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천재도 독단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떤 스타도 스스로 생길 수 없는 법이다. 제아무리 명배우라고 한들, 그들도 한때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툴게 대사를 내뱉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부터 보석으로 시작할 수는 없다. 아주 적더라도 보석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원석을 알아보고, 정성스럽게 세공하여 진정으로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친 재능을 연마시키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노력 너머의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존재 말이다. 연기처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라면, 스승의 존재는 더욱 절실하다. 어쩌면 가정의 달로 불리는 5월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날도 포함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데 부모만큼이나 중요한 존재가 바로 스승이기 때문 아닐까?
수많은 스타의 연기 선생을 자처한 배우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훌륭한 재능과 비결을 가르쳐, 그들의 재능을 발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시간이 흘러 스승이 배우가 된 제자를 만난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특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가르침을 주고받던 두 배우가, 서로 한 프레임 안에서 합을 맞추는 것만큼 짜릿한 순간도 없다. 스승은 제자가 자신의 가르침을 받고 성공하여 동료가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제자는 동경하던 스승과 드디어 함께하는 순간이 다가와 감격할 것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타들의 연기 선생으로 유명했던 배우들을 유심히 알아보자!
배우 조한철
최근 3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중요한 이름 중 하나를 꼽자면 조한철이 아닐까? 3년간 총 15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다작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것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흥행 보증 수표 수준으로 질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한 작품들과 함께하고 있다. <킹덤 시즌 2>(2020)부터 <재벌집 막내아들>(2022)까지 그야말로 조한철이 한국 드라마 트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아버지 진양철(이성민)의 인정을 갈구하지만, 장남이 아닌 차남이기 때문에 번번이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 열등감을 가진 순양증권 부회장 진동기 역을 맡아 <재벌집 막내아들>의 흥행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조카인 진도준(송중기)에게 완패한 뒤,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진양철 회장 앞에서 악을 쓰고 오열하며 술주정을 부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조한철의 엄청난 연기력을 입증하는 장면이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그와 낯익은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가 순양가의 맏며느리 모현민 역을 맡은 배우 박지현과 애널리스트 레이첼 역을 맡은 티파니의 연기 스승이었기 때문. 사실 조한철은 오래전부터 연기 지도를 해왔다. 1998년 연극 <원룸>으로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찍 결혼에 골인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랜 기간 배우들의 연기 강습을 이어왔고, 박지현, 티파니뿐만 아니라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재능 있던 연기 제자인 박지현과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뿌듯하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재벌집 막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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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정대윤, 김상호
출연 송중기, 이성민, 신현빈, 조한철, 박지현, 김정난, 김영재, 김신록, 강길우, 김현, 김강훈, 티파니 영, 김정우, 윤제문, 서재희, 정혜영, 김도현, 박혁권, 김남희
방송 2022, JTBC
배우 류승수
배우 류승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국밥 같은 배우다. 어떤 장르와 콘셉트에 상관없이 작품에 투입되면 든든하게 1인분을 해낼 수 있는 배우란 뜻이다. 말은 참 쉬워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꾸준하게 좋은 폼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구로 따지면 유틸리티 자원, 축구로 따지면 중앙 미드필더 같은 존재라고 비유하면 조금 더 와닿을 것이다. 인물의 정서와 서사가 각기 다른 만큼, 세밀한 감정선이 요구되는 연기의 영역에서 한결같은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마치 여러 포지션을 한꺼번에 소화하는 만능 플레이어라는 뜻이다. 1997년 영화 <3인조>로 데뷔한 이래로 매년 끊기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이어 나가면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조연 한자리를 꿰차는 류승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칭호다.
