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 은퇴를 선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촬영장에 지쳐서, 캐릭터를 오랜 시간 연기해서,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등. 작별을 고하며 팬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인도 있는 한편, 은퇴를 번복하고 스크린에 돌아오는 반가운 이들도 있다. 오랜 인연을 맺어온 캐릭터에서, 때론 영화계에서 은퇴를 선언했으나 팬들 곁으로 다시 돌아온 할리우드 배우 및 감독들을 모아봤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

울버린 역 │ 휴 잭맨

<엑스맨> 시리즈를 대표하는 캐릭터, 울버린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늘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할 것이다. 마침내 평안에 이른 (휴 잭맨의) 울버린을 이젠 보내주어야 한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지난 9월.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17년의 역사를 품고 <로건>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휴 잭맨이 울버린 역으로 복귀한다는 것. 이는 그의 절친 라이언 레이놀즈의 SNS 계정을 통해 공개됐다. 무려 <데드풀 3>의 제작 및 개봉 소식과 함께 말이다. 해당 영상에서는 <데드풀 3>에 대해 언급하던 라이언 레이놀즈의 뒤로 휴 잭맨이 컵을 들고 지나가고, 그런 그에게 라이언 레이놀즈가 "울버린 연기 한 번 더 할래?"라고 묻자 휴가 "좋지"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해당 영상 마지막에 등장한 'COMING HUGHN' 문구
<로건>

2017년 <로건>으로 울버린 트릴로지를 마무리 지으며 캐릭터 은퇴를 선언했던 휴 잭맨. 그의 컴백과 더불어 <데드풀 3> 출연 소식은 전 세계 마블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결정은 데드풀과 엑스맨의 판권을 소유한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MCU 세계관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다. 내적으로는 MCU 페이즈 4에서 멀티버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로건>과는 다른 세계관의 울버린이 출연할 수 있게 된 것.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중 우주(멀티버스)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드풀 2>

라이언 레이놀즈는 휴 잭맨의 출연을 위해 3년 이상의 시간 동안 그를 설득했다고. 휴 잭맨은 지난 8월이 되어서야 울버린을 연기하는 것에 동의, 라이언 레이놀즈와 <데드풀 3> 연출을 맡은 숀 레비 감독이 케빈 파이기에게 소식을 전해 회의를 가진 끝에 출연이 확정됐다고 한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휴 잭맨의 복귀에 대해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과 매일 세트장에 가는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10번째 울버린 역으로 돌아오게 된 휴 잭맨은 <데드풀 3> 속 울버린에 대해 "분명 더 화가 나고 심술궂게 행동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친구이기도 한 두 사람이 영화 속에서 어떤 케미스트리를 선보일지, 2024년 11월 8일 <데드풀 3> 개봉을 기다려보자. 

<데드풀 3> 로고 이미지

프로페서 X / 찰스 자비에 역 │패트릭 스튜어트 

영화 <로건>을 통해 엑스맨 시리즈에서 은퇴를 발표했던 또 다른 스타도 있다. 프로페서 X/찰스 자비에 역을 맡은 패트릭 스튜어트다. 2000년 개봉한 <엑스맨>에서 처음으로 자비에 교수를 연기한 그는 2017년 <로건>까지 휴 잭맨과 함께 17년간 엑스맨 시리즈 캐릭터를 연기하며 '실사 마블 캐릭터로서 가장 긴 경력'을 지닌 배우로 기네스 세계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다(해당 기록은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에 출연한 토비 맥과이어와 윌렘 대포에 의해 깨졌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은퇴 결정을 내린 밤에 대해 회고하였다. 그는 "(<로건> 개봉을 앞두고) 베를린에서 제임스 맨골드 감독과 휴 잭맨 셋이 모여 영화를 봤다. … 결코 이 영화보다 더 좋고 완벽하며, 아름다운 방식으로 찰스 자비에에게 안녕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 휴에게 '나도 끝났어, 모든 끝났어'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도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

하지만 앞서 말했듯, 멀티버스에선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지는 법. 지난 5월 개봉한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그는 지구-838 속 일루미나티의 리더 찰스 자비에로 출연해 팬들의 놀라움을 샀다. 한차례 먼저 공개된 예고편에서 드러난 그의 목소리는 전 세계 코믹스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엔 출연이 현명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라며 "알다시피 <엑스맨> 코믹스는 너무 방대해서 그가 돌아올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MCU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라고 앞으로의 출연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007 카지노로얄>
<007 스카이폴>

