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수리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이 순항 중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으로 한국 영화계에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인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마약으로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했던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각색했다. <수리남>은 홍어 사업을 꿈꾸며 남미 국가 수리남으로 넘어간 사업가 강인구(하정우)가 마약 유통이라는 누명으로 감옥에 가게 되고, 마약 조직의 두목 전요환(황정민) 체포하려는 국정원 요원의 제안을 받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 하정우를 비롯해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황정민과 조우진, 박해수, 유연석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만큼 배우들을 살펴보고 가지 않을 수 없을 터. 최근작 또는 윤종빈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주요작들을 통해 <수리남> 주연 배우들을 샅샅이 살펴보자.

* 영화 <수리남><헌트>에 대한 소소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수리남>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하정우│강인구 역

윤종빈과 하정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나 다름없다. 윤종빈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시작으로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까지 거의 모든 작품에서 하정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윤종빈의 페르소나에 등극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하정우, 윤종빈 모두에게 최고의 커리어를 안겨준 작품으로 남았다. 하정우는 부산 최대 조직의 두목으로 최익현(최민식)을 이용해 조직을 키워나가려는 야망을 가진 최형배 역으로 출연, 능글맞은 부산 사투리와 하정우표 먹방을 만들어 내며 흥행을 견인했다. 이외에도 윤종빈은 하정우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허삼관>의 각색을 맡았으며 영화 <클로젯>에서는 제작에 공동 참여해 인연을 이어갔다.

(왼쪽부터) 영화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이번 <수리남>의 시작에도 하정우가 있었다.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조봉행 사건을 접한 하정우가 윤종빈 감독에게 작품화를 제안했다고. 처음엔 영화 한 편에 이야기를 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 판단해 제안을 거절했지만 <공작> 촬영 이후 시리즈물로의 가능성을 보면서 도전하게 됐다고 한다.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어려움 속에 자신만의 살길을 찾아 살아온 억척스러운 인물이다. 동시에 '가정적인' 인물인 그는 전요환의 교회 안에서 마약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심성을 지녔다. 빠른 상황 판단과 행동으로 임무 중에서도 숱한 고비를 넘기며 전요환 검거에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2년 만에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춘 하정우의 열연이 담긴 <수리남>은 현재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 3위에 오르며 순항 중이다.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가 앞으로 만들어낼 새로운 영화적 세계는 무엇일지, 두 사람의 행보를 기대해 보자.


넷플릭스 <수리남>
넷플릭스 <수리남>

황정민 │전요환 역

<수리남> 속 황정민의 두 얼굴은 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궁지에 몰린 강인구와 박응수에게 도움을 주는 선량한 한인 교회 목사라는 가면과 수리남에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마약왕으로서의 얼굴 말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서늘한 웃음과 한순간에 폭발적인 시너지를 유발하는 광기. <수리남> 전반에 흐르는 쫄깃한 긴장감은 황정민만의 노련한 연기가 빚어 올린 결과다.

영화 <공작>
영화 <인질>

황정민과 윤종빈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두 사람은 2018년 영화 <공작>을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언더커버물인 <수리남>에서 하정우가 소화한 역할과 유사하게 <공작>에선 황정민이 첩보 스파이로 활약했었다. 정보사 출신 인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대북사업가로 위장, 북의 고위층 내부에 잠입한 흑금성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인물들의 얽힌 관계와 촘촘하게 짜인 대사들로 밀고 나가는 영화였던 만큼 어마어마한 대사량과 섬세한 내면 연기를 소화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작년 8월엔 범죄 액션 스릴러 <인질>에서 인질이 된 배우 황정민 역으로 출연해 여름 극장가 사냥에 나섰으나 아쉬운 성적만 남겼다. 8월 개봉한 <헌트>에선 전투기를 타고 귀순한 리 중좌 역으로 우정 출연해 짧은 분량에도 선명한 인상을 남기며 명품 배우로서 존재감을 빛냈다.


넷플릭스 <수리남>

박해수│최창호 역

마약왕 전요환(황정민) 잡기 위해 수년간 필사적인 작전을 펼쳐 온 사람. 국가정보원 미주지부 팀장 최창호다. 누명으로 인해 감옥에 갇혀 버린 인구(하정우)에게 국정원을 도와 전요환에게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자신 역시 인구의 위장 잠입을 돕기 위해 인구의 사업 파트너 구상만을 연기하며 전요환을 수리남에서 끌어내려 한다. 인구의 구세주인 듯 보였으나, 사실상 인구를 위험에 빠트린 장본인이다. 냉철한 판단력과 유연한 연기력으로 상황을 지휘하는 최창호는 배우 박해수가 맡았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2017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주목받은 그는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엘리트 금융인이었으나 투자 실패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 조상우 역으로 출연했다.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박해수 역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 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되었다. 그 외에 넷플릭스 영화 <야차>,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출연, <수리남>까지 2022년 한 해에만 총 4개의 오리지널 작품에 얼굴을 비추며 넷플릭스 공무원이란 별명이 붙기까지 했다. 스페인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을 리메이크 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선 강도단 현장의 리더 베를린을 연기해 이성적인 면모와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올 하반기 파트 2로 돌아올 예정이다.