그가 내실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류승수는 누구보다 연기에 진심인 배우다. 한때 그는 네이버 카페를 개설해 연기자 지망생과 신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연기 이론과 테크닉, 강의 자료 등을 직접 공유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탤런트 시험에 붙기 전부터 충무로에서 유명한 연기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손길을 거쳐 간 배우들의 면모가 꽤 화려한데, 조인성, 송지효, 박한별, 김지석, 이요원, 이장우 등 그 이름의 무게부터 다르다. 특히 박한별의 데뷔작이었던 <여고괴담 3: 여우 계단>(2003)은 류승수가 직접 캐스팅에 관여하여 박한별을 발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배출한 스타들이 전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류승수야말로 스승의 날 가장 많은 연락을 받는 배우일지도.

-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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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재연
출연 송지효, 박한별, 조안, 박지연
개봉 2003.08.01.
배우 이준혁
이준혁은 참 신기한 배우다.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선역과 악역이 공존한다. 그런 그의 마스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배역은 단연 드라마 <스토브리그>(2019) 속 고세혁 팀장이 아닐까? 누구보다 자신의 구단을 사랑하며 선수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참된 스카우터처럼 보이지만, 뒤에서 선수들의 미래를 손에 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박하는 모습은 이준혁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 외에도 <육룡이 나르샤>(2015) 무휼(윤균상)의 허풍쟁이 스승 홍대홍 역 역시 이준혁이 지닌 양면성만이 그 매력을 잘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반전 매력은 이준혁의 또 다른 커리어에 있다.
이준혁은 한국 마임계의 전설 남긍호의 제자로, 팬터마임 배우 활동을 오랜 기간 했으며, 8년간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마임을 강의한 적도 있다. 이런 경력 덕분에 그는 모션 캡처 전문 배우로도 활동하였다. 영화 <미스터 고>(2013)의 고릴라 ‘링링’의 움직임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팬터마임과 모션 캡처 등 육체를 통해 하나의 서사와 감정을 만드는 데 빼어났던 그는 <늑대소년>(2012) 제작 당시 송중기에게 늑대 연기를 가르친 적이 있다. 송중기는 제작발표회에서 이준혁을 언급하여 ‘한국의 앤디 서키스’라고 할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송중기가 비로소 진정한 배우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 <늑대소년>이기에, 그의 연기력이 일취월장한 데에는 배우 이준혁의 공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 스토브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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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정동윤
출연 박은빈, 남궁민, 조병규, 김도현, 박소진, 채종협, 윤병희, 윤선우, 차엽, 김정화, 윤복인, 이대연, 오정세
방송 2019, SBS
배우 이재용
그와 동명이인의 엄청난 유명인이 있기 때문인지, 배우 이재용은 그의 본명보다는 그가 연기한 배역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곤 한다. <친구>(2001)의 조직 보스 차상곤, <야인시대>(2002)의 미와 경부, <제5공화국>(2005)의 이학봉, <뿌리 깊은 나무>(2011)의 조말생, <지구를 지켜라> (2003)의 추 형사 등, 그의 얼굴을 보면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배역을 떠올리곤 한다. 그가 자신의 본명은 잃어버렸지만(?), 대신 수많은 새로운 캐릭터들의 이름을 얻은 데에는 흡입력 있는 그의 연기력이 한몫했다. 각진 턱선과 날카로운 용모로 악역을 주로 맡을 때가 많지만, 주인공의 조력자나 유머에도 능하다. 어떤 배역을 맡든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기에, 대중들로부터 여러 인물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런 그의 연기력 덕분에 그가 한때 연기를 가르쳤던 제자들 역시 독특한 배우들이 많다. <추노>(2010)를 비롯하여 독특한 자신만의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장혁부터 나오는 영화마다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하는 김정태, <기생충>(2019)의 박충숙 역으로 칸까지 갔다 온 장혜진, 그리고 앞서 수많은 톱스타의 연기 선생이었던 배우 류승수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제자들은 전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마치 배우 이재용의 연기 경력을 닮아가듯 말이다.

-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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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곽경택
출연 유오성, 장동건
개봉 2001.03.31.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