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서희(사진 제공=트리플픽처스)

배우 장서희는 유난히도 ‘독한 여자’였다.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가 그랬고,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 <언니는 살아있다!>의 민들레가 그랬다.

장서희가 한 번 더 ‘독한 역할’을 맡아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그 제목에서부터 독한 기운이 느껴지는 심리 스릴러 영화, <독친>. 영화에서 장서희는 딸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엄마 ‘혜영’ 역을 맡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향의 독기를 발휘한다.

‘독친'이라는 단어는 ‘자식에게 독이 되는 부모’를 뜻하는 말이다. 제목에서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듯, 영화 <독친>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지독한 사랑을 주는 엄마 ‘혜영’이 딸 ‘유리’의 죽음을 추적하며 충격적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미스터리 현실 공포 심리극이다.

<독친>은 독한 부모의 이야기지만, 영화 속 ‘혜영’의 모습은 단지 ‘독하다’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된 광기와 집착이 빈번해진 요즘 시대에서, 장서희가 연기하는 ‘혜영’은 현실에 숱한 부모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민소희’나 ‘아리영’보다도 가장 무서운, 가장 악독한 역할이기도 하다.

<독친>의 11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씨네플레이는 주인공 ‘혜영’ 역을 맡은 배우 장서희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장서희(사진 제공=트리플픽처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뵙네요. 개봉에 앞서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어 일본에서 열린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아서 다녀오셨어요. <독친>으로 영화제에 초청받은 소감은요.

주로 드라마를 하다가, 영화를 하니까 새로워요. 영화는 무대 인사도 하고, 이렇게 기자분들 만나서 얘기도 하잖아요. 영화제 다니면서 관객들 만나는 것도 새로웠어요. 그런데 일본이랑 한국의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독친’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는 유명한가 봐요. 한국에서는 잘 안 쓰는 말인데, 일본에서는 ‘독이 되는 부모’라는 뜻을 다 알고 있더라고요. (일본에서 열린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에 갔을 때) ‘독친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말인가’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럼 장서희 배우님은 ‘독친’이라는 단어를 이전부터 알고 계셨나요?

자세히는 몰랐어요. 그런데, 단어를 딱 들어도 감이 오잖아요. 독한 느낌이.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대본에서 가장 끌렸던 부분이 있다면요.

딸 ‘유리’의 시점과 엄마 ‘혜영’의 시점이 교차되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뻔하지 않은 엄마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극성스러운 엄마 캐릭터는 익히 많이 나온 인물인데, (<독친> 혜영은) 그렇지 않잖아요.

영화 <독친>

엄마 역할을 다시 맡으셨어요. 실제로 자녀를 양육하고 있지 않으신데,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배우는 항상 상상을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다른 분들의 연기를 보다 보면 모방을 할 것 같아서, 주변에서 많이 관찰을 했어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실제 상황에서 참고하려고 했어요.

유리 역의 강안나 배우 등, 함께 호흡을 맞춘 출연진들이 신인이잖아요. 연출을 맡은 김수인 감독님도 <독친>이 장편 데뷔작이고요. 신인 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젊은 친구들이랑 하니까 되게 재밌었어요. 드라마는 아무래도 아래 위로 연령대가 다양했는데, 이번에는 현장에서 아마 제가 제일 연장자였을 거예요. 김수인 감독님도 아마 제가 작업한 분들 중 가장 어린 분일 거예요. 보통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님들은 고집이 좀 있으시다면, 김수인 님은 굉장히 융통성 있고 유연하셨어요. <독친>은 한 달 만에 찍었는데, 안나 배우랑은 (현장에서보다) 이번에 일본 영화제에 가면서 더 친해졌어요. <독친>에서는 제가 되게 신경질적인 부모로 나오다 보니까, 화기애애한 장면은 딱 한 신밖에 없어서.

영화 <독친>

그렇다면, 장서희 배우님은 현장에서 제일 베테랑으로서, 신인 연기자들에게 건넨 연기 조언이 있으실까요?

연기가 남의 조언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현장에서는 선후배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다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동료지. 거기서 내가 선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들과 함께 대화도 하고, ‘우리 이렇게 해보자’라고 상의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미안했던 거는, 유리의 친구 ‘예나’ 역을 맡은 소윤 배우와의 첫 만남에서 뺨을 때리는 신을 찍었어요.

