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최고의 기대작,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영화 <덩케르크>가 베일을 벗었다. 놀란이 지금껏 선보인 콘셉트 짙은 픽션을 버리고 자국의 보편적인 역사를 끌어안은, 작가적 모험으로 똘똘 뭉친 야심작이다. 지난주 개봉해 세계적으로 박스오피스를 정복한 현재, 국내외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낸 한편,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상황이다. 지난 7월 초, LA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나 <덩케르크>에 대해 물었다.


영국인들이 기억하는

가장 보편적인 역사

1940년 당시의 덩케르크 해변

"이건 내가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던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생애 첫 역사영화의 소재를 '다이아모 작전'으로 정했다. 2차 세계대전 초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수십 만의 연합군을 구출해낸 이 작전은, '덩케르크 정신'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질 정도로 영국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전설처럼 학습하는 역사다.

다분히 미국적인 배경과 소재를 경유한 한 영화들로 명성을 세운 놀란이 택한 첫 실화가 바로 다이아모 작전이라는 점은, 그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킨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폭격기 조종사여서 어릴 적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영국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는 동생이자 오랜 시나리오 파트너 조나단 놀란의 조력 없이 홀로 <덩케르크>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덩케르크>


두 신인배우와의 만남

핀 화이트헤드 / 해리 스타일스

당연하게도 놀란은 <덩케르크>의 캐스팅을 '영국배우'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 놀란 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배우들이 크레딧 전반을 채우고 있다. '잔교' 파트에 등장하며 서사 전반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연 핀 화이트헤드와 해리 스타일스는 <덩케르크>가 첫 영화다.

"신인을 원했고, 젊은 영국 남성을 캐스팅하고자 했다고 들었다. '군인'의 세계와 '배우'의 세계는 너무 다르지만, 군인들이 매순간 새로운 극한 상황에 놓이는 점과 내가 처음으로 참여하는 영화가 바로 <덩케르크>라는 점이 통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열고 닫는 토미 역의 핀 화이트헤드의 말마따나, 영화는 초년병이 전쟁터에서 느끼는 낯섦과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관객을 이야기의 격량으로 초대한다.

화이트헤드가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라면, 해리 스타일스는 유명 팝 보이 그룹 '원 디렉션'의 멤버로서 이미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자랑한다. 다만 놀란 감독에게 스타일스는 그저 배우일 뿐이었다. 오로지 스타일스가 영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잠재성만 보고 그를 기용했다.

"(볼튼 사령관 역의) 케네스 브래너를 보면 많은 이들이 <월랜더>의 사립탐정이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선 이 캐릭터를, 저 영화에서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배우이기 때문이다." 놀란은 <프레스티지>(2006)에서 니콜라 테슬라 역으로 팝의 아이콘 데이빗 보위를 캐스팅한 바 있다.

'영웅' 톰 하디의 존재

톰 하디

한편, 스핏파이어 전투기 조종사 역의 톰 하디는 놀란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배우다. "스핏파이어 조종사들이야말로 영국인들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믿고 자랐다"는 놀란은 <덩케르크>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파일럿 역에 다름 아닌 하디를 캐스팅 했다. (등장하는 모든 순간 겁에 질려 있는, 영웅과는 가장 멀어보이는 병사로 분한 배우가 놀란의 또 다른 단골 배우 킬리언 머피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저 유명한 시 '어느 아일랜드 비행사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 캐릭터는 '고립과 격리'라는 아이디어와 '하늘'에서의 관점을 동시에 점하며, 때마다 시공간적 관점이 바뀌는 상황을 존재 그 자체로 증명한다. "영화가 원초적인 동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 놀란은, 어릴 적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유년시절을 떠올려 스핏파이어 전투기 뒷좌석에 탑승해보면서 영화에 살을 붙여나갔다. 영화 마지막 톰 하디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IMAX 영화의 진일보

크리스토퍼 놀란은 당대 영화계에서 IMAX 카메라를 가장 애용하는 감독이다. <다크 나이트>(2008),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인터스텔라>(2014) 등 필모그래피를 거듭하며 그 비중을 높여가 이번 <덩케르크>에서는 75%의 분량을 IMAX 카메라로 찍었다. 이전 영화들이 또렷한 화면에서 오는 스펙터클의 극대화로 IMAX 카메라의 효용을 드러냈다면, <덩케르크>는 그뿐만 아니라 카메라 특유의 1.44:1 화면비를 빌어 프레임을 꽉 채운 이미지로써 전쟁 한복판에 놓여진 공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흥미로운 건 <덩케르크>의 화면비가 끊임없이 바뀐다는 점이다. "몰입효과가 가장 높은 IMAX 필름 포맷과 흔히 대화 장면에서 사용하는 포맷을 전환했다. IMAX 카메라의 소음 때문에 대화 장면을 찍을 때 방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화면비 사이의 전환이 대화를 잘 담기 위한 문제로 국한되는 건 아니다. "문스톤(도슨 일행이 모는 일반인 구조선)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의 느낌을 보여주다가 바깥의 전투기가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을 오가는 것처럼, <덩케르크> 특유의 리듬을 보여주기 위해" 적절한 편집 타이밍을 모색해 화면비 전환을 미학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IMAX 상영관에서 화면비 전환을 가장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놀란 영화의 숨은 공신,

