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스펙터클이라는 나쁘고 황홀한 기적
★★★☆
동시대 사회적 이슈들을 향한 날선 폭로가 가득했던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순수한 영화적 호기심과 탐구정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게 느껴진다. 이질적으로 존재했던 개별적 요소들을 상상력으로 엮고 기술력으로 풀어낸 솜씨가 발군.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들과 기타 레퍼런스가 된 장치들을 읽어낸다면 한층 풍성한 관람이 되겠지만, 모르고 보더라도 상관없다. 영화와 촬영 매체를 향한 애정, 모두가 기꺼이 구경거리가 되길 자처하는 천박한 시대 풍경 묘사, 미지의 존재를 향한 경외감 등이 한 데 뭉쳐 탄생한 이 기이한 영화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기대하는, 스펙터클이라는 이름의 모든 ‘나쁜 기적'들이 이 안에 있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올여름 블록버스터 중 가장 흥미롭다
★★★★
<놉>은 올해 개봉한 여름 블록버스터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공포와 SF, 서부극이 두서없이 뒤섞인 가운데 조던 필 감독은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르영화의 문법을 거스르는 동시에 할리우드 유산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최초의 여름 블록버스터 <죠스>를 비롯해 <미지와의 조우> <E.T.> 그리고 인류 최초의 활동사진까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그것을 찍기 위해 OJ(다니엘 칼루야) 일행이 벌이는 사투는 <놉>을 영화에 관한 영화로 만드는 동시에 스펙터클에 중독된 우리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그 경고 방식 역시 스펙터클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라는 아이러니까지 <놉>을 완성시킨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더 독해지고 복잡해진 조던 필 뻥의 시계
★★★☆
더 이상 조던 필의 상상력을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관객의 상상력을 수줍게 만들어 버리시는 범상치 않은 뇌 구조의 소유자. 그러나 발상이 참신하다는 것과 그것이 영화적 재미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참신함과 영화적 재미가 하나로 움직였던 <겟 아웃>과 달리 둘 사이의 연결이 조금 덜컥거린다. 전반적인 인상은 분명 신박한데, 부분적인 인상엔 지루함도 섞여 나온달까. 상징과 풍자와 은유들도 단독으로 놓고 보면 흥미롭지만, 하나의 주제로 응집되는 힘이 덜하다 보니(혹은 추가 해석과 주석이 필요하다 보니) 영화 끝에서 기대한 짜릿함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럼에도, ‘조던 필의 뻥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매료될 수밖에 없는
★★★☆
대중문화를 자양분 삼아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꾸리는 조던 필 감독은 세 번째 장편 연출작 <놉>에서도 일취월장한 솜씨로 익숙한 것을 새롭게 빚어낸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 재패니메이션, TV쇼 등 과거 대중문화의 상징과 같은 코드를 적극 활용하며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발견하고, 열광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관객의 취향과 욕망을 자극한다. 사회를 겨냥한 날 선 메시지는 전작들보다 무뎌진 것 같지만, 할리우드와 영화사를 응시하는 창작자의 애증 어린 눈이 대신 자리한다. <겟 아웃>(2017) <어스>(2019)에 이어 음악을 담당한 마이클 아벨스는 이번에도 예측할 수 없는 영화음악의 괴력을 발산하며 조던 필 감독 작품의 빼어난 특징으로 자리매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