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가 오는 8월 19일, 서울에서 콘서트를 연다. 지난 2017년 두 번째 방한 이후, 5년 만에 갖는 공연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내한공연이 뚝 끊겼던 시간을 지나 다시금 해외의 대형 아티스트의 무대를 만난다는 점과 더불어, 원년 멤버였던 캬르탄 스베인손이 다시 밴드에 합류해 오리지널 멤버로 진행하는 첫 내한공연이라 보다 값진 기회라 할 만하다. 시규어 로스의 세 번째 내한공연을 기념하며 그들의 음악을 사용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Njósnavélin''
<바닐라 스카이>
Vanilla Sky, 2001

학창시절 저명한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카메론 크로우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영화음악을 통해 자신의 방대한 음악 지식을 드러냈다.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리메이크 한 <바닐라 스카이> 역시 크로우의 선곡 감각이 빛나는데, 영화 개봉 당시 두 번째 앨범 <Ágætis byrjun>로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던 시규어 로스의 비중이 두드러진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로우는 <바닐라 스카이>에 시규어 로스의 음악만 무려 3곡을 사용했다. 중반부에 쓰인 <Ágætis byrjun>의 수록곡 'Svefn-g-englar'와 'Ágætis byrjun'도 좋지만, 특히 인상적인 건 영화 마지막에 쓰인 'Njósnavélin'다. 결국 죽음을 택한 데이빗(톰 크루즈)이 그토록 사랑한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며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과정을 수식한다. <바닐라 스카이> 제작하던 때엔 공연에서만 연주되고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았던 곡을 라이브 녹음 음원을 써서 배치할 만큼 크로우가 시규어 로스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용. 다만 훗날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시는 제작사는 영화 완성본을 보여주지 않았고, 개봉된 후에야 본 <바닐라 스카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음악 사용허가를 후회한다고 밝혔다.


''Starálfur''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보통 웨스 앤더슨 하면 눈부신 비주얼 감각에 대한 상찬이 주를 이루지만,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남다른 선곡 감각을 자랑해 왔다. 브라질 뮤지션 세우 조르지를 캐스팅 해 간간이 그가 노래 부르는 신을 배치한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도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쓰였다. 다큐멘터리 감독 스티브(빌 머레이)는 7편의 해양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마지막편을 찍던 중에 괴물 상어에게 동료를 잃었지만 카메라를 놓치는 바람에 그 장면을 찍지 못했다. 세상이 그 사실을 알아주지 않고, 스티브는 괴물 상어를 찾아내 동료의 복수를 해내리라고 다짐한다. 영화는 이제는 쇠락해가는 다큐멘터리 감독 스티브가 우여곡절 끝에 해저 탐험을 이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클라이막스는 물론, 스티브와 해저 팀원들이 괴물 상어를 목도하는 순간. 어느 날 문득 찾아와 자신이 당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네드를 떠나보낸 후에도 모험을 계속한 끝에 드디어 괴물 상어를 마주할 때 시규어 로스의 (<Ágætis byrjun>의 또 다른 수록곡) 'Starálfur'가 겹쳐져 감격이 배가 된다. 


''Festival''
<127시간>
127 Hours, 2010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127시간>은 제목 그대로 홀로 절벽 사이를 등반하다가 떨어진 암석에 팔이 끼어 127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애런 랠스턴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5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 남기 위해 악전고투 하다가 최후의 결단으로 팔을 자르고 탈출에 성공한 애런은 겨우 몸을 움직여 흙탕물을 마음껏 마시고서 길을 떠난다. 다시 어려운 걸음을 시작하는 그의 모습을 다양한 구도로 찍은 신들 위로 시규어 로스의 'Festival'이 흐른다.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을 커버 아트로 써서 화제를 모은 다섯 번째 앨범 <Með suð í eyrum við spilum endalaust>의 수록곡이다. 기존의 음울하고 몽롱한 분위기가 아닌 활기찬 록 사운드로 방향을 바꾼 특징이 잘 드러난다. 비록 한 쪽 팔을 잃었지만 생존을 위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애런을 열렬히 응원하듯, 'Festival'(시규어 로스 노래 중 드문 영어 제목이다)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마침내 사람들을 만나고 구출돼 평소처럼 기운찬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Hoppípolla''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

