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랑 영화 <타이타닉>(1997)이 4K 3D 버전으로 재개봉 한다. 개봉 전부터 연거푸 늘어나는 제작비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고, 공개 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끈 <타이타닉>이기에 작품을 둘러싼 뒷 이야기들이 많다.
<터미네이터 2>(1991)를 완성한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 호의 비극>(1958)을 보고 <타이타닉>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5년 동안 타이타닉에 대해 연구했다.
<타이타닉 호의 비극>
카메론은 1995년 타이타닉이 난파되는 걸 촬영한 영상으로 ‘20세기 폭스’를 설득하여 400만 달러를 선 투자 받을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았고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만 있었고, 스튜디오의 임원인 피터 체닌은 카메론의 명성과 피치만 보고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와 같은 결정은 폭스의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타이타닉> 엑스트라 배우들
매번 새로운 엑스트라를 고용하여 의상을 맞추고 1912년의 양식을 지도하는 것보다 전체 제작 기간 동안 영화에 함께할 150명의 ‘중요 엑스트라'를 고용했다. 영화의 안무가인 린 호크니는 ‘타이타닉 에티켓: 시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제작하여 의상실에서 계속 상영했다. 실제 타이타닉에 12번을 방문한 제임스 카메론은 엑스트라들에게 타이타닉 승객의 이름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타이타닉> 촬영 현장
잠수함 외부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제임스 카메론의 동생 마이크 카메론과 파나비전은 400기압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심해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했다.
<타이타닉>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피터 라몬트
카메론은 <에이리언>(1986)과 <트루 라이즈>(1994)에서 함께 일했지만 당시 은퇴 했던 미술감독 피터 라몬트를 다시 불러들였고, 라몬트는 <타이타닉>으로 오스카 미술상을 수상했다.
타이타닉 세트는 우현만 완성됐다. 사우스햄튼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가 찍힌 장면은 의상과 간판을 거꾸로 제작하고 후반작업에서 이미지를 뒤집어 완성할 수 있었다.
<타이타닉> 세트
1997년의 사람들의 키가 1912년보다 조금 더 컸기 때문에 영화 속 계단은 1912년 당시의 것보다 크게 제작됐다.
1912년을배경으로분량, 즉현재장면과오프닝및엔딩크레딧을제외한러닝타임은총 2시간 40분이다. 이는타이타닉이침몰하는데에걸린시간과일치한다. 빙산과의충돌은 37초동안지속된것으로알려졌는데, 영화에서도이시간에맞춰편집됐다.
<타이타닉> 로즈
로즈 역을 맡고 싶었던 케이트 윈슬렛은 영국에서 제임스 카메론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고, L.A에 가서도 계속 전화를 걸었다. 마침내 카메론이 윈슬렛에게 로즈 역을 맡기기로 했을 때, 윈슬렛은 “로즈로부터"라는 문구와 함께 장미 한 송이를 보냈다. 그러나 촬영은 녹록지 않았다. 수중 장면에서는 잠수복 착용이 허용되지 않은 배우여서 촬영 중에 저체온증에 걸려 촬영을 그만둘 뻔하기도 했다. 윈슬렛은 <아바타 2>와 <아바타 3>에 로날 역을 맡아 다시 카메론과 작업했다.
케이트 윈슬렛과 제임스 카메론
카메론이 잭 역으로 가장 먼저 원했던 배우는 리버 피닉스였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될 무렵 피닉스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제작사가 원한 건 매튜 맥커너히였지만, 당시 잭과 딱 맞는 나이가 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 했다. 조니 뎁도 제안 받았지만 거절했다. 크리스찬 베일도 오디션을 봤지만, 카메론은 두 영국 배우가 두 미국인 주인공을 연기하는 걸 원치 않았다. 아버지가 타이타닉을 연구한 역사학자였던 폴 러드도 오디션에 참가했다.
