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글자 그대로 <더 글로리>판이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회심의 복수를 선사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지난해 12월에 파트 1을, 이번 2023년 3월에 파트 2를 공개했다. 김은숙 작가의 '말맛'나는 각본에 힘을 더한 건 배우들의 연기인데, 특히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게 하는 박연진(임지연) 패거리의 연기가 시청자들을 흔들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존재감을 남긴 임지연, 박성훈, 정성일, 김히어라, 차주영, 김건우의 영화 출연작들을 소개한다.
임지연
이번 드라마의 최고 반전이자 수혜자는 임지연이 아닐까. 2011년 데뷔해 어느새 활동한지 10년이 넘은 배우 임지연은, 사실 그동안 연기력에서 다소 미묘한 평가를 받았다. 자신만의 고혹적이면서 순수한 이미지를 앞세워 첫 상업 영화 <인간중독>부터 종가흔 역으로 주연을 맡았지만, 당시엔 혹평이 더 많았다. <간신>에선 단희로 출연, 수위 높은 노출 연기까지 감수했으나 이유영, 차지연 등 상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같은 시기에 촬영한 코미디 영화 <럭키>의 스토리상 중요한 키를 쥔 은주 또한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임지연은 작품을 꾸준히 맡으면서 연기력을 갈고닦았고, 4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속칭 '배우'인 영미를 찰떡같이 소화하며 단번에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가장 근래 출연한 <유체이탈자>에선 지난 영화들과 완전히 다른, 약혼자 강이안(윤계상)을 찾는 문진아의 감정적인 면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더 글로리>에서의 호평까지, 이 작품들의 궤적을 따라가면 그의 연기력 '레벨업'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유체이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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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재근
출연 윤계상, 박용우, 임지연
개봉 2021.11.24.
정성일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을 만나며 삶의 다른 방향을 걷게 된 하도영은 정성일 배우가 연기했다. 그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며 대학로 관객들에게 '아이돌'로 등극했다. 아니나다를까, 송중기 및 미남 배우들의 등용문으로 알려진 <쌍화점>에서 건룡위의 일원으로 출연한 바 있다. 2010년 <페어 러브>(재웅 역)를 제외하면 이름 없는 단역이 더 많았는데, 2017년 <반드시 잡는다>에서 성동일이 연기한 평달의 젊은 시절로 출연한 것이 눈에 띈다. 2022년 <말임씨를 부탁해> <늑대 사냥>에서 우정 출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비밀의 숲 2> 박상무가 대중에게 가장 익숙할 텐데, 김은숙 작가도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정성일을 보고 하도영 역으로 찜했다고 한다.

- 비밀의 숲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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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박현석
출연 조승우, 배두나, 최무성, 전혜진, 윤세아, 이준혁, 박성근, 전배수, 최재웅, 송지호, 김영재, 이해영, 박지연, 박미현, 배제기, 김범수, 정성일, 이가섭, 장률
방송 2020, tvN
박성훈
이번 드라마에서 '천하의 개*놈'으로 등극한 전재준은 박성훈 배우가 맡았다. 박성훈 또한 정성일과 함께 <쌍화점>의 건룡위 일원으로 출연했다(더불어 그에게는 데뷔작이다). 얼마 전 종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맏며느리 모현민으로 사랑받은 박지현과 <곤지암>에서 호흡을 맞췄다. 스트리머들의 파운드 푸티지 컨셉 영화 <곤지암>은 몇몇 인물을 제외하면 배우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박성훈 또한 성훈으로 출연했다. 캐릭터 모두 스트리머라서 카메라를 메고 촬영한 영화지만, 박성훈은 극중 촬영 담당이라서 더 많은 장비를 들고 다니며 특히 혼자 남겨져 찍은 장면이 많았다고.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과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로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며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세종(한석규)의 아들 이향으로 출연했다.

- 곤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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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범식
출연 위하준, 박지현, 오아연, 문예원, 박성훈, 이승욱, 유제윤
개봉 2018.03.28.
김히어라
막장 오브 막장인 박연진 패거리 중에도 여러모로 돋보이는 막장(!) 이사라를 연기한 김히어라는 뮤지컬 배우로 유명하다. 2006년 단편 영화 <내 가슴 속의 락앤롤>을 빼면 영화 출연작은 아쉽게도 없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배우인데도 매체에 얼굴을 비춘 시간이 오래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호평을 받은 화제작에서 자주 얼굴을 비췄다. <괴물>에선 20년 전 최초 피해자 방주선 역을 맡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에선 간 이식 환자 안성주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탈북주민이자 강도상해치사죄 피고인 계향심으로 특별출연했다. 딸 때문에 도주했던 과거를 담담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절절한 모성애를 표현했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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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유인식
출연 박은빈, 강태오, 강기영, 전배수, 백지원, 주현영, 하윤경, 주종혁, 임성재, 진경
방송 2022, ENA
차주영
가해자 중 한 명이지만, '친구들'의 멸시를 당하는 최혜정을 연기한 차주영은 데뷔 이래 아직 영화 출연작이 없다. 그렇지만 드라마 출연작이 상당히 화려한 편. 첫 작품부터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치즈인더트랩>에서 명실공히 교내 퀸카 남주연으로 등장했다. '청순미녀'하면 떠오르는 검은 생머리에 질투심에 불타 갈등을 조장하는 모습이 최혜정과는 또 다른 존재감을 남겼다. 본인피셜로 가장 연기가 편한 건 <어게인 마이 라이프> 한지현 역. 조태섭(이경영)의 수행비서인 그는 언제나 차분하다 못해 무서운 분위기의 여성인데, 차주영 본인의 느릿한 말투나 톤이 찰떡이어서 그런 듯하다. <키마이라>의 김효경 역은 연기하는 데 어려웠지만 자신이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 키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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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김도훈
출연 박해수, 이희준, 수현, 윤지원, 김귀선
방송 2021, OCN
김건우
박연진 패거리에서 온갖 해결사 일을 도맡는 서열 꼴찌 손명오는 김건우가 맡았는데, 악역 배우 중 가장 신인(2017년 데뷔)이자 막내라고 한다. 단편 두 편을 제외하면 영화 출연작은 아직 없다. 그의 상업 데뷔작은 <쌈, 마이 웨이>의 김탁수 역. 스타 격투기 선수면서도 격투 실력을 정진하기보다 언플과 인기를 즐기는 인물인데, 샛노란 머리 때문에 김건우 배우라고 알고 봐도 어딘가 새롭다. 김탁수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 이종격투기 선수에게 훈련을 받았다. 남성미 넘치는 인상 때문인지 <라이브> 김한표 역, <나쁜형사> 장형민 역, <유령을 잡아라> 김이준 역 등 (선악을 떠나) '쎈' 캐릭터들을 줄곧 맡아왔다. 그의 색다른 면을 만나고 싶으면 명기준 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스페셜 - 낯선 계절에 만나>를 추천한다.

- 쌈,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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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이나정, 김동휘
출연 박서준, 김지원, 안재홍, 송하윤, 김성오, 표예진, 이엘리야, 채동현
방송 2017, KBS2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