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딱 맞는 주제를 준비했다. 영화에 대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이번에 다룰 내용은 호러영화에 사용되는 여러 단어들이다. 알아두면 의외로 쓸만하다. 왜? 누군가 호러영화를 보자고 했을 때 왜 그걸 보기 싫은지 적당히 설득할 수 있으니까. 에디터처럼.


산은 산이고 호러는 고어와 오컬트다?
서울 지하철 노선도 아님.

호러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표를 보자. 최대한 간략하게 앞으로 설명할 내용을 정리했다. 호러영화의 갈래가 이처럼 단순하진 않지만 이 그림을 담아두면 더욱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지구를 두 가지로 나누면 육지와 바다다. 비슷하게 호러영화를 둘로 쪼개본다면? '오컬트'와 '고어'가 있을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접근하면 오컬트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고 고어는 유혈이 낭자하는 것을 이른다.

대표적인 두 영화 <엑소시스트>(오컬트) /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고어)

예를 들면 오컬트는 <엑소시스트>, <링>, <주온> 류의 영화이고 고어는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쏘우> 류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동양 호러는 오컬트고 서양 호러는 고어다'라는 접근도 있었으나 할리우드의 <오멘>, <엑소시스트>, 일본의 <기니어피그>를 생각해보면 어디까지나 주류일 뿐, 단정지을 순 없다.

엑소시스트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출연 엘렌 버스틴, 막스 폰 시도우, 리J.콥, 키티 윈, 잭 맥고런, 제이슨 밀러, 린다 블레어

개봉 197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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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초자연적 현상의 몰살극인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오컬트와 고어의 결함이기도 하다.

오컬트는 '귀신 영화'라고 기억해두면 쉽다. 귀신에 빙의된 사람, 물건이 등장하거나 퇴마사가 주인공인 호러영화는 오컬트로 보면 된다. <링>이나 <주온>은 말할 것도 없고, 꼭 귀신이 아니라더라도 <폴터가이스트> 같은 영화도 오컬트 영화 류다.

주온 - 극장판

감독 시미즈 다카시

출연 오키나 메구미, 이토 미사키, 우에하라 미사, 이치카와 유이, 츠다 칸지, 후지 타카코

개봉 200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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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 / <셔터>

스플래터 영화의 대표작 <이블데드>의 후속 드라마 <애쉬 vs 이블 데드>

고어는 조금 복잡하다. 고어는 보통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는데, 하나는 스플래터고 하나는 슬래셔다. 스플래터는 '후두둑 떨어지다'는 사전적 의미치럼 영화에서 피가 잔뜩 쏟아지는(!) 것을 뜻한다. 슬래셔는 '날카로운 것으로 긋다'는 뜻의 슬래시(slash)에서 파생된 용어로 피해자가 잔인하게 죽는 장면이 묘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블 데드

감독 샘 레이미

출연 브루스 캠벨

개봉 198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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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가 달라?' 생각하실 독자분도 있을 것이다. 꽤 비슷하지만 두 용어의 교집합이 넓을 뿐, 다른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스플래터는 좀비 영화의 대부인 조지 로메로가 자신의 영화 <시체들의 새벽>을 설명하면서 쓴 단어다.

(왼쪽 위부터) 과거 슬래셔 영화의 4대장, 레더 페이스(<텍사스 전기톱 학살>)·제이슨 부히스(<13일의 금요일>)·프레디 크루거(<나이트메어>)·마이클 마이어스(<할로윈>)


두 용어의 범위가 비슷하다보니 이제 스플래터는 '의도적으로 유혈을 과장되게 표현해 유머러스한' 영화를 이를 때 쓴다. '슬래셔'도 신체훼손이란 특징에 살인마가 등장해 피해자들을 몰살하는 영화로 설명되는데, <13일의 금요일>부터 최근 <호스텔>이나 <쏘우>까지 서양 호러의 큰 줄기를 쥐고 있는 하위장르기도 하다.

