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하반기에도 수많은 영화인들이 멋진 작품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들이 지나온 생전 활약상을 돌이켜보며 그들을 추모한다.


볼프강 피터슨
Wolfgang Petersen
1941.03.14 ~ 2022.08.12

<특전 U보트>

독일 감독 볼프강 피터슨은 60년대 중반 TV에서 경력을 시작해 '타트오르트' 시리즈 등 드라마와 영화를 연출하며 경력을 쌓은 후 1974년 극장용 영화 <우리 둘 중 하나>를 발표했다. 1981년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특전 U보트>로 잠수함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릴러의 감각을 자랑해 흥행은 물론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에 후보에 오르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특전 U보트>는 현재까지도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독일에서 영어로 제작된 SF 판타지 <네버엔딩 스토리>(1984)의 성공에 힘입어  피터슨은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이듬해 첫 할리우드 영화 <에너미 마인>을 연출했다.

<트로이>

 <에너미 마인>과 <가면의 정사>(1991) 역시 반응은 미미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정치 스릴러 <사선에서>(1993)가 시장과 평단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할리우드 커리어에 반전을 줬고, <사선에서> 에 이어 더스틴 호프만의 <아웃브레이크>(1995)과 해리슨 포드의 <에어 포스 원>(1997) 등 중년 베테랑 배우를 내세운 액션/스릴러가 연달아 성공하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흥행 감독으로 군림했다. 조지 클루니와 마크 월버그의 <퍼펙트 스톰>(2000)과 브래드 피트와 에릭 바나의 <트로이>(2004)는 2000년대 들어 젊은 배우를 페어로 내세운 대규모 액션영화로 선회한 전략이 흥행에 적중한 사례였다. 실패작 <포세이돈>(2006) 이후 오랫동안 연출작을 내놓지 않던 피터슨은 <특전 U보트> 이후 25년 만의 독일어 영화 <뱅크 어택: 은행습격사건>(2016)을 만들었고 결국 유작으로 남게 됐다.


장 뤽 고다르
Jean-Luc Godard
1930.12.03 ~ 2022.09.13

네멋대로 해라

프랑스 영화 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활동하던 장 뤽 고다르는 1960년 첫 장편영화 <네멋대로 해라>로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로 활약했다. 평론가 시절 이전까지 그리 높이 평가 받지 않던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를 추켜세웠던 그는 <비브르 사 비>(1962), <경멸>(1963), <알파빌>(1965), <미치광이 삐에로>(1965), <주말>(1967) 등 1년에 많게는 3편씩, 장르와 형식에 완전히 자유로운 신작들을 내놓으면서 현대 영화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프랑스 68 혁명 이후엔 장 피에르 고랭과 함께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결성해 마오주의에 입각한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고, 마오이스트에 돌아선 70년대 중반엔 스위스 감독(이자 훗날 아내가 되는) 안 마리 미에빌과 프로덕션 '소니마주'를 설립해 실험영화 제작을 이어갔다. 

이미지 북

70년대까지 정치적인 비디오 작업에 몰두했던 고다르는 80년대 시작과 함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1980)를 내놓으며 극영화로 돌아와 <열정>(1982), <미녀갱 카르멘>(1983), <마리아에게 경배를>(1985), <리어 왕>(1987) 등 역사상 고다르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장편 외에도 수많은 단편들을 내놓던 그는 1998년 10년 전부터 작업해오던 비디오 프로젝트 <영화의 역사(들)>을 발표해 세상에 등장한 지 100년이 된 영화라는 예술을 사유하는 전무후무한 시선을 보여줬다. 세상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영상 푸티지를 적극 활용한 신작 <필름 소셜리즘>(2010), <언어와의 작별>(2014), <이미지 북>(2018)를 내놓았던 고다르는 지난 가을 돌연 안락사를 선택해 영화를 매개로 그토록 치열하게 사유했던 세상에 작별인사를 건넸다.  


장 마리 스트로브
Jean-Marie Straub
1933.01.08 ~ 2022.11.20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

당대 가장 비타협적인 영화감독으로 손꼽혔던 장 마리 스트로브는 20대 초반 만난 아내 다니엘 위예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창작 활동을 이어온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아벨 강스, 장 르누아르, 로베르 브레송, 자크 리베트 등의 감독과 교류하던 영화광이었던 스트로브는 알제리 전쟁 징집 통보를 받고 독일로 망명했고 1963년 처음 위예와 함께 단편 <마쇼르카 머프>를 연출하면서 공동 창작을 시작했다. 독일로 건너가 작곡가 바흐에 대해 연구했던 스트로브는 첫 장편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1968)를 내놓고 이후 위예-스트로브 듀오는 2~3년에 장편 하나씩 만들며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 왔다. 

