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알스트린 촬영감독 (사진=주성철)

산악영화 전문 촬영감독 크리스 알스트린을 만났다. 미국 콜로라도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등반을 즐기며 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촬영감독이라는 위치를 확장하여 대표적인 산악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릴 락>(Reel Rock) 시리즈를 통해 제작자는 물론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역동적인 촬영기법으로 각광받으며 예술계와 산업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작품들 중 카메라 오퍼레이터로 참여한 <프리 솔로>(2018)는 디즈니플러스에서, 촬영감독으로 참여한 <14좌 정복-불가능은 없다>(2021)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프리 솔로>는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3천 피트 화강암 엘 캐피탄의 역사적인 단독 등반 시도하는 암벽 등반가 알렉스 호놀드의 놀라운 여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는 로프나 안전 장비 없이 등반하는 프리 솔로 등반으로 유명한 전문 암벽 등반가다. 이어서 <14좌 정복-불가능은 없다>는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단 7개월 만에 정복하겠다는,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하는 도전을 감행하는 주인공 님스 프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산악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무척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지난 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산악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강연과 워크숍 진행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던 그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연 중인 크리스 알스트린 촬영감독. (사진=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언제부터 산악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01년 베트남으로 클라이밍 여행을 떠난 적 있다. 그때는 사진작가로 일하던 때였다. 무언가 영상을 남기고 싶어서 비디오 캠코더와 테이프를 12개 샀다. 일단 이것저것 촬영했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다들 스토리를 만들어 편집을 해보라고 했다. 솔직히 스토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없었고 그냥 등산하는 영상만 남겼다. 그러다 25년 정도가 지나고 보니, 사람들이 그냥 등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하더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웃음) 그렇게 본격적으로 산악 영상을 촬영하게 됐고 지금은 한두 명의 크루와 함께 다니며 일하게 됐다. 넷플릭스 등 OTT 시장도 열리며 할 일이 많아졌고, 누구든 여기에 뛰어들 수 있는 황금시대가 열렸다.

 

산악영화 촬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조명이다. 일반적인 극영화 세트촬영을 할 때는 조명 통제가 쉬운데, 아무래도 야외 촬영은 너무 힘들다. 역시나 태양광이 가장 중요하기에 원하는 빛을 얻기 위해서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반사판이나 다양한 장비를 가지고 조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산악영화 촬영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트릭’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관객이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공조명이라도 자연조명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거대한 발전기를 돌리기도 한다. 물론 계획해서 찍은 게 아니고 순간적으로 포착한 것이 좋을 때도 많다. 운도 필요하고 타이밍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일몰의 순간을 좋아한다. 태양은 언제나 뜨고 지니까 그 기다림이 좋다. 구름이 어떻게 자리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일단 나는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힘들게 얻은 장면일수록 자랑스럽다.

 

산악영화 촬영은 원하는 위치에 카메라를 마음대로 둘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나.

맞다.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한다. 솔직히 카메라 위치를 바꿀 때가 가장 힘들다. 밧줄을 타고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면서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스윙’이라고 해서 현재 암벽의 내 카메라 위치에서 옆으로 옮기는 게 가장 힘들다. 아주 조그만 이동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프리 솔로>

그동안 산악영화 촬영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 할 수 있나.

 

확실히 드론이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처음 작업했던 드론은 크기도 컸고 엔진 시동 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아직도 집에 있는데 아내가 너무 싫어하지만 버릴 수가 없다. (웃음) 현재 드론들보다 기능도 떨어져서 비행시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추락의 위험이 컸고 나 또한 추락 사고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점차 기능이 개선되고 야외 촬영의 지평을 바꿔 놓았다. 거대한 헬리콥터의 풀샷으로 촬영할 수 있던 것이 이제는 소형 드론으로 가능하게 됐다. 물론 지금도 어디를 얼마만큼 비행할지 여건이나 날씨 등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안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중요하다. 촬영 현장에 가지고 가면 ‘제가 한 번 작동시켜보면 안 될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꼭 있다. 여전히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다. 하지만 절대 안 된다. 어떤 순간에도 진짜 전문가만 드론을 다뤄야 한다.