담임 선생님 ‘기범’ 역을 맡은 배우 윤준원에게도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와요.

기범 역의 준원이는 몇 번 본 다음에 때리게 됐어요. (웃음) 조금 익숙해지고, 안면을 튼 다음에 때렸는데 소윤이는 보자마자 때렸어요. 소윤이랑은 ‘한 번에 끝내자’라고 마음을 먹고 때렸는데, 실제로는 두 번을 찍게 됐어요. 두 번도 굉장히 적은 것 같은데요. 그래도 최대한 한 번에 끝내고 싶었어요. 나중에는 소윤이 얼굴이 빨개졌더라고요.

혜영의 “도청, 할 수도 있죠.”라는 대사를 기점으로 영화의 흐름이 달라진다고 봤어요. 그전까지는 우아하게만 보였던 ‘혜영’의 이중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이런 사람들이 많잖아요. 뉴스에서 찾을 것도 없이, 주변에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걸 관찰했어요.) 딸을 도청하는 게 ‘혜영’한테는 당연한 거라는 일이라는 게, 가장 무섭죠.

배우 장서희(사진 제공=트리플픽처스)

혜영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광기가 아니라, 내면에 광기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아내의 유혹> ‘민소희’나 <인어아가씨> ‘아리영’보다도 더욱 소름이 돋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 캐릭터들은 원래 되게 착했어요. 그랬는데 핍박을 받고 변한 거죠. <독친>의 엄마 ‘혜영’은 성장 과정에서부터 삐뚤어진 거예요.

그럼, 본인이 맡은 역할 중 가장 ‘독한 역할’을 꼽자면요.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이죠. 걔는 못 이겨요. 남자도 뺏고 다 뺏잖아요. (일동 웃음)

<독친>의 혜영이도 피만 안 묻혔지, 살인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본인한테는 결핍이 있어서 그런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는 혜영이도 ‘독친’ 아래서 자랐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성장 배경을 지녔는지 자세하게 영화에 나오지는 않죠. 본인이 생각한 ‘혜영’의 과거는 어땠을 것 같나요.

혜영이 대사에 그런 게 있어요. “내가 없는 집 시집와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라고 하면서. 혜영이는 어릴 적도 불행하지만, 또 욕심도 많은 거예요. 자식이 자신의 바람을 다 이뤄주길 바라는 거죠. 혜영이가 유리한테 ‘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부잣집에 시집가라.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라고 하지만, (악행을 정당화하는) 변명이죠.

영화 <독친>

‘혜영’은 영화의 말미에 유리의 유치원생 동생인 ‘민준’에게도 또 똑같은 집착을 보이잖아요. 배우님께서 ‘혜영’의 행동이 유리의 죽음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라고 보시나요?

저는 연기를 할 때는 혜영이가 언젠가는 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영화 후반부에) 민준이한테 얘기를 할 때는 본인도 본인이 이상하다는 것을 조금은 인지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혜영이가 (유리의 자살로 인해) 한 번에 확 변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조금씩이라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열린 결말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혜영이의 미래에 대한 해석을 관객들에게 맡기는 거죠.

저는 영화를 보면서, <독친> 속 혜영이가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나가는 상상을 했어요. 만약 <독친>의 ‘혜영’이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한다면, 오은영 선생님이 혜영에게 어떤 조언을 할 것 같나요.

“어머니, 병원부터 가세요. 빨리 치료하셔야 돼요.” (라고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씨네플레이 독자분들께 <독친>을 꼭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를 전한다면요.

부천국제영화제때 제 팬분들이랑 관객분들을 만나 봤는데, 젊은 친구들이 공감을 많이 하더라고요. 혜영이가 유리한테 잔소리할 때, 우리 엄마도 저러는데, 막 그러더라고요. 딸들은 또 딸들대로 공감을 하고, 부모들은 부모대로 공감을 하고. 영화를 보면서 감정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유리의 또래, 고등학생 친구들이 봐도 좋을 것 같고, 항상 공부하라고 말했던 우리 부모님들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보기 좋은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엄마의 잔소리, 딸의 반항.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요.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