제임스 본드 역 │다니엘 크레이그

다니엘 크레이그는 2006년 <007 카지노로얄>부터 2021년 <007 노 타임 투 다이>까지 6대 제임스 본드로 등극해 총 15년간 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계약한 <007> 시리즈는 총 5편이 맞았으나 그는 <007 스펙터>에서 자신의 은퇴를 언급했다. 실제로 첫 캐스팅 단계부터 기존 제임스 본드와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골수팬들의 비판을 받아온 그. <007 카지노로얄> 개봉 후 논란은 사그라들었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을 넘어선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여기에 적지 않은 나이로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하면서 무릎과 어깨 근육들이 파열되어 수술을 거듭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악재가 꾸준하게 겹친 데다가 <007 스카이폴> 이후 내놓은 차기작 <007 스펙터>가 혹평을 들으면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인터뷰 중 "<007> 차기작에 출연하느니 손목을 그어버리겠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그 외에도 그는 "<007 스펙터>를 끝내고 이 정도면 제임스 본드로서는 할 만큼 다 했다, 라고 생각했다"라며 하차 및 역할에 은퇴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앞선 발언에 대해 실망과 비판이 거세지면서 그는 "(<007 스펙터>) 촬영 이후 예민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나온 발언"이라며 "후회한다"고 전했다. 결국 2018년 <007 노 타임 투 다이>로 복귀가 확정되고, 코로나 사태로 몇 번의 개봉이 미뤄진 끝에 2021년 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를 만날 수 있었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존 말코비치 되기>

카메론 디아즈

웃을 때 시원하게 찢어지는 큰 입, 또렷한 눈망울까지. <마스크>,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할리우드 스타 카메론 디아즈. <존 말코비치 되기>로 영국아카데미시상식(BAFTA)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미녀삼총사>, <카운슬러> 등 대중성과 연기력을 잡은 작품들로 제 필모를 쌓아왔다. 아쉽게도 2014년 영화 <애니>를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멈추고 201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할리우드의 화려한 삶을 뒤로한 채 가정과 개인 사업에 집중했다. 할리우드를 떠나고 "평화를 찾았다", "엄마로서 하루에 16시간 이상 세트장에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라며 평범한 삶을 추구했던 카메론 디아즈. 그랬던 그녀가 2022년, 8년 만의 복귀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넷플릭스의 코미디 액션 영화 <백 인 액션>을 통해서다.

<애니>

지난 6월, 제이미 폭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영상과 함께 "카메론,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녹음해둔 걸 지금은 돌이킬 수 없어", "우린 새로운 영화 -<백 인 액션>에 함께 할 것이다"라며 카메론 디아즈의 복귀를 알렸다. 영상 속 카메론 디아즈는 "(은퇴를 번복하는 게) 너무 불안하지만, 흥분되는 일"이라며 심경을 밝혔다. 이어 복귀에 대해 걱정하는 그녀에게 제이미 폭스는 슈퍼볼 스타 톰 브래디-그는 올 초 NFL에서 공식적인 은퇴 후 약 한 달 만에 번복했다-와 통화를 연결해 주며 조언을 얻게 했다. 카메론 디아즈가 은퇴 전 마지막 작품이었던 <애니>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바 있는 두 사람. 제이미 폭스와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을 맡은 신작 <백 인 액션>은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별나도 괜찮아> 등 미국 드라마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세스 고든이 연출을 맡는다. 시원한 웃음을 다시 볼 그날까지, 카메론 디아즈의 복귀에 축하와 기대를 보내본다. 


<다이하드> 시리즈 속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
<글래스>는 그의 최근 필모 중 가장 작품성 있는 영화로 뽑힌다.

브루스 윌리스

202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스크린에서 신작을 만날 수 없는 스타도 있다.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역을 통해 세계적인 액션 스타로 부상한 브루스 윌리스가 배우에서 은퇴했다. 거기에 그의 은퇴 사유가 실어증 판단 및 건강 악화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전 세계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의 가족들은 첫째 루머 윌리스의 SNS 계정을 통해 공동 성명을 게시하며 그의 은퇴를 알렸다. 

