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28번째 영화이자 최신작 <탑>은 근래 홍상수와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하고 있는 배우 권해효가 중심에 선 작품이다. 꽤 잘나가는 영화감독인 병수(권해효)가 강남의 모 건물 안 각기 다른 층에 살면서 벌어지는 과정이 선형적인 듯 모호하게 진행된다. 지난 10년간 배우 권해효가 홍상수 영화 속에서 맡아온 인물들을 총정리 했다.

감독 홍상수

출연 권해효, 이혜영, 송선미, 조윤희, 박미소

개봉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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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
<다른나라에서>
2012

홍상수와 권해효가 처음 협업한 영화는 딱 10년 전에 공개된 <다른나라에서>다.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직접 한국에 와 촬영해 화제를 모은 작품. 부안 모항해변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집의 딸인 원주(정유미)가 각기 다른 프랑스 여자 안느(이자벨 위페르)를 주인공 삼아 쓴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권해효가 연기한 종수는 안느가 유명 영화감독이자 남편을 빼앗긴 여자인 첫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에서 둘 다 등장하는데, 모두 만삭인 아내를 두고 안느에게 한눈을 파는 한심한 남자다. 첫 번째 종수는 우리가 베를린 놀이터에서 키스를 한 적이 있다며, 세 번째 종수는 "자긴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입니다"라며 치근덕댄다. 안느를 갯벌가로 데려와 수작을 걸다가 아내에게 걸려서 망신 당하는 대목은 <다른나라에서>의 웃음 포인트. 

다른나라에서

감독 홍상수

출연 이자벨 위페르, 유준상

개봉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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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화가 영수(김주혁)가 애인 민정(이유영)이 싸운 뒤 집을 나가자 그녀를 찾아다니는 얼개 안에서 펼쳐진다. 서울 연남동 등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민정과 혹은 민정을 담은 어떤 여자들이 영수가 아닌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과정이 이어진다. 재영(권해효)도 그중 하나다. 민정을 똑 닮은 동생과 카페에서 만난 재영은 (홍상수의 여느 남자들처럼) 술자리에서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 중에서 제일 예뻐요"라며 구애한다.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이 특정한 직업으로 분류되는 것과 달리 재영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흰머리가 많지만 "눈이 아직 힘 있어 보이는" 유부남일 뿐.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한낮에 만나는데 여자는 대뜸 "제 손해잖아요" 라며 그만 만나자고 통보하고, 나중에 재영은 여자가 다른 남자(유준상)와 함께 있는 걸 보고 시비를 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감독 홍상수

출연 김주혁, 이유영, 김의성, 권해효, 유준상

개봉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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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7

베를린과 강릉 두 도시에서 진행되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권해효는 강릉 파트에서 등장한다. 홀로 영화를 보는 배우 영희(김민희)의 얼굴로 시작하는 두 번째 장은 극장에서 나온 영희가 극장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선배 천우(권해효)를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보자마자 대뜸 "너 왜 모른 척하니?"라고 운을 떼는 (그래서 왠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설정이 떠오르기도 하는) 천우는 왜 사람을 피하냐며 말하곤, 어색해 하는 게 역력한 영희에게 "유부남하고 바람피워서 잠수 타다가 외국 나"갔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얘기를 꺼내며 선배랍시고 무책임하고 무례한 언사로 사람을 몰아붙인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땐 말수가 적어서 그나마 좀 낫긴 하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개봉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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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완
<그 후>
2017

촬영 소식도 들리지 않은 채 불쑥 칸 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작으로 공개됐던 <그 후>는 그간 홍상수 영화에서 조연으로만 활약했던 권해효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권해효가 맡은 봉완은 작은 출판사 사장. 그는 근래 회사 직원인 젊은 여자(김새벽)와 연애하다가 헤어졌고, 그 자리에 아름(김민희)이 취직한다. 영화 초반에 봉완의 출근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따라가면서 그의 감정에 집중하던 영화는 아름이 출판사에 오게 되면서 무게 중심을 아름에게도 나누고, 봉완의 아내가 출판사에 찾아와 아름을 그의 애인인 줄 착하고 싸우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후>는 권해효의 실제 아내인 배우 조윤희가 홍상수와 처음 작업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 후