카메론 크로우는 <바닐라 스카이>로부터 10년 후 한껏 무게를 덜어낸 가족 드라마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를 연출하며, 아예 음악감독을 시규어 로스의 프론트맨 욘시에게 맡겼다. 그리고 시규어 로스의 노래 'Hoppípolla'까지 인용하며 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다. 마음에 쏙 들지만 250 마리가 넘는 동물이 사는 동물원이 딸린 집을 구입한 주인공 벤자민(맷 데이먼)은 우여곡절 끝에 동물원을 재개장 하고, 놀랍게도 저 멀리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동물원에 찾아오는 걸 목격한다. 이 벅찬 순간, 서서히 상승하는 피아노 연주에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얹어진 'Hoppípolla'가 적격일 수밖에. 바쁘게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들이 이어질 땐 음악이 멈추다가, 사육사 켈리(스칼렛 요한슨)가 벤자민이 두 아들과 사진 찍고 노는 걸 볼 때 다시 음악이 피어나 동물원 속 동물들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추는 것까지 아우른다.


''Varðeldur''
<캡틴 판타스틱>
Captain Fantastic, 2016

<캡틴 판타스틱>의 주인공 벤(비고 모텐슨)은 아내, 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숲속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가족을 떠난 아내가 세상을 등지게 되면서 벤은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온다. 자연을 떠나 문명 아래서 사는 삶은 벤의 교육/훈육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 아이들을 장인에게 맡기고 홀로 버스를 몬다. 벤이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대목에서 2012년 발표된 여섯 번째 앨범 <Valtari>의 수록곡 'Varðeldur'가 사용됐다. 억누르려고 하지만 눈물은 어쩔 도리 없이 새어나오고, 뒤를 보아도 버스는 텅 비어 있다. 욘시의 팔세토 보컬은 전혀 들리지 않은 채 서글픈 소리가 이어지는 음악은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버스에서 나와 벤 앞에 서자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작별과 재회의 과정이 펼쳐지는 3분 동안 오히려 음악은 이렇다 할 감정적인 변화가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더 기묘하게 기억되는 인용이다. 


''Svefn-g-englar''
<뷰티풀 보이>
Beautiful Boy, 2018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티모시 샬라메는 스티브 카렐과 함께한 영화 <뷰티풀 보이>에서 마약에 중독된 청년 닉을 연기했다. <뷰티풀 보이>는 약물에 빠진 닉이 중독되고 회복하는 걸 반복하고, 아버지 데이비드가 그런 아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과정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다. 앞서 언급한 시규어 로스의 'Svefn-g-englar'는 비교적 초반부, 한번 중독을 극복하고 아버지를 안은 닉이 대학에 입학하고, 거기서 여자친구 줄리아를 만나 그녀의 집에 초대돼 화장실에서 알약을 발견하곤 그걸 삼킨 후, 다시 약에 빠져드는 시퀀스에 사용됐다. 고요하게 시작해 욘시의 서늘한 보컬이 끼어 들고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터지는 과정이, 빛을 되찾은 닉이 다시금 어둠으로 스며드는 흐름과 걸맞는다. 


''Sæglópur''
<아쿠아맨>
Aquaman, 2018

DC 히어로 영화 <아쿠아맨>의 시작은 등대지기 토마스가 바위에 쓰러진 아틀란티스의 여왕 아틀라나(니콜 키드먼)를 구하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아들 아서를 갖게 되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Hoppípolla'와 함께 시규어 로스의 네 번째 앨범 <Takk...>에 수록된 'Sæglópur'는 아틀라나와 토마스가 눈 내리는 날 등대 위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아틀라나가 아서를 낳아 가족 사진을 찍는 시퀀스를 꾸민다. 시규어 로스의 트랙들 중에서도 특히 아이슬란드의 기운이 물씬해, 눈 내리는 풍경과 외딴 섬에서 세 가족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모두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아서가 성장한 어느 날 아틀란티스 군인들이 습격하게 되면서 이 평화는 산산조각나고, 아틀라나는 다시 아틀란티스로 돌아간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