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개봉한 <애프터 양>은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로 폭넓게 이름을 알린 한국계 감독 코고나다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가족과 함께 사는 AI 양이 작동을 멈추자 그를 수리하다가 기억 장치를 발견하게 되는 제이크를 콜린 패럴이 연기했다. 패럴 특유의 과한 에너지를 내뿜는 마초가 아닌, AI와 공존하는 삶을 고민하는 차분한 가장의 면모를 선보인다. 콜린 패럴이 지난 20년 동안 거쳐온 전작들을 돌이켜보자.

타이거랜드

콜린 패럴은 배우 팀 로스가 감독을 맡은 <전쟁 지대>(1999)의 단역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첫 주연작은 <의뢰인>, <배트맨> 3,4편 등을 만든 조엘 슈마허 감독의 전쟁 영화 <타이거랜드>(2000)다. 미국의 패색이 역력하던 1971년 9월 베트남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전쟁을 반대하며 명령에 불복종 하는 병사 보즈를 연기했다. 전장을 재현하기 위해 16mm 필름으로 찍은 영화에서 패럴을 비롯한 배우들은 헤어나 메이크업 없이 촬영에 임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톰 크루즈 주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는 주인공 앤더튼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며 그를 집요하게 뒤쫓는 검찰관 위트워를 연기했다. 수년 전 기획 당시엔 맷 데이먼이 물망에 올랐다가, 제작이 미뤄진 후 하비에르 바르뎀이 거절해, 결국 콜린 패럴이 역을 맡게 됐다.

폰 부스

<타이거랜드>의 조엘 슈마허는 러닝타임 대부분이 비좁은 전화 부스에서 펼쳐지는 영화 <폰 부스>(2002)에 다시 한번 콜린 패럴을 주연으로 캐스팅 했다. 제작자들은 처음엔 짐 캐리를 원했는데, <타이거랜드>를 보고 나서야 슈마허의 선택에 수긍했다. 아내와 애인 앞에서 불륜을 고백하고, 거짓 찌라시를 팔아먹고 살았다며 시민 앞에서 말하는 장면은 단 한번에 촬영을 마쳤다고. 패럴은 슈마허의 또 다른 작품 <베로니카 게린>에 카메오로도 얼굴을 비췄다.

데어데블

<아이언 맨>보다 5년 먼저 제작된 마블 히어로 영화 <데어데블>(2003)에선 빌런 불스 아이로 출연했다. 콜린 패럴은 데어데블 역의 후보로 올라 있던 배우 중 하나였는데, 불스 아이로 고려되던 벤 애플렉이 데어데블 역에 낙점되면서 패럴은 불스 아이를 연기하게 됐다.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패럴은 <데어데블>로 처음 영화에서 아일랜드 억양을 구사했다.

뉴 월드

<천국의 나날들>(1978) 이후 20년 만에 <씬 레드 라인>(1998)을 발표해 녹슬지 않은 연출력을 증명한 과작의 거장 테렌스 맬릭은, 그로부터 7년 후 콜린 패럴을 캐스팅 한 <뉴 월드>(2005)를 내놓았다. 17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영국 탐험가 존 스미스 그간 패럴이 보여준 껄렁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실제 존 스미스가 발표한 저작을 모두 읽은 패럴은 태어나 처음 보는 새로운 세상에서 만난 사랑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인물을 구현했다.

마이애미 바이스

<히트>와 <콜래트럴>의 마이클 만 감독은 80년대를 대표하는 형사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를 영화화 했다. 만은 원작의 주인공 소니 크로켓을 연기한 돈 존슨에게 어떤 배우를 추천하느냐고 물었고, 그의 대답은 바로 콜린 패럴이었다. 직접 배우들이 현직 형사와 함께 잠입 수사를 배우도록 한 감독의 지시로 패럴과 제이미 폭스는 직접 훈련에 참여했지만, 촬영 직전에 <레이>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폭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두 주인공의 콤비 플레이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남았다.