감독 홍상수

출연 권해효

개봉 201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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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강변호텔>
2018

앞서 소개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권해효와 유준상은 술집에서 여자를 두고 싸울 뻔하다가 동창인 걸 알고 금세 친해지는 상황을 구현한 바 있다. 권해효와 함께 홍상수 영화에서 조연을 맡아오던 기주봉이 처음 주연을 맡은 <강변호텔>에서 두 배우는 주인공인 시인 영환(기주봉)의 두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 역을 맡았다. 경수와 병수는 서로 형제이긴 하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닌 듯하다. 그들 역시 평소 왕래가 없다가 아버지인 영환이 호텔로 불러내자 어거지로 모인 것처럼 보인다. 동생 병수가 "제 영화를 좀 기다리는 것 같아" 하며 거들먹대자 경수는 대뜸 "병신 건방지게~ 웃기고 있어" 비아냥댄다. 

강변호텔

감독 홍상수

출연 기주봉

개봉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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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
<도망친 여자>
2020

제목의 '도망친 여자'는 김민희가 연기한 감희다. 영화에서 감희는 세 명의 친구 영순(서영화),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난다. 영순과 수영은 감희가 부러 그들의 집에 방문한 것과 달리, 우진은 영화 보러 간 극장 내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극장에서 일하는 우진과의 만남에서 감희는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에서 인물이 "너구나"라고 반응하는 사람은 대개 반갑지 않은 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사이 불편한 관계의 이유가 드러난다. 권해효가 연기한 정 선생은 우진의 남편이고, 감희는 정 선생의 연인이었다. 영화 러닝타임을 10분 정도 앞두고, 감희는 담배 피우는 곳에서 강연하러 온 정 선생을 우연히 만난다. 아까보다 더한 어색함. 감희는 여기저기 강연하면서 유명해진 그에게 "말을 많이 하시던데요. 말을 그렇게 많이 하니까 나중엔 그게 진심인가 의심이 들었어요. 정말 계속 그렇게 말하시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만 말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제"라고 말한다.

도망친 여자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권해효

개봉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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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당신얼굴 앞에서>
2021

권해효는 홍상수와 작업한 최근 3개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소설가의 영화> <탑>에서 모두 영화감독 역을 맡았다. 이전에 그가 영화감독을 연기한 건 <다른나라에서> 속 종수가 유일하다. 오랜 미국생활을 접고 동생 정옥(조윤희)집에 방문한 배우 상옥(이혜영)은 동생과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로 자신과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 감독 재원(권해효)을 만나러 간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술집에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 끌린다는 걸 확인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두 사람은 다음날 여행을 가기로 하고 헤어지지만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들의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건 재원의 결정. 홍상수 영화 속 권해효 연기 중 단연 가장 훌륭하다.

당신얼굴 앞에서

감독 홍상수

출연 이혜영, 조윤희, 권해효

개봉 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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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소설가의 영화>
2022

<당신얼굴 앞에서>의 바로 다음 작품이기 때문일까. <소설가의 영화> 속 준희(이혜영)과 효진(권해효)의 관계는 왠지 전작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효진 역시 감독이고, 어떠한 이유로 준희를 피하다가 아내의 부름에 못 이겨 다가와선 내내 뻘쭘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코로나19 시대에 촬영한 걸 대번에 알 수 있는 마스크를 모두 껴서 표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어색한 공기는 속일 수가 없다. 공원으로 나와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 배우 길수(김민희)를 만나 효진이 일 좀 하라고 다그치자 옆에서 보던 준희는 참다못해 "아니 뭐가 아까워요. 이 분이 무슨 어린애예요. 자기 인생을 갖고 자기가 판단하면서 사는 거죠"라며 역성을 낸다. <소설가의 영화> 전반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가 극에 달하는 순간. 

소설가의 영화

감독 홍상수

출연 이혜영, 김민희

개봉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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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