넷플릭스 <수리남>

조우진│변기태 역

전요환 조직의 행동대장 변기태는 남다른 존재감을 내뿜는다. 의심을 거두지 않는 눈초리, 살벌한 문신들과 낮은 목소리는 등장마다 분위기를 제압하는 힘을 지녔다. 조선족 출신으로, 차이나타운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첸진의 수하였으나 그를 배신하고 전요환에게 온 인물. 초월 번역으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전요환이 내부 첩자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긴장감을 끌어내기도 한다. 여러 가지로 비밀을 안고 있는 주요 인물이다.

영화 <킹메이커>
영화 <외계+인 1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저음 목소리의 주인공은 배우 조우진이다. 마약이라는 유사 소재를 다룬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에서도 부산 최대 범죄 조직 성강파의 보스 조성강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그 외에도 <내부자들>, <국가부도의 날>, <남한산성> 등 다수의 작품들을 통해 신스틸러로 활약하며 충무로에 존재감을 입증했다. 최근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에선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이용하는 여당 선거 전략가 이실장 역으로 분했다.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1>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웃음을 담당하는 삼각산의 신선 청운으로 출연해 온갖 도술을 부리는 신통력으로 신검을 쫓는다. 배우 이정재가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은 <헌트>에서는 동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안기부 도쿄지부요원 문형석 역으로 특별출연해 짧은 등장에도 남다른 존재감을 새기며 '동경 어벤져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넷플릭스 <수리남>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

유연석│데이빗 박 역

전요환의 고문 변호사 데이빗 박은 조직 내에서 어딘지 짠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변호사인 만큼 엘리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영어는 긴장감 속 소소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내부 첩자이자 강인구의 조력자로 의심되는 인물 중 하나로, 충성심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포착되기도 한다. 멀끔한 풋내기 조직원 같은 데이빗 박은 배우 유연석이 맡았다.

2013<응답하라 1994> 칠봉이 역으로 주목받은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 <미스터 선샤인> 등 드라마 분야에서 히트작을 남겼다. 2020년부터 방영된 신원호 PD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선 율제그룹의 막내아들이자 율제병원 소아외과 조교수 안정원 역으로 분해 신현빈과 함께 겨울정원커플로 발전하며 달달한 케미를 뽐냈다. 3월 프랑스 영화감독 드니 데르쿠르가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한 범죄 스릴러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에선 국제적인 장기밀매 조직을 추적하는 형사 진호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넷플릭스 <수리남>

현봉식│박응수 역

강인구의 오랜 친구 박응수는 강인구에게 홍어 사업을 제안하며 수리남으로 그를 불러온다. 구구단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일찌감치 원양어선에서 일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든 결과 사업 수완엔 눈이 밝은 편이다. 한국으로 보낸 홍어에서 코카인이 나오게 되며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원인을 파악하려 나간 후 전요환 일행으로부터 살해당하며 비운의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으로 순박한 이미지를 남긴 박응수 역엔 배우 현봉식이 캐스팅돼 짧지만 인상적인 호연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D.P.>
영화 <비상선언>

현봉식은 작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진급에 눈이 멀어 제멋대로 명령을 내리다 못해 폭주하는 헌병대장 천용덕 역으로 출연했다. 시리즈가 흥행하면서 현봉식 역시 주목을 받았는데, 주연을 맡은 구교환보다 2살 어린 나이임이 밝혀지면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여담으로 <수리남>에 함께 출연한 유연석과는 동갑, 친구로 출연한 하정우보단 6살이 더 어리다. 8월 여름 극장가를 찾아온 한재림 감독의 신작 <비상선언>에선 인호(송강호)의 후배로 항공재난을 막으려는 수사 파트너이자 서울남부경찰서 강력팀 형사 박윤철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수리남>
(왼쪽부터) 영화 <듄>, <영혼사냥>

장첸│첸진 역

수리남 내 차이나타운을 영역 삼아 활보하는 중국 조직의 두목 첸진. 전기톱으로 사람의 사지를 잘라 거리에 걸어 놓을 만큼 잔인한 인물이다. 중식당 운영을 겸업하며 마약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전요환으로 인해 제약이 걸리게 되면서 그를 없앨 기회만 노리고 있다. 강인구와 박응수가 홍어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에게 매달 큰돈을 상납할 것을 요구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전개에 핵심적인 부분들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로, 대만의 유명 영화배우 장첸이 출연했다. 최근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대작 시리즈 <>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닥터 웰링턴 유에 역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2021년엔 제58회 금마장 시상식에서 시한부 암에 걸린 검찰관 차오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놀라운 점은 장첸의 <수리남> 출연이 특별출연이라는 사실. 평소 장첸 배우의 팬이었던 윤종빈 감독이 첸진 역을 처음 떠올렸을 때 장첸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자 감독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출연을 설득했다고 한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