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 전후로 한국 극장가에는 조폭 코미디물이 하나의 장르로서 기능했다. 조폭 코미디물이 한국영화계에 미친 영향이 과연 긍정적이었는지, 혹은 악영향에 그쳤는지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이견이 존재하지만, 일부 배우들에게는 필모그래피의 전환점, 혹은 연기 활동의 본격적인 시발점으로 작용했던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조폭 코미디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가문의 영광: 리턴즈>로 이번 추석 컴백을 예고한 가운데, 이번에는 어떤 배우가 강한 인상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래서 모아봤다. 조폭 코미디 영화가 재발견한 배우들.

가문의 영광: 리턴즈

감독 정태원, 정용기

출연 윤현민, 유라, 김수미, 탁재훈, 정준하, 추성훈, 기은세, 고윤, 김희정

개봉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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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3>(1997): 송강호
<넘버 3> 스틸컷

주연이 아닌 조연 송강호, ‘신인송강호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넘버 3>를 권한다. 송강호가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에서 영화배우로서의 연기력을 입증했다면, <넘버 3>는 그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이다.

<넘버 3>에서 어떤 새끼가 넘버 쓰리래? 내가 넘버 투야라던 한석규, 니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라고 하던 최민식의 대사도 큰 화제가 됐지만, 가장 임팩트 강한 유행어를 낳은 배우는 단연 송강호가 아닐까.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송강호는 비교적 비중이 적었던 조연이었지만, 등장하는 모든 씬이 화제의 중심이 됐다. “내 말에 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토다는 새끼는 배반형이야 배반형이라는 세기의 명대사를 남긴 일명 헝그리 정신씬은 아직도 알고리즘을 탈 정도. 송강호는 <넘버 3>에서의 열연으로 제35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에서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넘버 3

감독 송능한

출연 한석규, 최민식, 이미연, 안석환, 박광정, 방은희, 송강호, 박상면

개봉 199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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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습격사건>(1999): 김수로
빨간 헬멧을 쓴 사람이 김수로. <주유소 습격사건> 스틸컷

동네 젊은이들이 그냥’, 이유 없이 주유소를 습격하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2023년 지금, <주유소 습격사건>을 다시 관람한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이성재, 유지태, 유오성, 강성진 등 주연과 조연은 물론이고, 단역들까지 지금은 모두 이름이 알려진 내로라하는 배우들이기 때문. 당시 신인이었던 이요원, 극단 출신의 유해진, 단역으로 출연한 이종혁까지.

김수로는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인해 충무로의 대표적인 코믹 배우로 떠올랐다. 영화에서 김수로는 중국집의 배달부, ‘철가방’(혹은 김구라’) 역을 맡았다. 철가방은 주유소 패거리 4인방과 대치하는 인물. 김수로는 지금도 배달부만 보면 <주유소 습격사건>이 떠오른다고 밝힐 만큼, <주유소 습격사건>은 그의 본격적인 연기 인생을 열어준 작품이었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당시 관객 230만 명을 동원하며 큰 흥행을 이끌어냈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흥행으로 인해, 실제로 주유소를 털려다가 붙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1편의 흥행에 힘입어 11년 후에는 속편 <주유소 습격사건 2>(2010)이 제작되기도 했다. 속편에서는 전편에 이어 배우 박영규가 출연하고, 김수로가 카메오로 등장한다.

주유소 습격사건

감독 김상진

출연 이성재, 유오성, 강성진, 유지태, 박영규, 정준, 이정호, 이요원, 김수로

개봉 199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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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2001): 차승원
<주유소 습격사건> 스틸컷

차승원을 대표적인 코미디 배우로 만든 작품, <신라의 달밤>. <신라의 달밤>을 연출한 김상진 감독은 전작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차승원을 단역으로 출연시켰는데, 사정상 편집되어 막상 영화에서는 그의 손만 약 2초가량 등장하게 되었다. 김상진 감독은 다음 작품 <신라의 달밤>에서는 주인공으로 차승원을 캐스팅했으니, 전작의 미안함을 배로 갚은 셈.