킬러들의 도시

제목이 지칭하는 도시는 벨기에의 관광도시 브뤼헤(영어 원제가 'In Bruges')다. 대주교를 살해하고 영국에서 도망친 킬러 레이(콜린 패럴)와 켄(브렌단 글리슨)은 지루할 정도로 여유로운 도시 브뤼헤에서 시간을 보낸다. 블랙코미디였던 <킬러들의 도시>(2008)는 어떤 대목에 이르러 유혈이 낭자하는 갱스터 영화로 모습을 바꾼다. 종잡을 수 없도록 시시각각 변하는 정서에 맞춰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 콜린 패럴은 이 작품으로 생애 처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크레이지 하트

<크레이지 하트>(2009)는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시골 작은 바에서 술에 절어 노래하며 살아가는 컨트리 가수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를 그린 영화다. 제프 브리지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그의 존재감이 장악하고 있는 영화에서 콜린 패럴은 배드에게 음악을 배워 현재 승승장구 하고 있는 가수를 연기했다. 브리지스는 물론 패럴 역시 훌륭한 노래 솜씨를 선보인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범상치 않은 생김새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2011)에서 콜린 패럴은 직장상사라는 걸. 죽은 아버지 대신 낙하산으로 화학공장 사장이 된 바비는 그야말로 개망나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코카인을 보유한 마약쟁이에, 집무실에서 섹스를 즐기고, ATM마냥 회삿돈을 써재낀다. 패럴은 비호감 외모를 비롯한 바비의 설정에 깊숙이 관여해 캐릭터를 완성했다. 

세븐 싸이코패스

<킬러들의 도시>의 마틴 맥도나 감독은 데뷔작의 일등공신이었던 콜린 패럴을 다시 한번 캐스팅 해 두 번째 장편 <세븐 싸이코패스>를 연출했다. 시나리오 작가 마티(콜린 패럴)는 일곱 명의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쓰다가 난항에 빠지고, 강아지를 납치해 다시 주인에게 찾아줘 현상금을 챙기는 친구 빌리(샘 록웰)는 친구를 돕기 위해 신문에 싸이코패스를 찾는 광고를 낸다. 패럴을 비롯한 샘 록웰, 우디 해럴슨, 크리스토퍼 월큰 등 명배우들의 앙상블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 랍스터

기묘한 가족 스릴러 <송곳니>(2009)로 전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콜린 패럴, 레이첼 바이스, 레아 세두와 함께 첫 영어 영화 <더 랍스터>(2015)를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짝을 찾아야 하고, 혼자가 된 사람은 45일 동안 연인을 얻지 못하면 동물이 돼야 하는 근미래가 배경인 블랙코미디다. 콜린 패럴이 연기한 주인공 데이빗은 근시란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 받고, 새로운 짝을 찾지 못해 도망친 숲에서 근시인 여자(레이첼 바이스)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20kg 가량 체중을 불린 패럴은 특유의 섹슈얼한 마초의 매력을 덜어낸 모습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신비한 동물사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핀 오프 '신비한 동물사전'의 닻을 올린 <신비한 동물사전>(2016)에 출연하면서 해리 포터 유니버스에 입성했다. 그가 연기한 퍼시발 그레이브스는 마법 사법/안보부 장관을 겸직하는 인물로, 나중엔 시리즈의 메인 빌런인 겔러트 그린델왈드라는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와 같은 설정으로 패럴은 1편에만 참여하고 조니 뎁과 매즈 미켈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매혹당한 사람들

2017년 작 <매혹당한 사람들>은 돈 시겔 감독/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군인 존은 숲속에서 구출돼 7명의 여자들만 사는 대저택에서 지내게 된다. 콜린 패럴은 원작의 이스트우드를 대신해, 저택의 여자들을 두루 사로잡는 미남이지만 불구인 뒤틀린 남성성을 상징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킬링 디어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신작 <킬링 디어>(2017)에 또 한번 콜린 패럴을 캐스팅 해 그에 대한 편애를 드러냈다. 줄곧 묘하게 무능력한 남성 캐릭터를 내세워 온 란티모스는 패럴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부여해, 어느날 문득 찾아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위협하는 존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무력한 가부장의 표상을 이끌어냈다. 클라이맥스에서 패럴이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대응이 내뿜는 조롱은 정말 지독하다.

더 배트맨

콜린 패럴은 '배트맨' 시리즈와 꽤 연이 깊다. <트로이>의 볼프강 페터젠이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던 <배트맨 vs 슈퍼맨>에 배트맨 역을 맡을 뻔했지만 결국 프로젝트가 무산된 바 있다. '혹성 탈출' 시리즈의 맷 리브스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더 배트맨>(2022)에선 펭귄 역을 맡아 뭇 관객들을 놀래켰다. 촬영마다 2시간이 넘는 분장을 거쳐 펭귄의 흉측한 외모를 만들어 연기 스펙트럼을 제대로 넓혔다. 패럴은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