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사진=씨네21)

언제부터였을까. 이란영화 하면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게 됐다. 언제가 언제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1996년에 개봉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가 바로 그 영화다. 1990년대 말 국내에서 이란 영화는 곧 압바스 키아로스마티였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개봉하고 다음해부터 1997<올리브 나무 사이로>, 1998<체리향기>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등이 연이어 국내 관객과 만났다.

그는 ‘현대영화의 위대한 시인이자 거장’으로 칭송받는 감독이다. 그런 그가 지난 74(현지시간) 7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3월 위장암 진단을 받고 이란을 떠나 파리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거장의 죽음에 동료, 후배 감독들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등으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 받는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는 매우 슬픈 일이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먼저 길을 낸 선구자였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란의 거장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키아로스타미는 지금 이란 영화가 세계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사랑을 카피하다> 현장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1940년에 이란 테헤란에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광고 영화를 제작했다. 그의 인생은 1968년 카눈(KANUN, 청소년 지능 개발 연구소)이라는 기관에 들어가면서 달라졌다. 카눈의 제의로 감독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첫 단편 빵과 오솔길을 만들었고, 1974년에 첫 장편 여행자를 연출했다. 20대 이후에 그가 처음으로 접한 영화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작품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였다. 키아로스타미 작품들의 특징인, 아이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 현실에서 소재를 찾고 화려한 세팅이나 특수효과 없이 저예산으로 작업을 한다는 점은 네오 리얼리즘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에도 그는 이란을 떠나지 않고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추모하며 그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이란 북부 3부작 혹은 지그재그 3부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한 소년이 실수로 친구의 숙제공책을 집으로 가져온 것을 알고 그 공책을 전달하기 위해 친구의 집을 찾아다니는 반나절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87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비전문배우를 기용했으며 절제된 카메라워크로 소년의 순수한 마음을 극대화시켜 보여줬다. 이란 북부의 코케 마을에서 촬영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키아로스타미는 1989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을 수상했다. 전세계 시네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 영화였다.

1990,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촬영한 코케 마을이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뮌헨에서 테헤란으로 돌아오던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코케 마을로 차를 몰았다. 그 차에는 자신과 아들의 대역을 할 배우 2명과 영화 스탭도 함께 탔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속에서 그는 희망을 담아냈다. 이 영화의 엔딩에 그 희망이 키아로스타미의 인장 같은 극단적인 롱 쇼트로 보여진다. 중년 남자가 모는 차가 구불구불한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가 포기하려고 할 때 가스통을 짊어진 한 청년이 그 언덕을 오른다. 이를 본 중년 남자는 다시 차를 몰고 언덕을 오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본 장 뤽 고다르는 영화는 D.W. 그리피스에서 시작했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서 끝났다고 말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올리브 나무 사이로><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촬영하는 영화 제작 현장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단역을 맡은 호세인과 테레헤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부부를 연기한다. 호세인은 테레헤를 사랑해 실제 부부가 되고 싶지만 집도 없고 글도 모르는 그를 테레헤의 집안에서 반기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올리브 나무 숲길에서 호세인은 열심히 구혼을 하지만 테레헤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촬영은 끝나갈 무렵 호세인은 테헤레를 쫓아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른다.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고 테헤레의 모습도 작아진다. 그때 갑자기 호세인이 뒤를 돌아 뛰어온다. 테헤레는 호세인의 구혼을 받아들인 걸까. 영화는 여운을 남기게 끝난다.

이란 북부 3부작 혹은 지그재그 3부작으로 불리는 3편의 영화는 모두 이란 북부의 코케 마을 부근에서 촬영됐으며 영화 속에서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3편의 영화는 2005년 광화문 시네큐브 극장에서 재개봉하기도 했다.

<체리향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체리향기>

<체리향기>(1997)는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의 동선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는 차를 몰고 다니며 자살 이후 자신의 시신을 묻어둘 사람을 찾아 다닌다. 군인, 신학생, 자연사 박물관의 박제사 등이 차례로 그의 차에 오른다. 한 남자의 절망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마지막 승객은 그를 설득한다. “체리맛을 포기하고 싶어요?” <체리향기>는 이란 정부의 검열과 출국금지 조치로 영화제 출품이 되지 못하다가 폐막 3일전, 상영 공고가 붙으면서 출품됐다. 이 영화의 주인공 바디를 연기한 배우 호먀윤 엘샤드 역시 비전문 배우로 원래는 건축가였다.

<사랑을 카피하다>: 이란을 떠나 촬영한 첫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사랑을 카피하다>(2011)의 원제는 <Certified Copy>. 증명된 카피, 복제품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하는 이 영화는 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가 새로 펴낸 기막힌 복제품이란 책의 강연차 들른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만난 골동품 가게 주인(줄리엣 비노쉬)과 벌어진 일을 다룬다. 복제품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던 두 사람은 부부 역할극을 시작하는데 어느새 관객은 두 사람이 진짜 부부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두 사람은 원래 부부인데 처음 만난 것처럼 연기를 한 건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키아로스타미가 이란을 벗어나 해외에서 만든 첫 영화라는 점이다. 페르시아어가 아닌 영어, 불어, 이탈리아 등 다른 언어의 대사로 영화를 만들기도 처음이었다. 줄리엣 비노쉬는 이 영화로 2010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사랑을 카피하다> 이후 키아로스타미는 다시 한번 이란을 떠나 일본에서 <사랑에 빠진 것처럼>(2013)이라는 영화를 연출했다. 이란 정부의 검열과 탄압 속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비교적 온건한 자세를 유지했지만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2005년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란 테헤란 현지에서 <씨네21>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말하는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에 대한 질문에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의 문답을 그대로 전하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명복을 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영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신 영화에 있어서 어떤 한 국면을 마감하는 마침표, 또는 전환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50대에 접어들자 내 머릿속은 복잡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죽음이란 의미가 내게 새롭게 각인된 것이다. 몸과 마음이 허약해지고, 태만해지기도 하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이란의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과 결합해서 온 게 아닌가 짐작된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게 됐다. 하루 중 낮이 끝나면, 그 세계는 밤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환한 불빛과 네온사인 등 어둠을 밝히는 것들 또한 있지 않나. 그 불빛 속엔 어둠을 밝히는 새로운 힘과 삶의 영위가 있으니 그것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이란 전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세월이 갈수록 생각은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희망은 의지로 바뀌었다.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일본 시구 중에 이런 게 있다. ‘높은 곳이 무섭다. 떨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불이 무섭다. 불이 뜨겁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별이 두렵다. 이별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지 않다. 죽음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그래서, 지금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지도 못하는데 왜 두려워하겠는가?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