그들은 "가족으로서 우리는 사랑하는 브루스가 건강 문제를 겪고 있으며, 최근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실어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었다"라며 "여러 고려를 한 끝에 배우 경력에서 물러나려 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몇몇의 감독들은 최근 촬영장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영화를 찍는 도중 자신이 촬영장에 왜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어색한 연기력으로 그에게 올해 최악의 연기 부문 특별상을 수여했던 골든 라즈베리에선 수상을 철회하기도. 골든 라즈베리 재단 측은 "누군가의 건강 상태가 그 사람의 의사 결정과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경우, 상을 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밝혔다. 그의 은퇴 선언과 더불어 최근 건강 상태에 대한 많은 우려가 이어졌으나, 다행히도 최근 SNS 통해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근황이 공개되면서 아낌없는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수퍼 소닉 2>
<트루먼 쇼>

짐 캐리

<마스크>, <트루먼 쇼>, <이터널 선샤인> 등 코미디면 코미디, 멜로면 멜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천재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는 배우 짐 캐리. 어느덧 환갑의 나이에 다다른 그가 은퇴를 암시했다. 2016년 <버려진 자들의 땅> 이후 한동안 연기 활동을 쉬기도 했었으나, 이렇게 은퇴를 진지하게 시사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지난 4월, <수퍼 소닉 2>와 관련한 해외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난 은퇴하고 싶다. 상당히 진지하다"라며 은퇴를 언급했다. 이어, "천사가 금색 잉크로 쓴 시나리오를 가져온다면, 사람들이 그 영화를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계속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잠시 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충분히 했다"라는 말과 함께 진지한 표정으로 은퇴를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수퍼 소닉2> 이후 차기작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그의 은퇴 발언이 조명되면서 향후 행보에 영화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장고: 분노의 추적자>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어서 빨리 신작을 보고 싶은데, 동시에 신작을 보고 싶지 않게 만드는 모순적인 마음이 들게 하는 감독. 작품에 녹아든 개성처럼, 자신의 10번째 작품에 은퇴를 하겠다 선언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60세의 나이에 단 9편 만을 만들어놓고 어쩌면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 것일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은퇴는 충동적인 것이 아니다. 데뷔 초부터 꾸준히 자신의 은퇴를 말해왔기 때문이다. 1992년 <저수지의 개들>로 할리우드에 강렬한 인상을 새기며 데뷔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옛 영화들의 오마주,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폭력적인 이미지들로 B급 영화를 표방한 S급 영화들을 연출하며 영화계 이단아이자 거장으로 칭송받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는 맨슨 패밀리의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작품이다. 즉, 은퇴까지 단 한 편만이 남았다는 뜻. 쿠엔틴 타란티노는 여러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 감독들의 마지막 영화는 끔찍하다"라며 자신의 영화 커리어를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에서 끝내야 한다는 농담을 일삼기도 했다. 타란티노는 "새 아버지, 새 남편으로서 가정에 조금 더 기댈 때가 된 거 같다"라며 은퇴 후 작가로서 집필에 몰두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에 대해 여러 추측이 오고 가는 가운데, 유력했던 <스타 트렉>의 새 시리즈가 취소되면서 2019년 후속작 소식을 발표했던 <장고: 분노의 추적자> 2편이 마지막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려줬던 그이기에 공식적으로 어떤 영화가 그의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장식하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로건 럭키> 촬영 현장 속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데뷔 초부터 은퇴를 언급했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감독도 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다. 정확히 쿠엔틴 타란티노의 은퇴가 믿고 싶지 않은 편에 속한다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은퇴 발언은 믿음이 가지 않는 편에 속한다. 13살의 나이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고 최연소의 나이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도전적인 영화들에 시도를 감행해오던 그는 2010년대에 와서 "6년 후 영화계에서 은퇴하겠다", "2편만 찍고 은퇴할 것"이라는 등 자신의 은퇴 계획을 꾸준히 언급해왔다. 

<오션스 일레븐>
<로건 럭키>

2013년 그는 영화 <사이드 이펙트>를 마지막으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하며 영화계에서 물러났다. 물론 진짜 은퇴한 건 아니었다. 은퇴 중(?)에도 그는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의학 드라마 <더 닉>을 제작하여 호평을 받았다. 결국 그는 2017년, 자신의 장기를 살린 하이스트 무비 <로건 럭키>를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 채닝 테이텀, 아담 드라이버의 손을 잡고 복귀했다. 이어 아이폰으로 연출한 공포영화 <언세인>, 넷플릭스 영화 <높이 나는 새>를 내놓으면서 감독만의 도전 정신이 발하는 영화들을 선보이는 중이다. 현재 <매직 마이크> 3부작 <매직 마이크 라스트 댄스> 개봉을 앞두고 후반 작업 중에 있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