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모인 히어로 협회'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하고 있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이하 JSA)는 미국 만화 역사상 최초의 슈퍼히어로 팀이다. 1938년에 나온 첫 슈퍼히어로인 슈퍼맨의 등장 이래, 한 만화의 타이틀에는 한 명의 슈퍼히어로만 등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 책에 여러 명의 히어로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각각 다른 스토리를 모아놓은 옴니버스 형식이었던 것이다. JSA는 그런 관행을 깨고 여러 명의 히어로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도록 한 최초의 시도였다.

1940년 출간된 <올 스타 코믹스> 3호의 표지에선 JSA의 창단 멤버들을 전부 볼 수 있다. 플래쉬와 그린 랜턴 등 익숙한 인물들도 있지만 DC 코믹스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생소할 애톰, 샌드맨, 스펙터, 호크맨, 닥터 페이트, 조니 선더, 아워맨도 있었다. 의외로 DC의 간판 스타들인 슈퍼맨과 배트맨이 빠져 있다. 1940년 당시만 해도 슈퍼맨과 배트맨은 탄생한 지 만으로 3년도 안 된 햇병아리 히어로였고, 각각 <액션 코믹스>와 <디텍티브코믹스>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JSA 멤버 중 자신의 이름을 건 독자적 타이틀이 발간되고 있었던 히어로는 <플래쉬코믹스>에서 활약 중이던 플래쉬뿐이었고, 다른 멤버들은 <어드벤쳐코믹스>나 <올 아메리칸 코믹스> 등에서 지면을 나눠가며 등장하고 있었다. 즉, JSA는 인지도나 인기가 덜했던 히어로들을 묶음으로 마케팅하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마블 제2대 편집장 출신인 작가 로이 토마스가 주축이 되어 만든 <시크릿 오리진스>는 DC 유니버스의 여러 히어로와 빌런들의 기원을 현대적 감각의 스토리와 그림으로 풀어낸 시리즈였다. 원년 JSA 멤버들의 기원도 거기서 읽을 수 있다. 원작 스토리에 상당히 충실한 이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나중에 나온 DC 코믹스나 마블 코믹스 히어로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슈퍼히어로 만화 초창기의 한계도 관찰된다. 지금 읽어도 수긍가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황당한 이야기들도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애톰의 경우, 이름만 봐서는 화학 실험을 통해서 원자의 기운을 얻어 초능력을 얻게 된 히어로가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트레이너를 만나 운동을 통해 초인에 가까운 힘을 얻었고 애톰이라는 이름은 그냥 몸집이 작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정이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무리수가 있는 설정의 히어로들 대신 좀 더 현대적인 감각의 히어로들이 등장하게 된다. 플래쉬와 그린 랜턴은 현재 용어를 쓰자면 리부트된 버전이 활약하게 되었고, 마샨 맨헌터 등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된 히어로들이 점차 누적되어가면서, DC 편집부는 JSA를 해체하고 이를 대신할 올스타 팀을 다시 구성하기로 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JLA)로, 당시 DC 코믹스 지적 재산 중 가장 인기 많던 슈퍼맨, 배트맨, 플래쉬, 그린 랜턴, 마샨 맨헌터, 원더우먼으로 구성되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슈퍼히어로 만화와 관련 컨텐츠는 거의 미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것이었기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슈퍼히어로 장르가 전세계 일반인들도 즐기는 컨텐츠가 된 2000년대 후반부터는 '아메리카'를 뺀 '저스티스 리그'가 더 일반적인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JSA JLA에 'DC 코믹스의 대표 슈퍼히어로 팀' 위치를 넘겨주고 장렬히 퇴장할 예정이었지만 1960년대에도 팬들은 JSA 원년 멤버들을 계속 보기를 원하였고, DC 코믹스는 팬들의 염원에 화답하기 위해 이후에도 설정을 바꾸어 JSA 멤버들과 JLA 멤버들이 '어스-1'과 '어스-2'라는 평행 우주에서 독자적으로 활약하게 하였다. '무한 지구의 크라이시스' 이벤트에서는 두 우주를 하나로 통합했다. 이후에도 몇 번이고 더 바뀌었지만, 중요한 것은 원년 멤버들의 원형이 현재에도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JSA나 JLA는 경쟁사 마블 코믹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마블의 '어벤져스'도 JLA를 모방한 팀을 만들라는 구체적인 지시 하에 만들어진 팀이었다.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일이 흥하고 있는 것처럼 이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슈퍼히어로 팀들도 한편으론 JSA의 자손들이라 할 수 있으니, JSA는 슈퍼히어로 만화계의 선조격이라 할만한 팀이다.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이 앞으로도 계속 흥행한다면 근미래에 원년 멤버들을 TV나 대형 스크린에서 보는 것도 요원한 일이 아닐 것이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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