리버 피닉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처음 촬영한 장면은 잭이 로즈의 누드를 그리는 장면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두 배우는 <타이타닉>을 촬영하며 친구가 됐고, <타이타닉>이 개봉하고 11년이 지난 2008년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파탄 직전의 부부를 연기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영화후반부에로즈가입는쉬폰드레스는젖은상태에서도멋지게보이도록디자인됐다. 의상디자이너데보라 L. 스콧은로즈의드레스만 24벌을제작했다. 침몰장면에서로즈가더취약해보이게하고자물위에서찍었을땐평상시의두배에달하는사이즈의의상을입혔다.
칼이 테이블을 엎는 아침 식사 장면은 배우 빌리 제인의 애드리브고, 윈슬렛의 반응이 연기가 아니었다는 소문이 수년간 돌았다. 영화 개봉 25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제인은 윈슬렛이 유리그릇이 날아다니는 상황을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건 위험하고 부적절한 짓이라며, 미리 테이블을 엎기로 정해 총 6번 정도 찍었다고 해명했다.
로즈와 칼
로즈가 잭을 만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장면은 카메론의 요청에 따라 두 배우가 즉흥 연기로 소화했다. 또한 마지막 침몰 장면에서 "여기가 우리 처음 만난 곳이에요”라는 가슴 찡한 대사를 만든 윈슬렛의 공을 높이 사며, 로즈가 머리핀으로 칼을 찌르는 각본 대신 칼의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엔진 마스터가 "전속력!”이라고 말하자 뒤에서 누군가 "전속력!"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론의 목소리다. 엔진 룸의 스턴트맨은 공간을 커 보이게 하기 위해 150cm 대의 스턴트맨만 기용했다. 전진 명령을 내리고 보일러실로 내려가는 신, 실제로는 보일러가 3개 정도밖에 없는 세트였지만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여 크고 긴 방처럼 보이게 했다. 미술감독 피터 라몬트는 카메론과의 전작 <에이리언> 속 술라코 호 선상 장면에서 4개의 수면실을 12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 바 있다.
잭이 외치는 "내가 세상의 왕이야!"는 디카프리오의 애드립이다. 카메론은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이 대사로 소감을 마쳤다.
잭은 자신이 위스콘신 주 치파와 폭포 출신이라고 소개한다. 카메론은 나이아가라 폭포에 인접한 캐나다 온타리오의 치파와라는 마을에서 자랐다.
윈슬렛과 디카프리오 모두 3등석 파티 장면을 위해 폴카 춤을 배웠다.
로즈와 잭이 배의 뱃머리에 섰을 때의 석양은 CG가 아니다. 자연광을 포착하기 위해 해변가에 세트를 짓고, 뱃머리에서 키스하는 장면만 8일 동안 찍었다. 이 순간을 찍을 수 있는 건 하루에 몇 분밖에 안 되기에 매번 문제가 발생했다. 마지막날마저 하늘이 흐려서 더 좋은 걸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차, 갑자기 하늘이 맑아져서 그토록 기다리던 완벽한 일몰을 잡아낼 수 있었다. CG의 신봉자인 카메론조차도 그 순간 카메라에 포착된 풍경은 CG로 재현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말했다.
잭이 ‘Come Josephine in My Flying Machine’를 부를 때 로즈가 이미 들어봤던 것처럼 미소 짓는데, 이는 3등석에서 춤추기 난 뒤 두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찍었(지만 나중에 삭제됐)기 때문이다.
잭이 로즈를 그리기 전 "침대 위에... 소파에 누워요”라고 말합니다. 시나리오엔 “소파에 누워요”인 걸 디카프리오가 실수했지만, 카메론은 이걸 더 마음에 들어해서 OK컷이 됐다. 로즈를 스케치 하는 손은 디카프리오가 아닌 카메론의 손이다. 왼손잡이인 카메론의 손을 후반작업에서 미러링 해서 찍었다.