프로듀서 엠마 토마스

엠마 토마스와 크리스토퍼 놀란

놀란은 초기 단편시절부터 프로듀서인 아내 엠마 토마스와 함께 제작을 겸하고 있다. <배트맨 비긴즈>(2005)부터는 프로덕션 '싱커피'(Syncopy)를 설립해 공동 제작 시스템을 단단히 다졌다. 친밀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까. 토마스는 놀란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이렇게 찍고 싶어 라고 얘기하면, 곧장 그가 어떻게 촬영을 진행할지 내다보인다고 한다.

"제작 부서장이나 라인 프로듀서가 내 작업에 확신이 부족한 경우, 엠마가 그들에게 내 생각을 해석해서 전달해주죠. '걱정하지 말라, 분명 방법을 찾을 것이다'라고요." 필모그래피를 거듭하며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 놀란이기에 <덩케르크> 역시 난점이 수두룩했다. 구축함 마이브레제가 필요한 상황, 이 배를 직접 덩케르크까지 조달한다는 건 "예산이 부족했던 건 아니지만 제작비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CG로 만들어 넣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놀란은 구축함이 실제로 등장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소형선박이 구축함 옆에 붙는" 이미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토마스는 돈을 절약하는 방법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놀란의 뜻에 따랐고, 영화 전체를 통털어 그 신을 최고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론 하워드의 조언

크리스토퍼 놀란과 론 하워드

천하의 크리스토퍼 놀란도 다른 감독에게 조언을 받았다. 밤에 바다에서 촬영해본 경험이 없었고, IMAX 카메라를 핸드헬드로는 처음 촬영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론 하워드에게 그와 관련한 지혜를 구했다. "준비하는 것부터가 악몽 그 자체"였다는 스필버그의 말대로 촬영은 문제 투성이였다. 론 하워드는 보다 직접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야간에 바다에서 조명을 켜게 되면 어차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 그럴 바에야 밤 신을 찍는다면 물탱크를 이용하는 게 낫다는 거다." 하워드의 조언에 따라 놀란은 밤 신을 물탱크에서 촬영해 바다의 거동을 포착했고, 낮 신을 야외/바다에서 촬영해 수평선 효과를 내지 못하는 물탱크의 한계를 보완해 밤낮없이 계속되는 전장의 위험을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새로운 조력자

호이테 반 호이테마와의 두 번째 조우

촬영감독 호이터 반 호이터마와 <덩케르크> 배우들

놀란은 <메멘토>(2000)부터 줄곧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와 작업해왔다. 하지만 피스터가 <트랜센던스>(2014)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와 <그녀>(2013) 등의 촬영감독 호이터 반 호이터마가 <인터스텔라>(2014)부터 놀란의 카메라를 맡고 있다. 놀란이 생각하는 호이터마의 강점은 "심플하고 자연스럽게 대상에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놀란과 호이터마 모두 독보적인 스타일로 특이한 이미지를 만들기보다는 "카메라 앞의 대상이나 현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그대로 두는 것"을 최우선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이 장면이 누구의 관점에서 보여지는가"에 대해 집중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계획하는 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덩케르크>는 특정한 장면이 유려하고 아름답다는 인상보다는 그 지옥 같은 전쟁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 각자의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앞으로 놀란/호이터마 듀오가 우직하게 담아낼 대상(소문대로 제임스 본드?)은 무엇일까.


<덩케르크> 배우들이 말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촬영 현장에서 놀란 감독으로부터 매일매일 새로운 걸 배웠다. 작업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런 분 주변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해리 스타일스

(알렉스 역)


놀란 감독은 현장에서 늘 배우 곁에 있었다. 전투기 조종석에 탑승하고, 물 속에도 같이 뛰어들었다. 배에서의 신도 마찬가지다. 흐린 날을 좋아했고, 날씨가 맑으면 배를 요동시켰다.

배리 케오건

(조지 역)


놀란은 배우가 연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도록 주변 환경을 만들어준다. 연기 상당 부분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반응이었다. 배우가 비행기를 보는 척 연기하는 걸 원하지 않고, 하늘에 비행기를 직접 띄워 그걸 배우가 쳐다보게 하는 식이다.

핀 화이트헤드

(토미 역)


<덩케르크>의 이야기가 수년 동안 그의 머리를 맴돌았고,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시계 소리를 영화에 삽입한 것도 멋지다. 마치 자신의 맥박을 넣은 것 같달까. 감독이기 때문에 작업하기 위해 현장에 와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 사건을 잘 알고 이것이 개인적으로 의미있기 때문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크 라일런스

(도슨 역)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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