<쏘우 2> / <호스텔 2>
호스텔

감독 일라이 로스

출연 제이 헤르난데즈, 데릭 리처드슨, 이토르 구드욘손

개봉 200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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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호스텔>과 <쏘우>의 압도적인 흥행에 많은 영화들이 과하게 살인 장면을 묘사하는 추세가 되자 '고문 포르노'라는 비하적인 용어도 탄생했다. 고문 포르노는 잔인한 살해 방법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를 이른다. 비하적인 단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슬래셔나 스플래터 같은 용어보다 자주 들릴 정도로 일반화됐다.

<프랑켄슈타인> / <시체들의 새벽>

이제는 호러보다 하나의 장르물로 자리매김한 '크리처' 장르도 있다. 과거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프랑켄슈타인>이나 <미이라>에서 시작해 <피라냐>, <아나콘다>, <엘리게이터> 같은 영화로 이어졌다. '몬스터'라는 말보다 좀 더 신비감이 있고 폭넓은 의미여서인지 '크리처'라는 용어로 불린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좀비 역시 크리처물의 변종이기도 하다.

딥 블루 씨

감독 레니 할린

출연 세프론 버로우스, 토마스 제인, LL 쿨 J, 자클린 맥켄지, 마이클 래파포트, 스텔란 스카스가드, 아이다 터터로, 사무엘 L. 잭슨

개봉 199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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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셜 몬스터즈 시절엔 크리처 자체가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이었으나 지금의 크리처 장르는 스플래터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딥 블루 씨>나 <피라냐 3DD>, <팬도럼> 같은 경우가 그렇다. SF 색채가 강하지만 <에이리언>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SF 호러 <에이리언> / <이벤트 호라이즌>

호러에 관한 좀 더 잡다한 용어

이제부터 진짜 '쓸모없는 잡학지식'을 늘어놓겠다. 호러영화 장르의 '큰 그림'을 말했으니 좀 더 세심한 장르를 설명하겠다. 위의 장르가 '소재'에서 출발한다면 앞으로 설명하는 장르는 '기법'으로 분류된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감독 오렌 펠리

출연 케이티 피더스턴, 미카 슬로앳, 마크 프레드릭스, 애슐리 팰머, 엠버 암스트롱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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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윗치> / <파라노말 액티비티 2>


<블레어 윗치>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호러영화 특유의 '저예산 고효율'을 극대화한 두 작품은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픽션이다. 이런 장르는 일반적으로 가짜란 의미의 'Mock'과 'Documentary'를 결합해 '모큐멘터리(Mockumentary)'라고 이르지만 호러영화에서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고 부른다.

파운드 푸티지 형식은 이후 공포 게임에도 사용된다 (<아웃라스트 2>)

에디터 역시 두 용어의 차이를 정확히 몰랐는데 모큐멘터리에 '촬영자가 행방불명이다'라는 설정이 붙으면 파운드 푸티지로 분류한단다. 파운드 푸티지란 용어처럼 '찾아낸 필름 덩어리'인 셈이다. 언급한 두 작품 외에도 좀비 영화와 결합된 <알.이.씨> 시리즈나 <다이어리 오브 데드>가 있다. 

알.이.씨

감독 자움 발라구에로, 파코 플라자

출연 마누엘라 벨라스코

개봉 2007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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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검은 레이스>

대중들에겐 조금 낯설겠지만 호러영화 광팬들에겐 유럽 호러영화도 주목받았다. 특히 다리오 아르젠토, 마리오 바바, 루치오 풀치가 건재했던 1960~80년대 이탈리아 호러는 호러영화 광팬이라면 놓쳐선 안 될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호러를 왜 꺼냈냐면 '지알로'라는 장르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노란색을 뜻하는 지알로는 이탈리아 자국 내에서 호러영화를 지칭하는 단어지만 국제적으로는 이탈리아 호러영화 중에서도 강렬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살인장면을 강조한 호러영화를 뜻한다.

