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생기면 다 오빠야’라는 말의 주인공이었던 여진구. 어린 나이임에도 섬세한 감정 연기와 완벽한 딕션, 동굴 목소리, 매력적인 마스크로 ‘진구오빠’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여진구가 이제는 정말 오빠가 되었다. 

<동감>(2022)

인생의 대부분을 배우로 산 그는 그 나이,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연기들을 선보이며 배우로써 성장해왔다. 판타지부터 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 그는 매번 색다른 얼굴을 보여주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하지만 일상적인 캐릭터와는 유독 연이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동감>은 2% 아쉬웠던 그의 필모그래피를 꽉 채워주는 영화로 20대 중반인 그가 지금 선보일 수 있는 청춘 로맨스 연기를 볼 수 있다. 

이제는 오빠가 된 여진구. 쉬지 않고 배우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그는 어떤 얼굴을 했을까. 오늘은 <동감>으로 필모그래피를 한 페이지 넓힌 기념으로, 여진구의 인생 작품 5편을 꼽아보고자 한다. 주관적으로 선정한 작품들이니 만약 생각하고 있는 캐릭터가 없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란다. 

동감

감독 서은영

출연 여진구, 조이현, 김혜윤, 나인우, 배인혁

개봉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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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자이언트>, <해를 품은 달>
드라마 <자이언트>(2010)

2005년 영화 <새드무비>에서 염정아의 아들 박휘찬 역으로 스크린 데뷔를 한 여진구는 150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을 뚫는 데 성공한다. 그의 아역 시절은 ‘본능적인 연기’로 요약할 수 있는데, 감정을 토해내듯 눈물을 쏟는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본능적으로 감정을 갖고 놀듯 다루는 여진구의 천재성에 그는 온갖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 아역 자리를 도맡기 시작했다. 그는 드라마 <자이언트>를 통해 ‘배우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게 되고, 인물에 완전히 푹 빠져 연기하는 재미를 알아간다. 실제로 여진구가 꼽은 자신의 대표작 중 가장 먼저 언급된 작품이 <자이언트>일정도.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그렇게 아역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여진구는 2012년, 중학교 3학년에 배우로서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사극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주인공 이훤(김수현)의 아역으로 극 초반에 등장하는데, 이때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쏟아낸다. 그 유명한 “잊어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라느냐. 미안하구나. 널 잊으려 하였으나 내가 널 잊지 못하였다”라는 대사도 여기서 나온 것. ‘잘생기면 다 오빠야’, ‘진구오빠’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훈훈한 외모와 귀여움과 카리스마를 오고가는 연기, 돋보이는 목소리까지 오빠로서의 자격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던 시기. 

자이언트

연출 유인식, 이창민

출연 이범수, 박진희, 황정음, 주상욱, 이덕화, 정보석, 이기영, 김수현, 남지현, 여진구, 윤유선, 이문식, 김서형, 김정현

방송 2010,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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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연출 김도훈, 이성준

출연 한가인, 김수현, 정일우, 진지희, 이태리, 서지희, 임시완, 안내상, 김영애, 전미선, 김소현, 남보라, 김유정, 여진구, 김민서, 양미경, 송재림, 송재희, 윤승아

방송 2012,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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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그리고 다음 해, 2013년에는 첫 영화 주연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를 통해 처음으로 타인의 아역이 아닌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당시 16살이던 여진구를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한 건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인 김윤석, 조진웅, 김성균 등과 한 스크린에서 호흡을 함께한 여진구는 대배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화이>에서 그는 킬러로 자라온 십대 청소년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절망, 좌절을 완벽하게 선보이며 대중은 물론 평단에도 인정을 받았다. 2013년 가장 주목 받은 신인 배우라면 단연 여진구를 꼽을 정도. 그해 그는 다수의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모두 휩쓸었으며 17세의 나이에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해 최연소 수상자로 등극했다. 

