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포스터. 사진 제공=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국내 유일 산악영화제이자 세계 3대 산악영화제로 성장 중인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이사장 이순걸)가 어느덧 올해 8회를 맞이했다. 10월 20일부터 29일까지 울산, 울주 일대에서 열리는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슬로건은 ‘함께 오르자, 영화의 山’이다. 경쟁과 인간의 삶, 역사를 만들어가는 산악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다룬 36개국 총 151편의 다양한 영화를 선보인다.

올해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상영 공간의 확장이다. 작년까지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로 열었지만, 올해부터는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로 명칭을 변경한 만큼 상영공간을 기존 영남알프스뿐만 아니라 태화강국가정원으로 넓혀 접근성을 넓혔다. 친환경이라는 테마에 충실한 국내 최초 자전거 전원 영화관(움프페달극장), 파쿠르와 MTB 등 스포츠 액티비티 체험 프로그램, 하프마라톤 대회 등도 준비되어 있어 영화 외로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그래도 영화제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영화 감상!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국제경쟁 섹션에서는 산을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을 이야기하는 총 70개국에서 출품한 796편의 영화 중 20편을 엄선했다. 특히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를 올해 많이 소개한다. 올해 국제경쟁 부문 주요 작품과 이정진 프로그래머가 놓치지 말라고 추천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GV가 예정된 영화는 꼭 놓치지 말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출품작 포스터. (왼쪽부터) <파라다이스>, <초월>, <매드 스키 프로젝트>. 사진 제공=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파라다이스>는 화산이나 산불 같은 자연재해를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정통 산악 스포츠 영화들도 경쟁 섹션에 포함되어 있다. 제목처럼, 지난 5월 <매드 스키 프로젝트> 원정을 떠나 8,000미터 2개 봉우리를 무산소로 등반하고 스키로 하강한 팀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자신의 장애를 믿기 힘든 극한의 노력으로 극복해가며 등반하는 이야기 <초월>까지, 도전과 인류애, 인간 승리를 담은 이 영화들은 그 자체로 산악 스포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지하다시피,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꼭 풀어야 하는 힘든 숙제다. 이 문제는 <코르크의 숲>에서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여름의 초원> 가우초 가족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또한 인간 자체를 주제로 한 수작들 역시 경쟁 섹션에서 소개한다. <경계선의 풍경>에서는 동부 아르메니아의 풍광을 배경으로 아픈 역사와 고통이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인간이 살기 위해 진행할 수밖에 없는 동물실험에 대한 건조한 초상 <파우나>에서 감독은 윤리의 문제를 제기한다”라고 설명했다. 이하는 이정진 프로그래머 추천작 5편!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포스터. (왼쪽부터)<코르크의 숲>, <그 여름의 초원>, <경계선의 풍경>, <파우나>. 사진 제공=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1.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감독 낸시 스벤센, 미국)

인종 차별, 성차별, 정치적 반대와 싸우며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원주민 출신 개척자 셰르파 파상 라무의 이야기다. 그녀의 용감하고 비극적인 여정은 조국에 큰 감동을 줬고, 새로운 세대들이 네팔에서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독려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과 여성의 권리 확대 그리고 소외된 사회에 대한 목소리 내기 등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필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산악영화제와 딱 어울리는 영화라면 바로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를 꼽을 수 있다. 전 세계 유수의 산악영화제에서 5관왕을 수상할 정도로 만듦새도 인정받은 작품이다. 산악영화제는 일반영화제와 평가 기준이 좀 다르다. 일반영화제는 미장센 구성, 편집, 완성도 측면에서 영화를 평가한다면, 산악영화제는 물론 그런 부분도 신경 쓰지만, 인물이나 등반 코스에 더 방점을 둔다. 초등 기록, 산악인에 대한 조명이 정확한지 그런 부분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매우 볼만하다.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여성 셰르파라는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가 울림을 준다. 정부에서도 파상의 이름을 딴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밀 품종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파상 라무는 1994년 세상을 떠났다. 파상의 딸이 올해 영화제를 찾아 GV에 참석하니 놓치지 말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2. <화산과 함께>(감독 다비드 판탈레온, 호세 빅토르 푸엔테스, 스페인)

이정진 프로그래머의 두 번째 추천작은 <화산과 함께>이다. 역시 GV가 예정되어 있다. 러닝타임이 66분으로 부담도 없다. 영화의 배경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인근이다. 지금도 폭발하는 활화산 옆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민들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일단 카메라에 활화산의 모습을 엄청나게 잘 담아냈다.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인데, 여기에 이를 배경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의 평온한 삶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를 이룬다. 주민들이 다른 마을, 도시의 친구와 친척들과 연락을 하는 방식도 신기하다. 마치 통화하듯 녹음해서 ‘보이스 전송’으로 보낸다. 우리처럼 문자나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목소리로 된 메시지들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화산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자연 현상을 탐구하는 영화들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굉장히 독특하게 구성한 영화”라고 추천했다.

