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E> 속 한 장면

당신에게도 반려 가전이 있는가. 어느 로봇청소기 후기에서 한 네티즌은 자신의 청소기를 '영미'라 부르며 "돈으로 낳은 자식"이라 칭했다. 그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자식 중 가장 맘에 든다"며 애정 어린 평을 남기기까지 했다. 로봇청소기가 혁신적인 가전제품이라 사람들이 쉽게 애정을 갖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런 행동을 거듭해왔다. 로봇에 이름을 지어주고 친근하게 대해왔다. 이상하게도 로봇이란 정이 드는 존재니까.

아직까지 우리 세상의 로봇은 완벽하지 않다. 일을 시키면 잘 해내다가도 삐끗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누군가는 로봇이 고장 난 거라 하겠지만 필자 같은 사람들은 이 점을 귀여워한다. 로봇만의 야무진 엉뚱함으로부터 '생명'스러움을 목격한 기분이라고 할까. (어릴 적 봤던 <월-E>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월등히 진화한다면? 그때가 되어서도 로봇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인간과 로봇의 간극이 명확한 지금이 미래를 상상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담은 영화 5편을 소소하게 추려보았다. 

월-E

감독 앤드류 스탠튼

출연 벤 버트, 엘리사 나이트, 제프 갈린, 프레드 윌러드

개봉 200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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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그녀>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 하면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을 인간이나 로봇의 형상으로 상상하게 된다. 대부분의 SF 영화가 그래왔으니까. 영화 <그녀>는 그런 편견을 뒤집는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낭만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 별거 중인 상태로, 매일 외로움 속에서 홀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중 우리의 현실 속 시리(Siri)나 빅스비, 알렉사 같은 음성 비서인 '사만다'를 알게 되고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인스턴트 사랑이 당연한 <그녀> 속 세계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테오도르'는 자신에 맞춰 대화 방식을 학습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만다'와 깊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얼마 가지 못한다. 그전에는 그저 알고리즘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만다'가 감정을 터득했기 때문.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가진 '테오도르'는 그런 '사만다'가 익숙치가 않다. <그녀>는 자기 파괴적이고 차가운 SF 영화에 질린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따뜻한 색감과 감각적인 OST가 호아킨 피닉스의 섬세한 연기와 조화롭게 어울린다. '사만다' 역의 스칼렛 요한슨이 매력적인 목소리 연기 또한 중요한 관점 포인트다.

그녀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릿 조핸슨

개봉 2014.05.22. / 2019.05.29.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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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센테니얼 맨>
<바이센테니얼 맨>

아름다운 연기로 우리를 여러 번 웃기고 울렸던 로빈 윌리엄스가 그리울 때면 필자는 <바이센테니얼 맨>을 본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로봇이었던 '앤드류 마틴'이 200살의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여기서 로빈 윌리엄스는 '앤드류 마틴' 역할을 맡아 영화 중반부에서부터 얼굴을 드러낸다. 처음엔 그저 인간들의 편의를 돕는 가정용 집사 로봇이었던 '앤드류 마틴'은 자신을 고용한 아버지 '리차드'의 도움으로 하나의 생명체로 발돋움한다. 책을 읽어 지식을 습득하고 시계 제작자로서 스스로 경제활동에 나서기까지 한다.

하지만 로봇인 '앤드류'는 자기 명의의 통장을 개설하지도 못하는 현실. 어느새 딸인 '아만다'는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나이가 든 '리차드'에게 '앤드류'는 독립을 요구한다. 그리고 '앤드류'는 유기견과 함께 해변에서 홀로 살아간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공지능이 발전한 미래의 '희망 편'이다. 인간과 공존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원하는 '앤드류'의 여정이 아름답다. 더불어 이 영화를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드는 건 로빈 윌리엄스의 따뜻한 미소.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인 <바이센테니얼 맨>은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수작이다. 

바이센테니얼 맨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출연 로빈 윌리엄스

개봉 200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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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조>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면,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 <조>는 커플들의 궁합과 두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여 사랑에 빠질 가능성을 예측하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레아 세이두 역의 주인공 '조'는 이완 맥그리거 역의 '콜'에게 반해 그와의 궁합을 돌려보자 0%가 나와 좌절한다. 굴하지 않고 '조'는 '콜'에게 고백하지만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조'는 '콜'이 만들어낸 로봇이라는 것.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던 '조'는 크게 좌절하고 자신의 기억들이 학습된 결과라는 점을 믿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조'와 '콜'은 연인이 된다. '콜'은 자신의 전 부인에게 '조'를 소개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의 사랑은 원만하게 이어지는 듯싶었으나 '조'는 이따금 자신이 로봇이라는 현실에 부딪힌다. 인간의 감정에 완벽히 똑같이 프로그래밍되지 않아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점이 괴롭고 자신의 한계가 자꾸만 실감된다. 그들의 사랑은 끝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이야 인공지능이 고도화되지 않아 바둑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수준에 이르지만 먼 훗날엔 어떻게 될까. 과연 '사랑'을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는 그 질문에 답변하는 영화다.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출연 이완 맥그리거, 레아 세이두

개봉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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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양>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이 그려낸 근미래의 세계는 섬세하고 유려하다. 영화 <애프터 양>은 기후 변화로 큰 고비를 겪은 후의 인류를 조명하고 있다. 차 판매점을 운영하는 '제이크'와 '키라'는 입양한 딸 '미카'를 위해 안드로이드 인간 '양'을 구입한다. 중국 아이인 '미카'가 미국에 입양되었어도 중국 문화를 잊지 않으려면 '양'이 필요했던 것. '미카'는 '양'을 친오빠처럼 따르고 '양'은 '미카'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심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안드로이드 '양'이 갑작스럽게 고장 나고 '미카'는 충격을 받는다. '제이크'는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맨다.

'제이크'는 '양'이 고장 난 원인을 찾다가 '양' 속에 담긴 기억장치를 찾는다. '제이크'는 기억장치를 들여다본다. 그 속엔 '제이크'와 '키라' 그리고 '미카'가 담겨있다. 심지어 자신이 잊고 있던 기억마저도. 사랑은 여러 빛깔을 품고 있다는 말과 같이 '양'의 사랑도 그렇다. 비록 안드로이드이지만 '양'은 자신의 방식대로 가족을 사랑했다. '제이크'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애프터 양>은 화려한 CG 효과나 액션신, 파격적인 스토리 없이도 충분히 풍성한 영화다. 코고나다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깊이 있는 시선을 만끽해 보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