<서스페리아 2> (원제 Deep Red)
써스페리아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출연 제시카 하퍼, 스테파냐 카시니

개봉 1977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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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알로는 원래 영화가 아니라 노란색 계통의 표지로 출간되던 싸구려 장르 소설을 지칭했다. 마리오 바바는 자신의 영화에 노란 계통의 포스터를 사용했고 마치 그 소설들처럼 가벼운 스토리에 자극적인 요소들을 강조했다. 이후 다리오 아르젠토도 미쟝센이 부각되는 호러영화를 만들었고, 그 흐름이 '지알로'라는 용어로 정착됐다.

블러드 베이

감독 마리오 바바

출연 클라우디안 아우거, 루이지 피스틸리

개봉 1971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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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나온 김에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에서 추천한 '지알로 입문 영화 15'를 소개해본다. 다른 장르는 정보를 구하기 쉽지만 이 장르는 다소 생소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해당 항목이 양대 포털 사이트 DB에도 없을 정도다.

1. 피와 검은 레이스 (1964)
2. 수정 깃털의 새 (1969)
3. Le foto proibite di una signora per bene (1970)
4. 블러드 베이 (1971)
5. Una lucertola con la pelle di donna (1971)
6. La coda dello scorpione (1971)
7. 작은 인형들의 긴 밤 (1971)
8. La tarantola dal ventre nero (1971)
9. Non si sevizia un paperino (1972)
10. Il tuo vizio è una stanza chiusa e solo io ne ho la chiave (1972)
11. Sette orchidee macchiate di rosso (1972)
12. 더 퍼퓸 오브 더 레이디 인 블랙 (1974)
13. 써스페리아 2 (1975)
14. 더 하우스 위드 래핑 윈도우즈 (1976)
15. Solamente nero (1978)

어쩌다 보니 이 포스트를 쓰게 만든 용어를 마지막에 소개하게 됐다. <애나벨: 인형의 주인>의 개봉에 맞춰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점프스케어'는 한국말로 하면 '갑툭튀'라고 할 수 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폴짝 뛴다는 걸 의미하는 점프스케어는 긴장감을 유발하다가 불현듯 뭔가 튀어나오는 기법을 의미한다.

<컨저링 2>의 점프스케어

소개했던 다른 용어들은 장르를 일컫기도 하지만 점프스케어는 아주 기본적인 호러영화 기법이다. '더 버지'의 브라이언 비숍은 "호러영화의 기본적인 토대 중 하나"라고 말할 정도다. 기괴한 사운드를 복선으로 쓰고 의도적으로 갑작스럽게 쓸 수도 있고, 긴 서스펜스 시퀀스 말미에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이 넓은 기법이다.

컨저링

감독 제임스 완

출연 베라 파미가, 매켄지 포이, 패트릭 윌슨, 조이 킹, 릴리 테일러, 론 리빙스턴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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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스케어는 연출적 계산 없이도 관객을 놀라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지만 영화의 긴장감을 단절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점프스케어가 자주 반복되는 몇몇 영화들(중에도 제임스 완 제작 호러영화들)이 나오면서 "이건 호러영화가 아니라 점프스케어 영화다"라고 말하는 팬들도 생겼다.

해외에는 아예 "Wheres the jump?"라는 사이트가 있다. 영화 속 점프스케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사이트인데, 해당 사이트 통계로는 2010년 이후 한 영화당 평균 10번의 점프스케어가 나온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점프스케어가 최고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최악의 리메이크로 뽑히는 <폴터가이스트>의 점프스케어
폴터가이스트

감독 길 키넌

출연 샘 록웰, 로즈마리 드윗, 자레드 해리스, 니콜라스 브라운, 제인 아담스, 색슨 샤비노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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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호러영화에 사용되는 몇 가지 용어를 살펴봤다. 이 정도만 알아도 특정 호러영화가 어떤 하위장르이며, 어떤 기법을 썼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안다고 그 영화가 덜 무섭진 않다. 그랬다면 에디터도 진작에 호러영화 팬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러영화의 틀을 어느 정도 알아둔다면 다른 영화에서도 호러영화의 흔적을 읽는 게 쉬워질 것이다.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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