<화이>는 그가 그 나이에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연기력이었다. 본능적으로 순수하게 연기하던 그는 화이라는 캐릭터에 잡아먹히지 않고 완벽하게 화이가 되었다. 킬러 역할이다보니 사람을 죽이고, 친부를 살해하는 과격한 장면도 더러 존재하는데 십대였던 여진구가 소화하기엔 주변인이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보였다. 캐릭터에 깊이 몰입하는 여진구를 걱정해 주변에서는 심리 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했지만 정작 여진구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화이>는 그가 연기를 즐긴 마지막 작품이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감독 장준환

출연 김윤석, 여진구,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

개봉 201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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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이 된 남자>
드라마 <왕이 된 남자>(2019)

<화이>로 ‘더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게 된 여진구는 “더 좋은 걸 보여드려야 겠다는 압박이 <화이> 이후 오랫동안 저를 짓눌렀죠”라며 인터뷰에서 부담감을 토로한 바있다. 정점을 찍은 뒤 찾아온 슬럼프는 ‘본능적인 연기’를 방해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디테일에 신경쓰다 보니 그는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하는, 본능에 따르는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그는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일단 연기’하기 시작했다. 직진하다보면 무언가라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그는 지금껏 자신이 걸어온 길처럼 정직하고 올곧게 슬럼프와 직면했다. 

슬럼프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이 바로 드라마 <왕이 된 남자>였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드라마 버전으로 여진구는 이병헌이 연기했던 주인공 이헌과 하선을 맡았다. 이병헌이 워낙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터라 비교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했을 터지만, 그는 이병헌과는 다른, 자신만의 이헌과 하선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헌의 위태롭고 퇴폐적인 매력을 완벽하게 표현하면서 성인 연기자 여진구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왕이 된 남자

연출 김희원

출연 여진구, 이세영, 김상경, 권해효, 장광, 정혜영, 장영남, 윤종석, 시은, 오하늬, 윤경호, 서윤아, 신수연, 이규한, 민지아

방송 2019,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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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호텔 델루나>
드라마 <호텔 델루나>(2019)

<왕이 된 남자>로 슬럼프에 종지부를 찍으며 성인 연기자로 완벽하게 변신한 여진구는 <호텔 델루나>로 또한번 인생 캐릭터를 만난다. <호텔 델루나>는 엘리트 호텔리어 구찬성(여진구)이 귀신이 머물고 가는 호텔, 호텔 델루나의 지배인을 맡게 되면서 사장 장만월(이지은)과 함께 그곳을 운영하며 생기는 신비로운 사건들을 그린 작품이다. 

<호텔 델루나>에서 여진구는 구찬성의 인간적이면서도 능글맞은,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진실하고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회를 거듭할수록 애절하고 농익은 여진구의 연기는, 왜 여진구가 구찬성이어야만 했는지를 입증했다. 2019년, <왕이 된 남자>와 <호텔 델루나> 모두 시청률 10%를 넘기며 대박을 쳤고, 여진구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배우로서 한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호텔 델루나

연출 오충환 , 김정현

출연 아이유, 여진구, 조현철, 정동환, 신정근, 배해선, 피오, 이도현, 이태선, 서이숙, 강홍석, 강미나

방송 2019,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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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감>

구르고, 처절하게 우는 연기를 자주 했던 여진구가 드디어 이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걸맞는 ‘청춘 로맨스’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진구 오빠’의 일상적인 연애가 궁금했던 팬이라면 <동감>에 주목해보자. 실제로 여진구는 늘 청춘 로맨스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동감>에 출연하게 된 계기 역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중이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어쩌면 다를 수 있다고 입을 뗐다. 장르물이나 사극에 출연했을 때 사랑을 많이 받았단느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한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며 제 장르를 넓히고 싶어요. 끊임없이 두드리면 결국엔 칭찬받을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요”라고 답했다. 

<동감>은 유지태, 김하늘 주연의 2000년 작 동명의 영화가 원작으로 원작이 아련한 느낌이라면 <동감>은 조금 더 청춘 로맨스에 걸맞는 문법으로 가볍고 발랄한 느낌을 강조했다. 영화는 1999년 용(여진구)과 2022년의 무늬(조이현)가 우연히 오래된 무전기를 통해 소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95학번 용은 순수하게 사랑을 꿈꾸고, 21학번 무늬는 사랑이 어렵다. 두 사람의 풋풋한 로맨스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 특히 여진구의 순수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