코뮤니스텐

마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카,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작가들의 텍스트를 빌려 왔지만 그들의 문장은 서사가 아닌 영화 속 배우들이 암송하는 텍스트 그 자체로 전달됐고, 이런 방향은 위예-스트로브의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스트로브가 제작과 촬영을, 위예가 편집 등 후반작업을 분담한 걸로 알려져 있다. 다니엘 위예가 일흔 살이 되던 200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스트로브는 홀로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장편 <코뮤니스텐>(2013)을 비롯한 수많은 단편들을 발표해왔다. 


최양일
崔洋一
1949.07.06 ~ 2022.11.27

피와 뼈

최양일 감독은 나가노 현에서 재일 조선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70년대 초 TV에서 일을 시작해, 오시마 나기사(훗날 그의 유작 <고하토>에 배우로도 참여했다)의 그 유명한 영화 <감각의 제국>(1976)을 비롯한 수많은 극장용/TV 영화에서 조연출로 활약했다. TV 드라마 PD를 거쳐 처음 발표한 영화 입봉작은 우치다 유야, 코이즈미 쿄코 등 가수들이 출연한 <10층의 모기>(1983).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고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지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1983년 영화 베스트 리스트에 9위에 선정되는 등 호평 받았다. 이후 마초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하드보일드 액션영화에 두각을 드러내온 최양일은 재일 한국인 양석일의 자전적인 소설 <택시 광조곡>을 각색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를 발표해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 드러냈고, 그해 일본 최고의 영화로 두루 손꼽혔다.

한국 관객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은 2004년 작 <피와 뼈>일 것이다. 양석일의 소설을 다시 한번 원작으로 삼아, 일본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자 감독 기타노 다케시를 캐스팅 해 재일 한국인 김준평의 일대기를 그렸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태도와 성미로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은 폭압적인 아버지 상을 보여준 기타노 다케시의 명연이 한국과 일본 양국의 관객들을 두루 사로잡았다. 2007년엔 지진희, 강성연, 문성근 등을 캐스팅 한 '한국의' 하드보일드 영화 <수>를 만들었는데 흥행이나 비평 면에서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오시마 나기사, 후카사쿠 킨지, 야마다 요지 등을 이어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일본영화 감독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안젤로 바달라멘티
Angelo Badalamenti
1937.03.22 ~ 2022.12.11

블루 벨벳

안젤로 바달라멘티는 70년대부터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했지만 (초기엔 '앤디 바달'이라는 이름을 썼다) 오랫동안 무명에 가까웠다. 그가 주목 받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데이비드 린치 감독과의 협업부터다. 본래는 <블루 벨벳>의 주연 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보컬을 코치 하는 역할로 기용됐는데, 린치가 가사를 쓴 주제가 'Mysteries of Love'를 작곡하게 되고, 결국 영화음악 감독까지 맡게 된 것. "쇼스타코비치 같으면서도 어둡고 무섭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달라는 린치의 청에 바달라멘티는 특유의 음침하고 음울한 무드가 묻어나는 곡조들로 화답했고, 그렇게 그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됐다. 이후 린치는 <광란의 사랑>(1990)부터 (현재까지 마지막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2006)에 이르는 영화, 그리고 드라마 '트윈 픽스' 시리즈까지 모든 작품을 바달라멘티에게 맡기면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감독-음악감독의 파트너십이 이루어졌다.

트윈 픽스

바달라멘티의 영화음악 작업은 비단 린치와의 협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블루 벨벳> 이후부터 영화음악 오퍼가 급격히 늘었고 폴 슈레이더, 조엘 슈마허, 제인 캠피온, 대니 보일 등의 감독들이 그에게 오리지널 스코어를 맡겼다. 린치의 걸작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가 발표된 직후인 2002년에만 6편의 작품에 그의 선율이 새겨졌다. '트윈 픽스'의 주제가를 부른 줄리 크루즈는 물론 폴 매카트니, 펫 샵 보이즈, 더스티 스프링필드, 마리안느 페이스풀 등 수많은 뮤지션들과 작업도 병행했고, 1992년엔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오프닝 테마를 작곡하기도 했다. 메인 테마만을 작곡한 <비트윈 월즈>(2008)를 제외하면, '트윈 픽스' 세 번째 시리즈 <트윈 픽스: 더 리턴>(2007)이 바달라멘티의 마지막 오리지널 스코어 작업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