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2004)로부터 <브로커>(2022)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8년 동안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가족 앞에 ‘정상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은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회적 통념을 그는 가족의 집합과 해체를 자유자재로 무너뜨린다. 징글징글하지만, 버릴 수 없는 가족. 때로는 날이 선 말로 상처를 주지만 결국엔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가 있음을 공감하는 게 가족 아닐까. 오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아이들만이 남았다.
<아무도 모른다>(2005)

1988년 도쿄 도 도시마구에서 실제 일어난 ‘니시스가모 네 아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 영화의 시작점이기도 한 이 영화는 홀로 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수년 간 방치 되어 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도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10살 남짓의 소년이 자신을 포함, 동생들을 모두 챙기면서 견디는 건 불가능했다.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영화는 엄마를 비난하지도, 사회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들의 일상을 관조하며 관객 스스로 아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든다. 수도와 전기가 끊긴다는 안내문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그 작은 손이 견뎌야 했던 시간을 관객들은 천천히 가늠해 본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까지도. 책임 없는 가족은 가능한 명제인가, 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영화.

아무도 모른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개봉 2005.04.01. / 2017.02.0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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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 가족
<걸어도 걸어도>(2009)

이동진 평론가는 <걸어도 걸어도>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정교하게 축조된 구조물이다. 어떤 대사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다. (중략) 그렇다. 살아서 영화를 보는 행복이 여기 있다.” 료타(아베 히로시)는 10여년 전 사고로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고향을 찾는다. 가족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료타는 뜻하지 않게 어머니의 속내를 얼핏 들여다 보게 된다. 장남 기일로 모인 가족이지만 영화는 그 흔한 플래시백 한 번 쓰지 않는다. 장남은 그저 가족들의 입에 의해 언급될 뿐이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가족에게 만큼은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영화는 허물 수 없는 가족 간의 벽을 이야기한다. 전 남편을 사별로 잃은 료타의 아내 앞에서 “애 딸린 과부는 재혼하기도 어렵다” 는 말을 하며, 불편한 말들 내뱉는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죽은 형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이해 안 가지만 그럼에도 료타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러다 또 다시 실망하고. 반가워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이를 반복하는 게 가족 아닐까. 

걸어도 걸어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키키 키린, 하라다 요시오

개봉 2009.06.18. / 2016.08.04.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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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이는 어른이 보지 않을 때 자란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동화라는 평가를 받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사실 규슈 신칸센 개통이 계기가 된 영화다. 그는 신칸센 개통을 기념해 영화 제작 제의를 받았고, ‘아이들 영화’가 찍고 싶어 수락했다. 전 작인 <아무도 모른다>와는 다른 결의 아이들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신칸센이 엇갈리는 순간,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기적을 믿고 여행길에 떠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기적이 없어도 괜찮다는 걸 말해 주며 끝난다.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소소한 기적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아이들은 ‘티켓값이 부족할 때 발견한 동전’이나 ‘하룻밤 묵을 곳을 마련해 준 노부부’와 같은 경험을 통해 알아간다. 영화는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가족이 한 데 모여 살게 해달라는 주인공 고이치(마에다 코우키)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지만, 고이치 역시 빌지 않는다. 아이는 특별한 순간에 일상을 의탁해 살기보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않을 때 자라난다. 신칸센이 교차하는 순간적인 시간이 어른이 아이를 보고 있는 시간이라면,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이미 자라나고 있다. 뒤 돌아섰다 다시 보면 자라나 있는 게 자식이랬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마에다 코우키, 마에다 오시로, 오다기리 죠, 오츠카 네네, 키키 키린

개봉 2011.12.22. / 2021.04.22.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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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들어 주는 건 무엇인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 주는 건 무엇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회적 믿음에 물음표를 던진다. 영화는 6년 동안 키운 아이가 사실은 내 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료타의 이야기로 ‘혈연’이라는 어쩌면 바꿀 수 없는 가족간의 믿음을 완전히 뒤엎으며 시작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낳은 정’과 ‘기른 정’ 중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느냐, 를 극적으로 비교하기 보다 ‘아버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춘다. 

