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올 때마다 씬 스틸러의 면모를 보여주는 배우가, 사실 본업이 아니었다면? 카메라 앞에선 연기 천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현생에서는 본업 천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전 매력의 배우들이 있다. 스크린 안에서와 밖에서의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화려한 이중생활을 하는 감초 조연 배우들의 본업이 궁금하지 않은가? 분명히 익숙했던 그들의 모습 너머의 반전 매력을 지금부터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자!
김신영 (코미디언)
<헤어질 결심>
2022년 상반기를 휩쓴 화제작에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 빠져서는 될까? 고경표, 박정민, 정이서, 이학주 등 씬 스틸러들도 많았던 영화지만, 한 명만을 꼽아야 한다면 단연 김신영일 것이다. 김신영의 <헤어질 결심> 출연 소식이 보도를 통해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걱정 반 기대 반의 반응을 보였다. 콩트를 통해 연기에 익숙한 희극인이라고 해도 정극 연기는 또 다른 영역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김신영이 맡은 연수역이 지닌 매력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특히, 연기의 디테일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다. 본래 대구 출신의 영남권 사투리에 능한 김신영이 유독 박해일이 분한 해준과 함께한 장면들에서 살짝 어색한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이는 경찰 내부 조직에서 아웃사이더가 된 연수가 부산서에서 온 서울 출신 해준에게 잘 보이길 원하는 캐릭터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최근 김신영은 돌아가신 故 송해 선생님의 뒤를 이어 <전국 노래자랑>의 2대 MC로 낙점되어 화제를 모았다. 워낙 상징적인 자리기에 후임 MC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와 우려가 컸지만, 그녀가 후임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에 모두 입을 모아 적임자를 찾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김신영을 반기는 모습이다. 아직 첫 녹화분이 방영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관중을 통해 그녀가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여유 있고 당찬 목소리로 좌중들을 사로잡는 그녀의 모습에 첫 방송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데뷔 20년 차 중견 희극인인 그녀가 올해 상반기에는 <헤어질 결심>에서 호연을 보이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면, 이번 하반기에는 <전국 노래자랑>의 자랑스러운 2대 MC로 많은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예정이다.

-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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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개봉 2022.06.29.
백현진 (화가, 설치미술가, 가수, 음악감독)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모범택시>, <가우스 전자>, <브로커>
드라마 <모범택시> 속 여러 충격적인 갑질을 일삼은 실존 기업인들을 모티브로 만든 ‘박양진 회장’이라는 캐릭터는 배우로서 백현진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순간이었다. 분노조절장애와 기행을 일삼으며 광기의 의인화에 가까운 소름 돋는 연기는 많은 이들의 분노를 유발하였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오 상무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상사 혹은 총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새롭게 공개된 <가우스 전자>에서도 꼰대 같은 차장 기성남 역을 맡았다. 스크린에 매번 등장할 때마다 짜증을 유발할 만큼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백현진의 단면만을 보고 그가 실제로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크린 밖의 그는 세상 누구보다 멋진 행보를 걷는 사람이다.
백현진의 본업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종합예술인’이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홍대 미대 출신의 그는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미술상 ‘올해의 작가상’에 후보로 이름을 올릴 만큼 빼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더군다나 그는 반칙왕의 OST <사각의 진혼곡>'과 <복수는 나의 것>의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한 아방가르드 인디 밴드 어어부밴드로 일찌감치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백현진은 솔로로도 2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도 하고 있으며, <춘몽>, <만신>, <변산> 등 다수의 작품에서 음악감독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화제의 걸그룹 뉴진스의 총괄 프로듀서로 유명한 프로듀서 250의 앨범 <뽕>의 타이틀 곡 <뱅버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혼신의 나체 도주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티스트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백현진의 다재다능한 행보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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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종필
출연 고아성, 이솜, 박혜수
개봉 2020.10.21.
문상훈 (유튜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D.P>, <여고 추리반 시즌 1>
문상훈의 <여고 추리반 시즌 1>의 출연 소식이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다들 그가 예능에 얼굴을 비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김정호 선생의 역할로 등장한 뒤 클라이맥스에서 휘파람을 불며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면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문상훈을 다시 볼 수 있던 작품은 작년 한 해 많은 화제를 불러온 였다. 가혹행위를 당하는 조석봉 일병과 동반입대한 김루리라는 캐릭터는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시리즈의 소름 돋는 대미를 장식하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두 편의 출연작이 모두 히트를 한 대단한 작품들이었지만, 올해 그가 출연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차원이 다른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우영우와 비슷한 하지만 더 정도가 심한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김정훈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법정에서 그가 모든 대답에 ‘네’라는 진술을 반복할 때 조금씩 일그러지며 슬픔에 잠기는 표정을 짓는 장면은 그가 훌륭한 배우임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현시점에서 문상훈이 출연한 모든 작품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그의 차기작에 더욱더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그가 단순히 작품을 잘 만났기에 이런 흥행에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가 프론트맨으로 나서고 있는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는 문상훈의 하이퍼리얼리즘 연기를 맘껏 볼 수 있는 채널이다. 복학생 후니쓰, 한국 지리 일타 강사 문쌤, 문상 기자, 아이돌 강하까지. 수많은 부캐를 연기하면서도 모든 연기에 세심한 디테일을 곁들여 웃음을 유발한다.
종종 그가 실제 강사나 기자로 착각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할 정도로 그의 연기력을 뛰어나다. 이런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와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연출이 합쳐지면서 현재 ‘빠더너스’는 구독자 86만 명을 기록하며 100만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예능과 영화 드라마 등 종횡무진하는 그의 활약을 증명하듯 최근에 나온 문상훈 이모티콘이 전체 이모티콘 순위 2위에 올라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자꾸 볼수록 사랑스러운 문상훈의 인기는 어디까지 치솟을까?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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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유인식
출연 박은빈, 강태오, 강기영, 전배수, 백지원, 주현영, 하윤경, 주종혁, 임성재, 진경
방송 2022, ENA
조달환 (캘리그래피 작가)
<뷰티 인사이드> <지금 우리 학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왜 오수재인가>
조달환은 꾸준한 배우다. 매해 평균 4편 이상의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엄청난 임팩트의 씬 스틸러 스타일의 배우라기보단 어느 배역에 그를 맡겨도 극을 충분히 이끌어 갈 수 있는 든든한 스타일의 배우다.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릴 수 있었던 것은 흥행작품이 아닌 예능 <우리 동네 예체능>이었다. 소문난 탁구광인 그가 탁구에서 에이스에 가까운 실력을 보여주면서 고정 자리를 하나 꿰차고 이후 다른 종목에서도 꾸준히 괜찮은 실력을 보여주며 ‘예체능의 에이스’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안정적인 연기력과 빼어난 운동능력으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그는 사실 배우로서 큰 시련을 겪은 적이 있다.
난독증. 대본을 숙지하고 연기해야 하는 그에게 난독증은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중력을 향상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을 도입했는데, 그것이 바로 캘리그래피이다. 처음에는 난독증을 극복하기 위한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무엇이든 안정적이고 빼어나게 잘하는 그의 특성 덕에 그의 캘리그래피 실력은 나날이 늘었다. 이런 그의 작업을 눈여겨본 곳이 있으니 바로 방송 영화계였다. 훈련에서 시작한 그의 작품은 영화 <공모자들>, 드라마 <천명>, <감격시대> 등 다양한 작품의 타이틀에 사용되며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 작가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의 선 굵은 서체는 그가 매 작품 보여주는 든든한 연기력만큼이나 믿고 맡길 수 있어 보인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