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저명한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카메론 크로우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영화음악을 통해 자신의 방대한 음악 지식을 드러냈다.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리메이크 한 <바닐라 스카이> 역시 크로우의 선곡 감각이 빛나는데, 영화 개봉 당시 두 번째 앨범 <Ágætis byrjun>로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던 시규어 로스의 비중이 두드러진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로우는 <바닐라 스카이>에 시규어 로스의 음악만 무려 3곡을 사용했다. 중반부에 쓰인 <Ágætis byrjun>의 수록곡 'Svefn-g-englar'와 'Ágætis byrjun'도 좋지만, 특히 인상적인 건 영화 마지막에 쓰인 'Njósnavélin'다. 결국 죽음을 택한 데이빗(톰 크루즈)이 그토록 사랑한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며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과정을 수식한다. <바닐라 스카이> 제작하던 때엔 공연에서만 연주되고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았던 곡을 라이브 녹음 음원을 써서 배치할 만큼 크로우가 시규어 로스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용. 다만 훗날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시는 제작사는 영화 완성본을 보여주지 않았고, 개봉된 후에야 본 <바닐라 스카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음악 사용허가를 후회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