이정진 프로그래머 추천작 중 경쟁부문 영화 3편 포스터. (왼쪽부터)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 <화산과 함께>, <이방인>. 사진 제공=울주울산세계산악영화제

3. <이방인>(감독 베로니카 리슈코바, 체코공화국·노르웨이·슬로바키아)

젊은 인류학자 즈덴카는 극지방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로 이주한다. 새로운 고향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북극에서 빙산과 영구동토층보다 더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연구를 위한 관찰이 목적이었던 지역 사회에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지역이 배경이긴 하지만 북극 근처다 보니 너무 춥다. 영화 배경도 겨울이다. 연구원 즈덴카가 지역 거주민을 인터뷰하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적 구성이다. 그 사이사이에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추운 겨울밤 해도 짧으니, 일상을 보내며 즈덴카는 느낀 점들을 영화에서 독백으로 담는다. 그 안에서 스발바르 지역의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다. 원주민은 이주민에게 영어 대신 노르웨이말을 배우기를 원하고, 이주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힘들면서 간극이 벌어지는데, 스발바르라 지역의 추운 날씨처럼 원주민과 이주민의 관계가 얼어붙은 느낌을 준다. 은유도 탁월하고 촬영과 구성 역시 탄탄하다”라고 추천했다.

이정진 프로그래머 추천작 중 비경쟁부문 영화 2편 스틸컷. (위에서부터) <플래닛 B>, <나를 위한 기도>. 사진 제공=울주울산세계산악영화제

4. <플래닛 B>(감독 피터르 반 에크, 네덜란드·벨기에)

보는 친구 루키와 함께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멸종 저항’이라는 단체에 합류해 공장 부지와 고속도로를 점거하게 되고, 체포되어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일까? <플래닛 B>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다. 브뤼셀에서 활동하는 영화제작자이자 기후운동가인 피터르 반 에크의 세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전작 <구름 위의 사무엘>과 <마지막 하늘 아래>는 다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경쟁부문 작품은 아니고 ‘자연’ 섹션에 출품된 영화다. 10대 후반의 기후활동가 청소년 2명이 주인공이다.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환경 지킴이 ‘그레타 툰베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환경을 지키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영화에 그려진다. 환경 활동을 하느라 때로는 부모님 동의하에 학교도 빠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 작금의 기후변화와 위기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우리나라 청소년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그레타 툰베리가 자기의 이름 자체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면, <플래닛 B>의 두 청소년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활동가로 느껴진다. 영화가 두 청소년을 조명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라고 의미를 매겼다.

5. <나를 위한 기도>(감독 한카 노비스, 스위스·폴란드)

젊은 청년 안테크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로 매우 보수적인 가치관을 따르며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성관계 금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궁극적으로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는데….

산악영화제에서 절대 상영할 것 같지 않은 영화 <나를 위한 기도>는 올해 울산울주세계산악여화제산악영화제 ‘올해의 산’ 주빈국 폴란드 특별전에서 볼 수 있다.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통상 ‘보수’나 ‘우익’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이 일순간에 변화하는 모습이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그런데 이걸 그냥 단순하게 한 사람의 변화로만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것 같다. 폴란드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던 문화나 가치관들이 변화하고 있는 최근의 시류를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눈길이 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산을 좋아하는 관객,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 모두를 만족시킬 영화를 다채롭게 준비했다. 여기에 올해의 울산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 스티븐 베너블스(70세)를 만날 기회도 있다.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전 세계 자연과 환경, 등반, 영화, 문학 등 산악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인물 중 영화제 슬로건에 맞는 인물을 선정해 2017년부터 울산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시상하고 있다.

스티븐 베너블스는 험난한 산들을 오르며 얻은 극한의 체험들을 유려한 필치로 써낸 산악문화의 전도사다. 총 11권의 산악 서적을 펴냈고, 이중 세 권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보드맨 태스커 상, 벤프 산악도서 대상, 벤프 산악도서 최고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8년에는 가장 험난해 찾는 이가 드물던 에베레스트 동벽에 새로운 루트를 단 4명의 팀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인공 산소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시상식은 개막식에서 진행하며, 영화제 기간 동안 강연과 전시,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행사에서 스티븐 베너블스를 만날 수 있다.

독립영화제나 시네마테크 같은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이번 영화제를 통해 감독도 만나고, 촬영감독, 배우들을 만나는 영화제만의 현장성을 만끽하길!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