제작비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스튜디오는 가능한 장면들을 빼려고 했다. 로즈가 엄마와 차를 마시는 일등석 라운지는 세트 제작 비용이 너무 비쌌지만, 홍수 장면을 위해 실제 크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미니어처가 필요했기에, 배우들이 그린스크린에서 라운지 신을 찍고, CG로 미니어처에 배경을 입혔다.
카메론은 출입구를 통해 물벽이 터지는 장면을 처음 촬영할 때 복도 세트에 쏟아 부은 15만 리터 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그 세 배의 양을 요구했고, 늘어난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세트를 다시 지어야 했다.
시나리오에는 잭, 파브리지오, 토미가 잠긴 문을 부수고 난 후 로즈가 잔해를 뚫고 들어가 승무원을 위협해 승객들을 갑판으로 안내하라고 명령한다. 촬영하면서 작은 역할인 토미 역의 제이슨 배리의 연기를 인상적으로 본 카메론은 그에게 보다 강렬한 장면을 주고자 윈슬렛의 양해를 구해 승무원을 위협하는 대사를 로즈 대신 토미가 하도록 수정했다.
로즈가 처음 물에 뛰어들었을 때 숨을 헐떡이는 장면은 실제로 물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윈슬렛이 반응한 그대로가 찍힌 것이다.
경찰관 역의 조니 필립스는 총을 휘두르며 "물러서지 않으면 개처럼 쏴버릴 거야!"라고 애드립을 선보였는데, 촬영이 끝나고 카메론이 그에게 멋지다며 다시 해보라고 하자 필립스는 정신이 팔려 자기가 뭐라고 말했는지 조차 몰랐다고 대답했다.
영화 속 ‘중요 엑스트라’ 중 상당수는 실제 생존자의 특징을 따랐다. 두 명의 여자아이를 구명보트에 태우고 남자가 "엄마 손 꼭 잡고 착하게 말 잘 들어야 해”라 말하는 건 실제 한 생존자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다.
방에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침대에서 껴안고 있는 노부부는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의 소유주인 로잘리 아이다 스트라우스와 이시도르 스트라우스다. 아이다는 구명보트에 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함께 살았으니 함께 죽어야 한다"며 남편과 함께 남기 위해 거절했다. 이 순간을 묘사하는 장면도 촬영되었지만 최종 버전에서는 편집됐다.
대계단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은 세트와 가구가 모두 파괴될 수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존 제이콥 애스터 역을 맡은 에릭 브레이든은 리허설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살면서 이 장면을 준비할 때만큼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침몰 후 장면은 130만 리터의 수조에서 촬영했고, 물에 노출되면 어는 파우더를 사용해 얼어붙은 시체 분장을 했다.
엑스트라들이 뛰어드는 바다는 안전하게 뛰어들 수 있는 위치를 정확히 표시했고, 아주 작은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심이 1m가 채 되지 않았다. 뛰어든 후 얕은 부분으로 헤엄쳐 가서 웅크린 자세로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연기했다.
침몰 후 로즈가 떠 있던 나무 조각은 사고 당시 실제 유물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캐나다 핼리팩스에 있는 대서양 해양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구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크게 제작됐다.
스토리보드엔 로즈가 카르파티아 호에서 내려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30초 짜리 장면을 위해 천여 명의 엑스트라를 뉴욕으로 불러야 하는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
영화 마지막, 로즈가 그랜드 계단에서 잭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계에 표시된 시간은 배가 침몰한 시각인 오전 2시 20분과 동일하다.
카메론은 <타이타닉> 촬영장에서 다섯 번째 부인 수지 에이미스를 만났다. 당시 그는 린다 해밀턴과 별거 중이었다.
