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홍콩이니까요.”

친구 A씨에게 영화 〈종횡사해〉(1991)를 추천하면서 나는 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A씨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따거’ 주윤발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별생각 없이 〈영웅본색〉(1986)을 봤다가 심각한 주윤발 앓이에 빠진 터였다. 평소 미조구치 겐지와 허우 샤오시엔의 필모그래피를 줄줄이 외울 정도로 영화를 즐겨봤던 A씨가 전성기 홍콩 시네마를 한 편도 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주윤발에 새삼 반했다는 건 놀랍지 않았다. 주윤발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알고도 빠지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아니, 이 영화광 A가 아직 주윤발의 매력을 모른다고?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다른 지인들은 앞다투어 A씨에게 주윤발의 영화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가을날의 동화〉(1987)를 추천했고, 〈영웅본색〉을 봤으면 당연한 수순으로 〈첩혈쌍웅〉(1989)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주 잠시 〈대장부일기〉(1988)를 추천할까 고민했지만, 그건 마치 양조위에게 반한 사람에게 〈동성서취〉(1993)를 추천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고민 끝에 선택한 작품은 〈종횡사해〉였다.

(왼쪽부터) 셰리, 제임스, 아해

아해(주윤발)와 제임스(장국영), 셰리(종초홍)는 어린 시절 같은 사부(증강) 밑에서 도둑질을 배운 고아들이다. 온갖 학대와 체벌을 견디며 도둑질을 배운 3인조는,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예술품 전문 도둑으로 활동 중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니스로 운반 중인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성공적으로 훔쳐낸 3인조는, 이번 의뢰만 수행하고 나면 손 씻고 은퇴하자는 셰리의 말대로 할 참이었다. 프랑스인 의뢰인 르 본드(피에르 이브 부르통)가 폴 데지레 트루이베르의 작품 ‘할렘의 여시종’을 훔쳐달라고 부탁하기 전까지만 해도.

셋이서 깨끗이 손을 씻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하는 셰리는, 르 본드의 의뢰를 정확하게 통역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며 둘러댄다. “이 그림엔 저주가 걸려 있어서, 훔치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대.” 하지만 셰리의 그 말은 오히려 제임스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제임스는 아해와 셰리에게 아무 언질도 하지 않고 혼자서 ‘할렘의 여시종’을 훔치러 가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해는 제임스를 돕기 위해 따라나선다.

셰리의 말이 씨가 된 걸까. ‘할렘의 여시종’을 구해달라던 르 본드의 의뢰는, 사실 제자들을 쓸 만큼 써먹었으니 이제 토사구팽하려던 사부의 음모였다. ‘할렘의 여시종’을 되찾기 위해 총을 난사하는 프랑스 갱단과 맞서 싸우던 아해는 타고 있던 차량이 폭발하는 사고에 휘말리고, 그 자리를 간신히 뜨는데 성공한 제임스는 아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며 셰리와 함께 홍콩으로 돌아간다.

2년의 시간이 흐른다. 아해를 사랑했던 셰리와, 친형 같았던 아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제임스는 서로에게서 위안을 발견하고 가정을 이뤘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만 알았던 아해가 휠체어를 탄 채로 제임스의 눈앞에 나타난다. 이제 아해와 제임스, 셰리는 자신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사부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세 사람의 운명을 갈라 놓았던 문제의 그림 ‘할렘의 여시종’을 다시 한번 훔칠 계획을 세우며.

A에게 “그것이 홍콩이니까요.”라고 말한 건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말해 놓고 보니 정말 〈종횡사해〉는 그 시절 홍콩이 만들 수 있었던 영화의 정수였다. 능글맞은 표정으로 여유롭게 농을 걸지만 그 순간조차 눈빛에 애수가 어려있던 주윤발, 어딘가 불안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얼굴로도 장난꾸러기처럼 환하게 웃어보일 줄 알았던 장국영, 그리고 한참 미모가 극에 달해 큰 입을 활짝 벌려 웃는 것만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종초홍, 거기에 커리어의 최정점에 올라와 있던 오우삼까지.

만든 사람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종횡사해〉는 그 내용과 구성 면에서도 그 무렵 홍콩 시네마의 정수를 담고 있다. 야심찬 해외 로케이션, 오우삼 감독 특유의 비장미와 현란한 액션 설계, ‘어둠의 세계에서 범죄를 생업으로 삼고 있지만 천성은 선량한 주인공’이라는 설정, 친구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조차도 기꺼이 따라나서는 ‘의협’의 정신, 믿고 있었던 이의 배반, 홍콩 누아르에서 자주 등장했던 테마인 신체 훼손,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던 홍콩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반복한, ‘홍콩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심지어 오우삼 영화답지 않게 유머로 가득 차 있었던 것조차 일면 홍콩 시네마다웠다. 벽면에 폭약을 설치하고는 발파 버튼을 눌렀는데 정작 폭약을 설치한 자리는 안 터지고 그 바로 옆벽이 폭파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과, 그걸 ’전선 연결을 잘못해서 그렇다’고 대충 눙치고 지나가는 대목, 보안 레이저를 피해 가기 위해 주윤발과 장국영이 춤을 추듯 합을 맞춰 움직이는 장면 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우삼 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종횡사해〉만의 특징은 사실 영화의 개봉 시기와도 관계가 있다.

〈종횡사해〉는 홍콩에서는 1991년 2월 2일, 한국에서는 2월 14일에 개봉했다. 크랭크인부터 개봉까지 10주 밖에 걸리지 않은 작품이었는데, 이토록 빠른 속도로 찍어낸 건 설 명절까지 극장에 걸어야 한다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해 설날은 2월 15일이었다.) 명절을 노려 빠르게 찍어낸 작품들이 성행하던 그 시절 홍콩 시네마의 특징은 〈종횡사해〉에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영화 초반을 채운 프랑스 로케이션부터, 주윤발과 종초홍이 선보인 휠체어 탱고, 뜬금없이 등장한 데클란 웡의 카드 묘기, 주윤발의 낚싯대 봉술 등 ‘신기한 볼거리’를 최대한 가득 채우려는 노력은, ‘명절 종합 선물 세트’로서의 명절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흔적이다.

A에게 〈종횡사해〉를 추천해 준 뒤, 나 또한 아주 오랜만에 〈종횡사해〉를 다시 꺼내어 봤다. 화질은 열악했고, 어떤 농담들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낡은 티를 냈으며, 급하게 만든 탓에 군데군데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목들도 숨기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종횡사해〉에는 ‘따거’ 주윤발의 청춘이, 환하게 웃던 장국영의 젊음이, 지금은 영화계를 떠난 종초홍의 웃음이 있으니까. 우리가 알고 사랑했던 홍콩 시네마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 거기에 있으니까.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