 소령은 바다에서 적의 공습을 받았고, 탈출하다 숨진 것처럼 꾸며졌고 시신은 조류에 의해 스페인 해안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전 실행 후 1943년 4월 30일 아침, 한 스페인 어부가 시체를 발견하고 독일 군사 정보기관에 이를 신고했다. 스페인은 중립국을 표방하고는 있었으나 독일과 여러 모로 가까운 상황이었다. 영국 첩보부는 스페인 정부에 마틴 소령의 서류 가방을 신속히 돌려달라고 요청하며 사기극에 쐐기를 박았고, 독일의 법의학자들은 연합군이 의도한 대로 시체를 해석했다. 결국 독일은 증원군을 그리스와 사르데냐로 옮겼다.
사실, 독일군도 연합군이 시칠리아를 노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테다. 시칠리아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지리적으로 지중해를 드나들 수 있는 선박들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연합군이 이곳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명백한 사실’이 사실은 가짜였다, 라는 걸 히틀러에게 심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민스미트 작전은 치열한 두뇌 싸움 끝에 연합군에게 승기를 가져다주었다. 총성 없는 전쟁, 전쟁 뒤의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민스미트 작전 덕에 시칠리아는 예상보다 빠르게 연합군 쪽으로 넘어왔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부랑자의 시체가 제2차 세계대전을 두 달 앞당겨 끝냈으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셈. 이를 두고 영국 정보요원 이완 몬타구는 “그가 한 일 중에 유일하게 값어치 있는 일은, 그가 죽은 뒤에 한 일이었다.”라는 표현을 남기기도 했다.
글라인두르 마이클은 1930년대 대공황 기간에 아버지를 광산 붕괴 사고로 잃고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 궁리를 모색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지만 결국 부랑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결국 독약을 먹고 사망하고 만다.
해당 이야기를 소설로 쓴 역사가 벤 매킨타이어는 글라인두르 마이클을 “그야말로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영웅일 것”이라 말했다. 그는 마이클이 음독 자살을 한 게 아니라, 배가 고파 실수로 쥐약이 든 빵을 먹은 것이라 판단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민스미트 작전>은 현실성을 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영화적 연출을 화려하게 넣기 보다는 사실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기만 작전이 벌어지는 중에 죽은 뒤에도 이용 당하는 부랑자 마이클의 인생도 놓치지 않는다. 비교적 다른 작전들에 비해 유명하지 않다 보니 결말을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겐 예측 불가한 긴장감도 선사하고 있다. 실제 전쟁이 그러하듯 영화는 전쟁 속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콜린 퍼스의 연기야 늘 그렇듯 훌륭하다. 영화의 중심에서 무게를 탄탄히 잡아준 덕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힘있게 끌어간다. 색다른 전쟁영화가 보고 싶다면 추천하는 작품.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