<타이타닉> 수지 에이미스
원래 카메론은 엔야에게 영화음악을 맡기고 싶었다. 엔야의 음악으로 대략적인 편집본을 만들기도 했는데, 엔야가 거절해자 전작 <에이리언>의 음악을 만든 제임스 호너를 고용해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었다. 호너는 <에이리언> 후반 작업 과정에서 카메론과의 갈등이 너무 심해 다시는 함께 작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레이브하트>(1995)의 음악에 감명 받은 카메론은 직접 호너에게 연락을 취했다. 호너는 가편집본을 처음 보고 집에 돌아가 20분 만에 모든 테마를 작곡했다고.
카메론은 영화에 노래를 넣으면 톤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에도 노래를 넣지 않겠다 고집했다. 호너는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영화를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사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영화 테마들의 멜로디를 사용해 가수 셀린 디온과 ‘My Heart Will Go On’을 만들었다. 당시 디온은 영화 주제가를 부르길 원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설득 끝에 단 한 번으로 녹음을 마쳤다.
막대한 예산 초과로 인해 20세기 폭스 경영진은 3시간 짜리 러닝타임에서 1시간을 잘라낼 것을 제안했다. 긴 영화가 오스카 수상 가능성을 높이긴 해도 시간이 길면 상영 횟수가 줄어들어 수익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요지였다. 카메론의 반응은 이렇다. “내 영화를 자르려고? 날 해고해야 할 걸! 날 해고하고 싶다고? 날 죽여야 할 걸!”
미국 개봉 4개월 전인 1997년 7월 14일, 미니애폴리스의 한 극장에서 <타이타닉>이 깜짝 상영됐다. 조디 포스터의 <컨택트>(1997)를 본 관객들에게 대상으로 한 시사는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위대한 유산>(1998)의 편집본을 보게 될 거라고 공지됐다. 처음 10분 동안은 극장 안이 조용했는데, 영화가 1912년 장면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설문조사와 인터뷰, 심지어 로비와 화장실에 요원을 배치해 관객들의 대화를 엿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응을 들었다.
본래 <타이타닉>의 개봉일은 1997년 7월 25일이었다. 같은 날에 개봉하려던 <에어 포스 원>의 배우 해리슨 포드는 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쳐스에 개봉일을 미뤄 달라고 요구했고, 포드와 여러 흥행작을 작업한 회사는 그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개봉일을 변경했다. 그 결과 <에어 포스 원>과 <타이타닉>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타이타닉>은 20세기에 제작된 영화 중 가장 높은 예산인 2억 달러가 투입됐다. 실제 타이타닉 호의 가격보다 비싼 금액이었다. 개봉 첫날인 1997년 12월 19일부터 1998년 4월 3일까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5주 연속 1위를 기록한 <타이타닉>은 역사상 최초로 10억 달러의 수익을 넘겼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18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당시 역대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고, 카메론의 다음 영화 <아바타>(2009) 전까지 그 왕좌를 지켰다. 2023년 현재까지 <타이타닉>이 벌어들인 수익은 22억 달러에 달한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밀비나 딘은 시사회에 초대됐지만 타이타닉을 소재로 한 영화 <기억의 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통스러웠다며 거절했다. 물었지만, <타이타닉 호의 비극>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며 거절했다. 딘은 2009년 5월 세상을 떠났다.
<타이타닉>은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14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면서 최다 기록을 세웠고, <벤허>에 이어 두 번째로 11개 상을 받은 영화가 됐다. 제작, 감독, 각본, 편집을 모두 한 사람(제임스 카메론)이 담당한 첫 작품상 영화이기도 하다.
나이든로즈를연기한배우글로리아스튜어트는 <타이타닉>에참여한이들중유일하게 1912년을실제로살았던사람이었다. 유일하게 1912년에실제로살았던사람이었다. 촬영당시 86세였던스튜어트는 100세의로즈역을위해분장까지해야했고, 이는썩좋지못한경험이었다고한다.한편 87세나이로오스카여우조연상후보에올라당시역대최고령오스카상후보로지명된이의기록을가졌다. 스튜어트는 2010년 100세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