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 속에서, 멈춰있는 것은 없음을 실감하는 때가 있다. 예컨대 나에겐 여전히 청춘인 배우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틋함과 절절함을 연기하는 순간 같은. 얼마 전에는 <무빙>에서 아빠가 된 조인성을 보고 가슴이 웅장해졌다. 오늘은 80, 90년대 출생 배우 중, 젊은 엄마 아빠 역할을 소화한 배우들을 모아봤다. 먼저 앞서 언급한 <무빙>의 조인성, 한효주다.


<무빙> 조인성, 한효주
<무빙> 한효주, 조인성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한효주는 초인적인 오감능력을 가진 '이미현'을 연기한다. 원작 '무빙'에서 이미현은 1966년생.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1970년생으로 4살 젊어졌지만, 1987년생 한효주가 연기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간극이다.

23살이었던 2010년 MBC <동이>에서도 엄마를 연기했던 경험이 있지만, 한효주는 고3 수험생을 둔 '이미현' 역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배역을 고사할까도 고민했다고. 하지만 강풀 작가의 간곡한 부탁으로 제안을 수락했고, '한효주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감탄을 자아내는 연기를 보여주는 중이다.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아들 봉석(이정하)과 숨기고 싶어 하는 미현 사이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 아들의 '여자인 친구' 장희수(고윤정)를 보고 당황하는 신, 두식(조인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지만 사랑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섬세한 감정 변화가 읽히는 시퀀스는 필자가 손꼽는 명장면. 

<무빙> 다양한 얼굴의 한효주


한효주뿐만이 아니다. 미현의 의도적 접근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빠져드는 두식 역의 조인성의 연기도 호평을 받고 있다.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모습도 강렬하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건 하늘로 날아가 버린 아들을 찾아내 달래는 아빠의 모습, 미현과의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다. 임무 수행 중 돌연 사라져 미현의 앞에 나타나 "죽을 것 같아서요"라고 읊조리는 절절한 사랑고백 또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클래식>, <발리에서 생긴 일>을 거쳐, <비열한 거리>에서 삼류 조폭 조직의 이인자 '병두'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각종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후 본격적인 연기자로 인정받은 조인성. 최근 영화 <밀수> '김상사' 캐릭터에 이어 <무빙>의 '두식' 역을 훌륭히 소화하며 대세 배우의 입지를 굳혔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절찬 상영 중!


<두근두근 내 인생> 송혜교, 강동원
<두근두근 내 인생>

<두근두근 내 인생>은 부모보다 빨리 늙어가는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들 아름(조성목)과 아들보다 젊은 부모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송혜교는 아이돌의 꿈을 포기하고 열일곱에 아이를 낳은 엄마 ‘최미라’로, 강동원은 철없는 남편 '한대수'로 분했다. 두 배우의 첫 부모 역이었다. 

강동원과 송혜교의 만남. 거기에 선천성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키우는 부모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당시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하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철부지 부모 역할이기도 하고 실제 성격과 가까웠기 때문에 연기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미라가 되기 위해 송혜교는 화장을 하지 않는 등 현실감 있고 억척스러운 연기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30대 초반의 풋풋한 두 배우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헌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

감독 이재용

출연 강동원, 송혜교, 조성목, 백일섭, 허준석, 김소진, 차은우, 채서진, 최윤석, 황석정

개봉 201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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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신민아
<우리들의 블루스> 신민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신민아는 1998년 데뷔 후 처음으로 엄마 역에 도전했다. 우울증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고, 양육권 분쟁으로 힘들어하는 '민선아'로 분한 신민아는 전작 <갯마을 차차차> 등에서 보여준 러블리한 모습과는 180도 다른 연기로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특히 '우울증을 시각화한 것 같다'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드라마는 우울증을 묘사한 탁월한 연출과 연기로 호평을 받기도.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흘러내려 사라지는 듯한 장면, 바다에서 뒤로 돌았을 때 밝은 세상이 어두컴컴하게 변하면서 이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장면 등 우울증을 표현한 세심한 연출 위에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모습, 응시하는 눈빛, 떨어지는 눈물방울 등으로 우울증을 겪는 감정선, 감정 변화, 이겨내는 과정을 표현한 신민아의 연기가 더해져 시너지를 낸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우는 남자> 김민희
<우는 남자> 김민희

<우는 남자>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던 킬러 ‘곤’(장동건)이 조직의 마지막 명령으로 타깃 모경(김민희)을 만나고, 임무와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며 벌어지는 액션 드라마다. 2010년 <아저씨>로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구축한 이정범 감독이 연출을 맡아 큰 기대를 모았지만, 영화는 혹평 속 조용히 퇴장했다. 

클리셰 범벅인 영화에서 단 하나 건질만한 것은 김민희의 연기. 킬러 곤(장동건 분)의 마지막 타깃으로 분한 김민희는 하나뿐인 딸을 잃은 엄마의 심정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특히 죽은 딸의 유치원 학예회 영상을 보며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경의 모습은 김민희의 물오른 감성 연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김민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엄마 역. 현재 '왓챠'에서 상영 중.


<18 어게인> 이도현
<18 어게인> 이도현

위에 언급한 배우들과는 다른 결이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도현이 <18 어게인>에서 연기한 38세의 '홍대영'은 그 누구보다 능글맞았고 능청스러웠으며 꼰대스러웠으므로! 

아내 다정(김하늘)과 이혼 직전인 대영(윤상현)은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고교 농수 선수 기대주로 활약했던 18년 전 리즈 시절로의 회귀해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다. 우주의 기운을 담아 던진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대영은 꿈처럼 과거로 회귀한다. 새로운 인생이 마냥 즐거울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마주친 자식들과 친구로 지내게 되면서 몰랐던 아이들의 상처, 고민을 마주하게 된다. 대영은 아이들을 도우며 아내 다정과 다시 한번 얽히고,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첫 주연작에서 이도현은 37세에서 18세로 돌아간 홍대영이자 새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고등학생 고우영 역을 맡았다. 과거 회상 신에서는 18세 시절 홍대영까지 연기하니, '1인 3역'인 셈. 목소리, 딕션, 발성, 완벽한 대사 처리와 더불어, 인생만사 다 경험해 본 것처럼 깊이 있는 아버지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아픈 아이를 업고 달리며 펼치는 눈물 연기는 단연 압권.

18세를 연기하는 37세를 연기한 26살 이도현은 3년 뒤인 29살엔 7살을 연기하게 된다(<나쁜엄마>). <더 글로리> <나쁜 엄마>를 잇는 그의 인기는 이미 이때부터 예견돼 있었다. <18 어게인>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