<신라의 달밤>은 과거 날라리였던 학생이 선생으로, 모범생이었던 학생이 깡패가 되어 10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다. 차승원이 <신라의 달밤>에서 보여준 연기는 모델 출신 배우의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어 차승원은 코미디 영화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에 출연하며 코미디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신라의 달밤

감독 김상진

출연 이성재, 차승원, 김혜수, 이종수, 이원종, 성지루, 조상건, 이한갈, 유해진, 김학규

개봉 200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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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마누라>(2001): 신은경
<조폭 마누라> 스틸컷

한국의 조폭 코미디 영화의 계보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 아닐까. <조폭 마누라>는 '조폭의 마누라'가 아닌, '조폭인 마누라'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조폭 마누라>는 2000년을 전후로 수없이 생산된 숱한 조폭 코미디의 공식을 뒤집고, 여성이 주변인이 아닌 조폭의 우두머리를 맡았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더불어, <조폭 마누라>는 배우 신은경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터닝포인트가 된 주요한 작품이다. <조폭 마누라> 이전, 청춘스타였던 신은경은 <조폭 마누라>를 통해 액션 장르에 도전하며 연기의 바운더리를 넓혔다.

<조폭 마누라>는 흥행에 힘입어 2,3편이 제작되기도 했다. 물론 두 편 모두 첫 편에 비해 흥행은 실패했지만, 신은경이 연기한 조폭마누라가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던 것은 분명하다.

조폭 마누라

감독 조진규

출연 신은경, 박상면, 안재모

개봉 200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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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놀자>(2001): 류승수
맨 왼쪽이 류승수. <달마야 놀자> 스틸컷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던 그는 <달마야 놀자>를 통해 모두가 아는 배우가 됐다. <달마야 놀자> 이전, 류승수는 단역을 도맡던 무명 배우였다.

<달마야 놀자>는 사찰로 숨어든 조폭과 스님의 갈등, 그리고 우정을 그린 영화다. 사찰의 스님 중, 류승수가 연기한 ‘명천 스님’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인물로, 영화의 가장 큰 웃음 포인트를 담당한다. 여담으로, 류승수가 연기한 ‘명천 스님’ 역할은 본래 배우 이범수가 맡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영화는 약 37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하며 <달마야, 서울 가자>라는 속편까지 제작되기에 이른다. 아쉽게도 속편에는 류승수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스님 3인방(정진영, 이원종, 이문식)은 그대로 출연했다.

달마야 놀자

감독 박철관

출연 박신양, 정진영, 박상면, 강성진, 김수로, 홍경인, 김인문, 이원종, 이문식, 류승수

개봉 200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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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부일체>(2001): 정웅인
<두사부일체> 스틸컷

<달마야 놀자>에서는 조폭이 절에 갔다면, <두사부일체>에서는 조폭이 학교에 간다. 2001년은 조폭 코미디 영화 세 편,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가 연달아 개봉한 기록적인 한 해였다.

정웅인은 지금이야 진지한 역할부터 악역 등까지 두루 섭렵한 배우지만, 드라마 <세 친구>와 영화 <두사부일체>의 연타석 흥행으로 인해 맛깔스러운 코미디 연기 전문 배우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두사부일체>에서 정웅인은 대학을 나온 조폭 역을 맡아, 아는 척만 하고 정작 아는 건 없는 김상두의 얼굴을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툭하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내뱉던 그의 대사는 아직까지도 종종 패러디되는 유행어다.

당시 영화는 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 <투사부일체>(2005), <상사부일체>(2007) <두사부일체>2편과 3편이 개봉하기도 했다. 

두사부일체

감독 윤제균

출연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 오승은, 송선미, 박준규, 강성필, 기주봉, 윤문식, 고명환

개봉 200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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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2002): 유동근
<가문의 영광> 스틸컷

520만 관객을 웃긴 조폭 코미디의 최고 흥행작, <가문의 영광>. 극중 김정은이 피아노를 치며 나 항상 그대를을 부르는 장면에 힘입어, 노래가 (요즘 말로) ’역주행하기도 했다.

<가문의 영광>은 유동근이 그전까지의 이미지를 완전히 깬 작품이다. <가문의 영광> 이전까지, 유동근은 드라마 <용의 눈물> <명성황후> 등으로 인해 사극에서의 진중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배우였다. 그랬던 그가 <가문의 영광>에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차진 비속어를 구사하는 조폭을 연기한다니,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소식이었다. 우려도 잠시, 유동근은 중후함은 벗어던지고 바람기 가득한 조폭을 우스꽝스럽게 연기해 내어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가문의 영광>의 성공에 힘입어 <가문의 위기>(2005), <가문의 부활>(2006), <가문의 수난>(2011), <가문의 귀환>(2012)까지, 4편의 후속편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올 9, 추석 시즌을 맞아 <가문의 영광:리턴즈>가 다시 개봉 소식을 알리며 리부트를 예고한 가운데, 11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이 가문의 명맥을 다시금 이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가문의 영광

감독 정흥순

출연 정준호, 김정은, 유동근, 성지루, 박상욱, 박근형, 이서연, 유혜정

개봉 20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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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