경제적인 지원과 정서적인 지지 중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아버지, 유다이(릴리 프랭키)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료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니 아버지가 되었다고 저절로 생각했겠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화는 사회가 만든 아버지의 틀에 갇혀 있던 료타를 ‘아이가 뒤바뀐 상황’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통해 꺼내준다. 영화의 끝, 마침내 아들과 눈을 맞추게 된 료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릴리 프랭키, 오노 마치코, 마키 요코, 니노미야 케이타

개봉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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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
결핍을 채우는 가족, 일상, 풍경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이야기에는 기저에 결핍이 존재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 결핍을 가족 구성원들이 채워나가면서 완성된다. 영화는 세 자매가 15년 전 자신들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이복자매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스즈는 아버지가 두 번째 부인과 낳은 자식으로 그의 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 스즈의 환경에 자매 중 첫째 사치는 자신들과 함께 살 것을 제안했고 스즈는 그들을 따라간다. 영화는 커다란 굴곡 없이 흘러간다. 틈틈이 부모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으로 인해 서로의 상처를 건드릴 때도 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상처를 마주하고,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고, 일상을 영위해나가는 자매의 모습은 아름답다. 서정적인 한 편의 수필, 혹은 그림을 보는 듯한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야세 하루카, 나가사와 마사미, 카호, 히로세 스즈

개봉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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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들을 향한 위로의 손
<태풍이 지나가고>(201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다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알만한 이야기. 그의 영화는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차갑고 단단한 질감을 갖고 있다. 은근하게 꽂히는 비수, 순수하지 만은 않은 마음처럼 그는 따뜻한 풍광에 적당한 차가움을 심는 데 능한 감독이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고>는 여타 작품들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온건하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촉망 받던 작가였지만 지금은 남의 뒤를 캐는 변변찮은 흥신소 탐정이다. 도박 중독에 가정에 소홀한 그는 자신이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 자신이 꼭 닮아 있다는 걸 알지만 애써 이를 부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료타는 이혼한 아내 쿄코(마키 요코)와 자신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다시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을 내비치지만 어김없이 실패한 밤. 그날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날이었다. 료타는 아들 신고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요시코와 쿄코 역시 집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드러낸다. 영화는 철없는 어른 료타는 지난 과거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족 영화임과 동시에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들을 향해 따뜻한 위로의 손을 건네는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마키 요코, 요시자와 타이요

개봉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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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 집대성
<어느 가족>(2018)

2018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주워오고, 데려오고 하면서 모인 이 가족은 그 누구도 혈연이나 법적으로 얽혀있지 않다. 홀로 외롭게 살던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는 가정폭력에 지쳐 남편을 죽인 노부요(안도 사쿠라)와 그의 내연남인 오사무(릴리 프랭키), 가출 후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아키(마츠오카 마유), 파칭코 주차장에 버려졌던 쇼타(죠 카이리), 친모에게 학대 당한 유리(사사키 미유)까지 총 다섯 명을 집에 들인다. 생계는 세탁소 일과 좀도둑질, 할머니의 연금, 성매매로 이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때로는 화목했다가 돈 앞에서 냉정해졌다가 다시금 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그들만의 단단했던 세계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사회로 나온 그들은 유괴범에 범죄자일 뿐이었다. 조사를 받던 도중, 노부요에게 아이들이 당신을 뭐라 불렀냐고 묻자 그는 “글쎄요, 뭐라고 불렀을까요” 라며 눈물을 흘린다. 학대 당한 아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그들만의 유대로 똘똘 뭉쳤던 그들은 가족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영화는 “아빠는 아저씨로 돌아갈게” 라는 말과 함께 그 답을 열어 놓는다. 그럼에도 구태여 말을 보태자면, “사랑하면 때리지 않아. 이렇게 안아주는 거야”라는 그 말은 진심이었을 터. 

어느 가족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키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개봉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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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대중적인 문법
<브로커>(202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한국 명배우들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브로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엄마 소영(이지은)은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를 놓고 사라지고, 적자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 동수(강동원)는 아이를 몰래 데려간다. 그러나 예기치 못하게 소영은 다시 아이를 찾으러 오고, 상현과 동수는 아이를 잘 키울 사람을 찾기 위해 데려간 것이라 변명한다. 새 부모를 찾기 위한 소영은 여정에 동참하고, 이 ‘브로커들’의 현장을 잡기 위해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가 그들의 뒤를 쫓는다. 

늘 그렇듯 어느 쪽도 옹호하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도는 이번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쉽게 그들의 행동을 옹호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질 할 수만도 없는 이야기. 특별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영화들은 모두 에둘러서 대사를 표현했다면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직접적이다. “태어나줘서 고마워”와 같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이전 영화들보다 조금 더 대중적이고, 친숙하다. 곳곳에 웃음코드도 심어져 있어 부담 없이 보기 좋은 영화. 

브로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이주영

개봉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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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