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최초로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프랑스인이다. 그래서 ‘영화의 요람’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는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다. ‘영화 혁명가’ 장 뤽 고다르 등 현대 영화 문법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이들을 배출해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가 프랑스에서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어려울 수는 있지만, 프랑스 특유의 예술성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 예술성을 증명한 프랑스 감독들을 만나본다.
<도그맨> (2023) / 뤽 베송
어느 날 밤 뉴저지에서 의문에 싸인 한 남자가 경찰에 체포된다. 금발에 빨간 드레스 차림의 다리가 불편한 남자는 몇십 마리의 개를 실은 트럭을 운전 중이었다. 그의 상담을 맡은 심리학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학대받고 개를 가족 삼아 지낸 더글러스의 비극적 운명을 재구성한다. 그의 이야기는 ‘신은 불행이 있는 곳에 개를 보낸다’라는 말을 증명한다.
안티히어로가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는 절묘한 액션 스릴러이자 절절한 휴먼드라마 <도그맨>.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신작 및 국제적인 관심을 모은 화제작을 소개하는 오픈 시네마 부문 선정작으로, 야외극장에서 수천 명이 함께 관람하였다. 프랑스 거장 뤽 베송은 <니키타>(1990), <레옹>(1994) 등 자신의 초기 명작들의 독특한 스타일을 되살려 다크 스릴러를 연출했다. 2021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연약하면서도 냉혹한, 천의 얼굴 더글러스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상기시켜 주는 면에서 레옹을 닮았고, 세상을 어둠으로 맞서는 그의 눈빛은 조커마저 연상된다.
<공드리의 솔루션북> (2023) / 미셸 공드리
마크는 자신을 해고하려는 영화사의 경영진으로부터 편집자와 함께 도망친다. 촬영분을 가지고 시골의 숙모 집으로 도피한 마크는 부족한 자신의 영화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새로운 영감을 찾고자 애쓰다가 자신만의 솔루션북을 만들기에 이른다. 마크의 고통은 공드리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위트, 판타지적 현실을 통해 극도로 증폭되고, 영화는 결국 창작의 고통과 창작자의 무책임을 동시에 풍자하는 블랙코미디가 된다.
〈이터널 선샤인〉(2005)을 연출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5년 연출작 〈마이크롭 앤 가솔린〉(2015)이후 8년 만의 작품이기에 더욱 반갑다. 영화는 2013년 〈무드 인디고〉를 촬영하면서 경험한 공드리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공드리는 애잔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마크에게 투영한다. 사라져 버린 영감과 창작력을 되찾으려는 괴짜 영화감독 마크 역은 <프란츠> <이브 생 로랑> 등으로 친숙한 프랑스 배우 피에르 니니가 맡았다.
<더 비스트> (2023) / 베르트랑 보넬로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 프랑스부터 지진이 멈추지 않는 2014년 로스앤젤레스,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2044년 세상까지. 세 시대에 걸쳐 환생하는 한 여자와 남자, 그리고 매번 두려움 때문에 실패하는 이들의 관계가 펼쳐진다. 그들은 모두 불안에 잠식된 괴물인 동시에, 순수한 사랑을 쫓는 나약한 인간들이다.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의 신작 <더 비스트>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정글의 짐승」을 원작으로 한다. 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선정되었다. <생 로랑>(2014)으로 세련된 감각을 선보였던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이 이번에는 시대극과 현대 스릴러, SF를 유려하게 넘나들며 이 시대의 모든 두려움을 형상화한 철학적 콩트를 완성한다. 주연을 맡은 레아 세이두는 20세기 초 부르주아 여인, 현대의 모델, 인위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공허한 눈빛의 미래 인물까지 연기하며 현시대 가장 뛰어난 배우임을 입증한다.
<추락의 해부> (2023) / 쥐스틴 트리에
독일인 작가 산드라와 사뮤엘 부부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과 1년 동안 외딴 산간 지역에서 지낸다. 산드라와 다툰 사뮤엘이 집 밖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자살과 살인 중 의심스러운 정황 가운데 산드라가 용의자로 기소된다. 1년 후 다니엘은 어머니의 재판에 참석한다. 뜻밖에도 법정에서는 산드라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는 범죄보다 독립적인 여성, 양성애자, 문학적 성공이라는 산드라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더욱 주목한다. 이제 아들 다니엘만이 유일하게 산드라의 무고를 입증할 수 있다. 다니엘이 목격한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외양과 소리,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으로 구성된 퍼즐 같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추락의 해부>. 제7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아이콘 부문에 선정되었다. <에이지 오브 패닉>(2013), <시빌>(2019)을 연출하며 프랑스 평단의 주목을 받은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연출했다. 혁신적인 연출 시도와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법정 영화이며,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한 여성의 잊혀지지 않는 초상화다. <레퀴엠>, <토니 에드만>의 산드라 휠러가 주연을 맡아 또 한 번의 인생 연기를 펼친다.
<라스트 썸머> (2023) / 카트린느 브레야
안느는 남편의 전처가 낳은 아들과 성관계를 나누는 인물이다. 성적으로 분방한 엄마 세대와 달리, 그는 스스로 그러한 자유를 억압당한 세대로 규정한다. 직업인으로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안느는 자신과 청년의 관계를 지키지 못하며, 순진한 욕망은 희생양으로 남는다. 그룹 ‘소닉 유스’의 노래 ‘더러운 부츠’를 들으며 아무리 젊은 척해봐도, 문제는 육체가 아닌 정신의 노화다.
<어뷰즈 오브 위크니스> 이후 10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신작 <라스트 썸머>가 아이콘 부문에 선정되었다. <퀸 오브 하츠>(2019, 메이 엘-투키 연출)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남편의 전처가 낳은 아들과 금지된 관계를 나누는 ‘안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감독은 금지된 사랑을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문제 이상으로 벌이지 않는 대신, 부르주아 가족의 본질에 접근한다. 그들은 위선적이며, 가족의 존속을 위해 어떤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열린 결말을 선택한 감독은 도덕과 폐쇄성을 걷어내고, 각자가 자신만의 결말을 상상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