 

산악영화 촬영감독은 출연진과 어느 정도로 소통하나.

 

출연진과의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 몇 해 전 파타고니아에 클라이밍 선수들과 함께 간 적 있는데 훈련은 물론이고 자유시간에도 늘 그들과 함께 했다. 굳이 꼭 그래야 하는지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 촬영에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늘 운동하고 준비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바로잡아야 한다. 그때 가서 준비하면 늦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편하게 작업해야 한다. 나의 초창기 참여 작품 중 하나인 <제프 로우의 메타노이아>(2014)에서 아이거 북벽에 올랐을 때가 가장 두려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런 두려움은 출연진과의 소통을 통해 줄일 수 있다.

 

산에 오르기 위해 평소에 어떻게 훈련하고 어떤 준비를 하나.

 

얼음물 목욕을 즐긴다. 평소에도 계속 긴장하며 지내려고 한다. 영화제가 열리는 이곳 울주의 산도 제법 추운데, 계속 반팔을 입고 있는 것도 그런 훈련이다. 스웨터를 걸치고 싶지만 참는다. (웃음) 윗몸일으키기는 그냥 일상적으로 하고 보통 집에서 매일 2시간 정도는 꼭 운동을 한다. 판단력도 중요하다. 촬영 도중 눈사태가 나는 일이 제법 있는데 그때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위험한 장소라면 멀쩡히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나 자신의 안전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 올해 영화제 개막작인 <아담 온드라: 한계를 넘어>(2022)에서 전설적인 클라이머 아담 온드라가 평소에 침술 등 동양의학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나도 그렇다. ‘드라이 니들링’이라고 전기 자극을 주는 침술을 종종 받는다. 주변 산악인들 중에서도 많이 받는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면서 꾸준히 그런 관리를 받아야 한다. (웃음)

 

<14좌 정복-불가능은 없다>

산악영화 촬영이라는 것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연의 압도적인 풍광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녀본 곳 중에서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드나.

 

와, 너무 어렵다. 내가 다녀본 모든 곳이라고 해도 된다. (웃음) 그래도 꼽자면 노르웨이의 폭포와 빙하, 레바논의 언덕, 올해 여름에 다녀온 이탈리아의 구불구불한 길과 석회석 암벽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참여한 <프리 솔로>와 <14좌 정복-불가능은 없다>에는 다양한 산악인들이 등장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이 있다면.

 

<프리 솔로>의 알렉스 호놀드도 빼놓을 수 없지만, 역시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모두, 그것도 무산소로 단독 등정한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다. <14좌 정복-불가능은 없다> 인터뷰에 등장하시는데, 자신의 지난날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역시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님스 푸르자야말로 진정 대단한 사람이다. 셰르파로 활동하는 네팔인의 긍지를 높이고 싶다는 그는, 14좌 정상을 밟은 서양인들은 이름을 남기는 반면 등반을 도와준 셰르파는 정작 자신의 이름이 아닌 ‘셰르파’로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해 반문한다. 님스 푸르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 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셰르파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는데, 인성도 훌륭하고 정말 흥미롭고 독보적인 인물이다.

<메타노이아>와 <와이드 보이즈>

<와이드 보이즈>(2012) 이후 직접 연출한 단편이나 장편은 없는데, 혹시 연출 계획은 없나?

 

영화제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2주 정도 머무르며 30분 정도의 단편을 찍을 계획이다. 아직 제목은 정하지 못했다. 이런 작품은 스토리보드라는 게 따로 없어서 어떤 걸 하면 좋을지 평소에 메모를 열심히 한다. 전반적인 생각과 방향을 정하고, 어떻게 섹션을 나누고 무엇에 초점을 둘지 고민한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이 가장 매력적이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